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 여름을 견디는 나만의 방식

by 김기수

에세이 — 여름을 견디는 나만의 방식


나는 여름과 타협하며 살아간다.

화해는커녕 대면조차 피하고 싶은 계절이지만,

그렇다고 도망칠 수는 없지 않나.

지구가 돌고, 계절이 순환하고,

달력은 또다시 6월을 넘겼다.


누군가는 바다를 떠올리고,

누군가는 휴가를 계획하며

“여름이 좋아”라고 말하지만,

나는 조용히 웃는다.

좋다고? 지금 이게?

저기요, 제 등에 흐르는 땀 좀 보시겠어요?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잘 안 맞는다.

에어컨 바람은 잠깐이면 머리가 아프고,

선풍기 바람은 아무리 틀어도 더운 공기를 휘저을 뿐이다.

햇빛은 내게 너그러움을 주기보다는

‘너 오늘은 이만큼 탈 거야’라는 경고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여름을 견디는 나만의 방식이 필요했다.

투쟁이 아닌, 생존도 아닌,

일상 속에서 작게 웃을 수 있는 방식.



첫 번째 방식: 그늘과 친해지기.

나는 여름이 오면 나무를 찾는다.

아파트 단지 사이, 공원 구석,

누군가는 스쳐지나가는 작은 나무 그늘도

나는 지도에 별표를 쳐두듯 기억한다.


해가 내리쬐는 오후,

잠시 밖에 나가야 할 때면

나는 그 그늘들을 이어서 걷는다.

그건 마치 여름판 퍼즐 같기도 하다.

이쪽 나무에서 저쪽 벤치까지,

어디까지 땀 한 방울 덜 흘릴 수 있을까.


그 작은 승리감이 있다.

세상이 나를 굽이굽이 데워도,

나는 그늘로 빠져나온다.



두 번째 방식: 얼음 커피 한 잔.


다들 그러겠지만,

나는 유독 여름엔 커피에 집착한다.

단단한 얼음을 넣고,

진한 아이스용 믹스 커피를 부은 뒤,

섞지도 않고 그냥 바라본다.


얼음이 살살 녹으며 커피와 섞이는 그 찰나.

여름이 아름다워지는 3분이 있다.


나는 가끔 사랑이 그럴 거라고도 생각한다.

처음엔 너무 뜨겁고 진해서,

서로를 태울 것만 같은데

시간이 조금만 지나면,

자연스럽게 서로에게 스며든다.


그래서 얼음 커피를 마시는 시간은

여름이 주는, 유일한 관용 같다.

화해의 시간.

오늘 하루도 잘 참아줘서 고맙다고

내 마음을 달래주는 작은 의식.


마지막 방식: 사랑을 기록하기.


여름이면 왠지 감정이 과잉된다.

작은 일에도 예민해지고,

별것 아닌 일에도 감동받는다.

에어컨 바람이 조금만 세도 “이거 고마운 일이야…”

문득 창밖 나무에 매미 한 마리 앉아 있는 것만 봐도

“쟤도 힘들겠지…” 하며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그럴 땐

조용히 노트를 꺼낸다.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을

글로 적어보면

나도 모르게 웃게 되는 순간이 있다.


어떤 날은

사랑에 대한 말도 꺼낸다.

이미 지나간 사랑,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

또는 아직 만나지 못한 누군가에게.


내 여름은 그렇게

혼잣말 같은 사랑으로 채워진다.



나는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장애를 가진 나로서는

하지만 나는 여름을 견딘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니라,

조금은 웃고, 조금은 기대며,

조금은 나를 더 사랑하는 방식으로.


어쩌면 인생도 그렇지 않을까.

좋아서가 아니라

견디는 법을 배우는 것.

무더운 계절 속에서도

어디선가 작은 기쁨 하나씩 찾으며,

오늘을 무사히 통과하는 것.


그래서 나는 내일도,

아이스 커피를 들고

작은 그늘을 찾아 걷는다.

집으로 돌아와

허리 한번 쭉 펴고,

좋아하는 사람에게

아무렇지 않게 말할 것이다.


“오늘도 여름이었어. 그래도 괜찮았어.”


매거진의 이전글 마음의 섬, 사랑이 머무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