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정이란,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의 모음

by 김기수

여정이란, 이름 붙일 수 없는 날들의 모음


여정이란 무엇일까.

종착지가 분명한 것일까, 아니면 떠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수 있는 걸까.

우리는 늘 목적지를 묻는다. 어디로 가는지, 언제 도착하는지, 그곳은 좋은지.

그러나 여정이란 단어는 묘하게도 출발과 도착 그 사이에 머무는 감정을 더 많이 품고 있다.


출발은 늘 설렘과 불안을 동반한다.

새로운 도시, 낯선 사람들, 예측할 수 없는 풍경들. 때로는 마주하기 싫은 현실로부터의 도피일 수도,

혹은 더 나은 삶을 향한 발돋움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짐을 꾸려 떠날 때,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지 않는 짐도 함께 싣는다.

지나온 시간, 말하지 못한 말, 다치고 덧나버린 감정, 그리고 아주 조용한 희망 하나.


여정은 우리를 변화시킨다. 익숙했던 것을 떠나는 용기를 배우게 하고, 낯설음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는 법을 익히게 한다.

여행지가 주는 풍경보다, 그 길 위에서 내가 마주하게 되는 내 모습이 더 큰 변화일지도 모른다.

밤늦게 돌아온 숙소에서 문득 눈물이 흐를 때, 우리는 알게 된다.

이 길은 단지 걷는 길이 아니라, 느끼고 기억하고 남기는 길이라는 것을.


여정의 아름다움은 완벽함이 아니라 불완전함에 있다.

일정이 틀어지고, 길을 헤매고, 예기치 않은 사람을 만나며 만들어지는 돌발성.

그 속에서 우리는 다시 길을 찾고, 때로는 길을 포기하기도 한다.

그 모든 선택이 결국은 나의 일부가 되어 돌아온다.


때로 여정은 ‘누구와 함께하는가’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혼자의 여정은 내면과의 대화가 되고, 누군가와 함께하는 여정은 마음의 풍경을 공유하는 일이 된다.

어떤 길은 말없이 걷는 것이 더 좋고, 어떤 길은 웃으며 걸을 때 기억에 오래 남는다.


그리고 우리는 깨닫게 된다. 여정이란 결국 살아가는 삶 그 자체였다는 것을. 꼭 여행을 떠나야만 여정이 시작되는 게 아니다.

매일 아침 눈을 뜨고 하루를 시작하는 것도, 누군가에게 용기 내어 말 한마디를 건네는 것도, 마음속 오래된 슬픔을 마주하는 것도 모두 하나의 여정이다.


그래서 여정은 흔적을 남긴다. 발자국만이 아니라, 그 길 위에서 느꼈던 공기, 지나쳤던 풍경, 웃고 울었던 순간들이 가슴에 남는다.

돌아보면 아스라이 그리운 시간들. 그 순간을 다시 걷고 싶지만, 다시는 똑같이 걸을 수 없는 유일한 길.


여정이란, 그래서 슬프고 아름답다.

그때의 나로는 다시 걷지 못할 길이기에,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고마운 길이기에.



결론: 여정은 단지 이동이 아니라, 나를 알아가는 시간


여정이란 단어 안에는 ‘이동’보다 더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그것은 익숙함을 벗어나 낯선 것을 마주하는 용기이며,

시간의 흐름 속에서 나 자신을 재발견하는 여유다.

때로는 눈물 나게 아름답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아 아프지만,

그 모든 걸 품고도 우리는 다시 여정을 꿈꾼다.

왜냐하면 여정은 곧, 살아 있다는 증거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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