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시집

오후의 그늘-03

by 김기수

《오후의 그늘》


햇살은 오늘도

모서리를 피해 흐른다.


유리창 너머로 떨어진 빛은

책장 아래

아무 말 없이 쌓여가는 먼지처럼

천천히, 조용히, 깊어진다.


그늘은 늘

말이 없다.

하지만

그곳엔 아직 식지 않은 온도가 있다.


나는 그 그늘에 앉아

오후를 견디는 법을 배운다.

지나간 말들, 멈춘 숨결,

그 사이에서 아직 살아 있는 마음 하나.


누구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나는 오늘도 나를 꺼낸다.

그리고 살며시,

햇빛 쪽으로

눈을 든다.


《오후의 그늘》


오후의 그늘은,

늘 조용하다.


햇살이 지나간 자리, 빛이 닿지 않는 모서리,

그곳엔 무언가가 고요히 머물고 있다.

아무 말도 없고, 아무 소리도 없지만,

나는 그 속에서 자주 내 마음을 발견하곤 한다.


바쁜 시간 속에서는 미처 느끼지 못한 것들이,

그늘 속에선 조심스레 얼굴을 내민다.

후회, 그리움, 아직 꺼내지 못한 말들,

그리고 이름 붙일 수 없는 작은 희망까지.


나는 그늘에 앉아 숨을 고른다.

서두르지 않고, 감추지 않고,

그냥 그렇게 조용히 나를 바라본다.


사람들은 대개 햇빛을 찾는다.

밝고, 반짝이고, 눈부신 곳으로 향한다.

하지만 나는,

때때로 그늘에 머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늘은 숨겨진 시간이 아니라,

조용히 살아가는 마음들의 자리이니까.


오후의 그늘은 말한다.

“빛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건,

여전히 살아 있는 너 자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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