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내리는 날이면
세상이 조금 느려진다.
창밖의 풍경도,
내 마음도,
속도를 늦춘다.
해야 할 일들은 책상 위에 그대로인데
손끝은 자꾸만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을 따라 움직인다.
내리는 비는
말 대신 조용히
나의 감정을 건드린다.
말하지 못한 말들,
잊은 줄 알았던 기억,
미뤄둔 감정들이
조금씩 고여든다.
의욕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조용히 쉬고 있었던 거야.
우리는 항상 무언가를 해내야 하고
기억해야 하고
잊지 말아야 하기에
너무 자주
자신을 등지고 달리게 된다.
그러다 비가 내리면
나도 모르게
멈추고 싶어진다.
그건 나약함이 아니라,
조용한 내면의 권유이다.
“지금 잠시 멈추어도 괜찮다.”
“이대로 흘러도 괜찮다.”
⸻
빗소리는 나에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해준다.
세상은 생산성과 성취를 말하지만
비는 존재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속삭인다.
오늘 하루,
창문 너머의 흐림처럼
내 마음도 조금은 흐릿해도 된다.
내가 움직이지 않아도,
시간은 흐르고,
계절은 바뀌고,
햇살은 언젠가 다시 돌아올 테니까.
⸻
비는 내 마음을 닦아주고
내 감정을 잠시 쉬게 한다.
우산을 들고 서 있는 그대도,
우울함을 말 없이 껴안고 있는 나도,
오늘은 이 조용한 풍경 속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이유가 된다.
⸻
그러니 오늘은
무언가를 해내야 한다는 생각 대신,
그저 나를 조금 더 다정하게 바라보자.
세상의 속도를 잠시 잊고,
마음의 안쪽으로
천천히 걸어가 보자.
그리고 묻는 거야.
비가 내리는 날,
마음은 어디쯤 걸어가고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