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와 나의 시집

오늘, 민들레 홀씨를 보다-06화

by 김기수

아웃라인 (계획)

1. 프롤로그 — 길을 걷다 민들레 홀씨를 만나는 장면

2. 홀씨의 순간 — 퍼져나갈 준비를 하는 모습

3. 나와 홀씨 — 나도 언젠가는 퍼져가야 한다는 깨달음

4. 공감의 슬픔 — 모두가 그렇게 흩어지지만, 때로는 그러지 못하는 이들의 애달픔

5. 애절한 희망 — 그래도 언젠가 다시 날 수 있기를

6. 에필로그 — 홀씨와 나, 그리고 바람



오늘, 민들레 홀씨를 보다


길을 걷다가,

아주 작은 바람에도 흔들리는 것을 보았다.


누군가는 그냥 스쳐 지날 수 있었을,

흰 솜털 같은 민들레 홀씨.


나는 그 앞에 멈춰섰다.


홀씨들은, 곧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디론가 가닿을 꿈을 꾸듯,

어쩌면 어딘가에서 스러질 것을 알면서도,

홀씨들은 고개를 들고 있었다.


조금만 더 바람이 불어준다면.

조금만 더 세상이 나를 밀어준다면.


그들은 먼 길을 떠날 것이다.

아무도 약속하지 않은 땅에,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시간 속으로.


나는 생각했다.

사람도, 저렇게 살 수 있다면.


어디론가 두려움 없이 날아가,

어딘가에 부드럽게 내려앉고,

거기서 다시 새로운 생명을 틔울 수 있다면.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누군가는 애써 날개를 펼쳐도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떨어졌다.


누군가는 바람이 되어주지 않는 세상 속에서

홀씨처럼 떠날 기회를 얻지 못했다.


홀씨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홀씨가 되지 못하는 마음들이 있었다.


그 애달픔이, 바람보다 더 아프게 다가왔다.



홀씨처럼, 그리고 홀씨처럼 되지 못하고


어릴 적에는 모두가 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꿈도, 사랑도, 미래도.


하지만 자라면서, 나는 알게 되었다.

어떤 마음은 땅에 붙어버린다는 것을.

어떤 기대는 무겁게 주저앉는다는 것을.


홀씨는 바람을 타야만 한다.

바람 없이 스스로 날 수 없는 존재.


그 모습이, 나 같았다.

우리 모두 같았다.


작은 기대 하나로,

희미한 바람 하나로,

우리는 매일 어딘가로 떠나기를 바란다.


그러나 바람은 늘 오는 게 아니었고,

우리는 늘 가벼운 게 아니었다.


누군가는 바람을 기다리다 지쳐,

그 자리에서 스러지고,


누군가는 떠난다 해도,

어디에도 닿지 못하고, 흩어진다.



슬픈 꿈, 그리고 희망


그래도, 나는 멈추지 않기로 했다.

바람이 오지 않는 날에도,

홀씨처럼 고개를 들기로 했다.


비록 오늘은 땅 위에 머물러 있어도,

내일은 떠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내 꿈도, 내 사랑도,

어딘가에서 작은 씨앗이 되어줄지도 모른다.


홀씨는 알지 못한다.

어디로 갈지, 어디에 닿을지,

그 끝에 어떤 세상이 있을지.


그저 바람을 믿고, 몸을 맡길 뿐이다.


나도 그렇게 살아가기로 했다.

조금 두렵더라도,

조금 외롭더라도.


누구도 약속하지 않았지만,

나는 내 안의 바람을 믿기로 했다.



에필로그 — 바람이 지나간 자리


길을 다시 걷는다.


홀씨들은 어느새 흩어지고 없었다.

그 빈 자리 위로, 봄볕이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나는 혼자서, 작은 바람을 느낀다.


보이지 않는 손길이

내 등을 가볍게 떠미는 것 같다.


그래, 괜찮아.

홀씨들은 보이지 않아도 살아 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딘가에서,

조용히 뿌리를 내리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렇게.

어딘가에 닿기를 꿈꾸며,

오늘을 걸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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