“말 없는 응원의 꽃”
마당가 담벼락을 타고 조용히 올라선 나팔꽃 한 송이.
그 모습 앞에 멈춰 선 나는 오래된 여름의 기억을 꺼내듯, 한참을 서 있었다.
나팔꽃은 소리를 내지 않는다.
하지만 매일 아침, 그 조용한 입술로 세상에 인사를 건넨다.
“오늘도 괜찮은 하루가 되기를요.”
그건 마치, 우리가 바쁜 마음에 놓쳐버리는 인사 같았다.
“잘 잤어?”
“어제는 어땠어?”
“아직 괜찮니?”
사람은 하루를 시작하기 위해 알람을 울리고, 커피를 내리고, 정신을 깨우지만
나팔꽃은 단지 햇살이 닿는 순간에 맞춰,
자신을 열며 하루를 맞는다.
소란도 없고, 서두름도 없다.
그저 지금이라는 순간 속에서
조용히, 피어난다.
나는 문득 그런 나팔꽃이 부러워졌다.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리듬에 따라 매일 같은 시간,
묵묵히 피었다가
햇살이 강해지면 잎을 접고
물러나는 삶.
그러고 보니 나팔꽃은 ‘밤에 피는 꽃’이기도 하다.
달빛 아래서 싹을 틔우고,
해 뜨기 전 가장 조용한 시간에 피어난다.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순간들 속에서
가장 진심으로 살아가는 존재.
어쩌면, 그런 존재들이 우리 곁에도 있었을지 모른다.
말없이 마음을 내어주고,
조용히 응원하며
자신의 자리를 묵묵히 지켜주던 사람들.
그 사람들의 존재를 나는 너무 늦게서야 알아보았던 것이다.
그날 아침, 담벼락에 기대어 피어 있던
자줏빛 나팔꽃 한 송이가
내게 그렇게 말을 걸어왔다.
“당신의 하루가, 꼭 피어나기를.”
“누군가의 하루에, 당신도 그런 존재이기를.”
나는 그 말을 마음속에 받아 적고
아무도 보지 않는 새벽을 지나
오늘이라는 아침을 시작했다.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지만
분명 누군가에게 닿을,
그런 인사를 전하며.
나팔꽃을 다시 보러 간 날,
그 담벼락 앞에는 이미 다른 하루가 펼쳐지고 있었다.
어제 피어 있던 꽃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또 다른 꽃이 조용히 피어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이 꽃은 오늘 처음 피는 것이고,
어제의 그 꽃은 이미 제 시간을 다 살고, 물러난 것이었다는 걸.
이렇게 하루마다 피어나는 생명,
그 짧은 시간에 온 마음을 다해 피고 지는 이 순환.
얼마나 강한 용기일까.
어제와 같은 자리에, 어제와 같은 햇살 아래서
다시금 피어나기로 마음먹는다는 건.
무너짐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다시 태어나듯 피어난다는 건.
사람도, 삶도
이 나팔꽃처럼 매일을 살아내는 존재인지 모른다.
어제의 나를 내려놓고
오늘의 나로 다시 피어나는 것.
어떤 날은 고단한 뿌리처럼,
어떤 날은 햇살에 기대는 줄기처럼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싸움을 안고 살아가는 우리.
그래도 피어나는 것.
비가 오면 젖고, 바람이 불면 흔들리더라도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색으로 하루를 채우는 것.
그게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우리는 자주 잊고 산다.
나팔꽃은 우리에게 말하고 있다.
“괜찮아. 오늘 하루를 살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해.”
“어제 지고, 오늘 다시 피는 너는 정말 강한 거야.”
“너도 피었구나. 오늘도.”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피어남은,
작고 사소해 보여도
사실은 눈부시게 용감한 이야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