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냄새를 타고 온다.
눈으로 본 풍경보다, 손끝으로 만진 온기보다
더 오래, 더 깊이 남아 있는 건
바로 그 시절의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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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이른 아침에 삶아주던 고구마 냄새.
학교 운동장에서 퍼지던 흙먼지 냄새.
겨울 첫날, 교실에 들어설 때 느껴졌던 석유난로의 묘한 향.
할머니 댁 부엌에서 배어 나오는 된장국 냄새.
비 오는 날, 베란다 타고 스며들던 젖은 흙과 시멘트의 냄새.
그 시절 우리는 몰랐다.
그 냄새들이 언젠가 그리움이 될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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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날은,
지하철 안에서 누군가의 머리카락 사이로
어릴 적 비누 냄새가 스쳐간다.
순식간에 나는 9살의 나로 돌아간다.
오래된 아파트 복도에서 뛰어놀다
엄마가 부르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카페를 지나다 진한 원두향이 느껴질 때면
예전에 좋아했던 사람과 함께 앉았던 작은 테이블이 떠오른다.
어색했던 웃음, 말없이 내어주던 머그잔,
조금은 멀었던 마음의 거리까지,
다시 향기로 되살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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냄새는 나이를 먹지 않는다.
그 시절이 아무리 오래되었어도
그 냄새를 맡는 순간,
기억은 다시 숨을 쉰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우리는 향기로 시간을 걷는다.
누군가는 아직도 아버지의 면도크림 향을 기억하고,
누군가는 이불장 속 나프탈렌 냄새에 안도감을 느낀다.
누군가는 빵집 앞 버터 향에 멈춰 서고,
누군가는 새 책의 잉크 냄새에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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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향기 속엔 우리가 있다.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자리하고 있었던,
기억의 구석구석.
가끔은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다.
“당신은 어떤 냄새로 추억을 기억하나요?”
그리고 조용히 듣고 싶다.
그 사람에게도 한때의 가을이 있었고,
지나간 사랑이 있었고,
두근거리던 봄이 있었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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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냄새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을 하나쯤 가지고 있다.
그건 누군가의 품일 수도 있고,
오래된 교복일 수도 있고,
비 오는 날의 바닥 냄새일 수도 있다.
지금의 우리가 조금 지쳤다면,
그 향기 하나쯤은 꺼내어 맡아보면 좋겠다.
그 시절의 따뜻함이
지금의 우리에게 조용히 말을 걸지도 모르니까.
“괜찮아. 너는 그때도, 지금도 충분히 따뜻한 사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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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냄새, 마음에 묻어 있던 계절.
눈으로는 담을 수 없고,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것.
그러나 어느 날 문득 스치기만 해도
마음 깊은 곳을 울리는 것.
그게 바로
누구에게나 있는,
옛 정취의 냄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