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5일, 더운 날의 조용한 기록

by 김기수

6월 15일, 더운 날의 조용한 기록


6월 15일.

오늘은 무척 덥다.

숨을 크게 들이쉬면, 공기마저도 미지근하다.

그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작은 노력이 필요한 하루였다.


기온이 높아지면,

마음도 느릿해진다.

움직임은 굼뜨고,

생각은 둥글둥글 말없이 흘러간다.


창문 너머 세상은 한낮의 뜨거움으로 가득 차 있고,

나는 방 안 그늘진 자리에 머물며

시간의 체온에 눌려 있었다.


**


에어컨을 켜기 전,

손에 쥔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어떤 특별한 감정을 느끼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무심한 하루에

작은 배경을 깔고 싶었을 뿐이었다.


음악이 흐르기 시작하고,

내가 앉아 있는 이 공간이

조금은 달라 보이기 시작했다.

음표는 공기를 가르고,

멜로디는 뜨거운 시간 위에 부드럽게 내려앉는다.


어떤 날은 음악이 마음을 흔들고,

어떤 날은 마음을 감싼다.

그리고 오늘은

그저 ‘배경’이 되어주는 음악이 좋았다.

크게 울리지 않고,

조용히 등 뒤를 감싸주는 그런 선율이.


**


점심 무렵,

부엌에서 익숙한 냄새가 퍼졌다.

잡채의 간장 냄새,

기름에 지글거리는 전병의 소리,

그리고 냉면의 새콤한 식초 향.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누군가는 음식을 만들고,

나는 그걸 먹었다.


삶이란 건,

가끔은 그렇게 단순하다.

더울 때는 시원한 걸 먹고,

배고플 때는 익숙한 걸 먹고,

말없이, 아무 말 없이

그 맛에 위로받는다.


**


식탁 위에 놓인

잡채의 부드러운 당면,

냉면 위에 동동 띄운 얼음 조각,

전병의 노릇노릇한 표면은

그 자체로 하루를 설명했다.


“나는 오늘도 살아 있다.”


그 사실이 꼭 특별하지 않더라도,

그저 평범하게 반복되는 하루 속에서

무언가를 먹고, 듣고, 느낀다는 것.

그게 곧 지금의 나다.


**


시간은 흘렀다.

무엇을 하지 않아도,

시간은 늘 자기 몫을 정확히 가져간다.


나는 오늘 특별한 일은 없었지만,

그냥 시간을 흘려보냈다.


바깥에서는 태양이 땅을 달구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작은 생존의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


어떤 날은,

기억에 남을 일이 전혀 없다.

하지만 그런 날들이 쌓여

진짜 삶이 된다.


오늘처럼 덥고,

무기력하고,

별다른 감정의 기복 없이 지나가는 하루가

어쩌면 가장 인간적인 하루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이룬 것도,

시작한 것도 없지만

그냥 시간의 리듬에 나를 맡겼다는 것만으로

오늘은 충분하다.


**


6월 15일,

오늘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고,

아무것도 되지 않았지만

그게 오히려 위로가 되었다.


다 하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

다 느끼지 않아도 괜찮다는 감각.

그리고 가끔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하루’가

가장 깊은 쉼이 될 수 있다는 걸

이 무더운 여름 초입에

조금은 알 것 같았다.


**


음악은 여전히 흐르고 있고,

내 손에는 차가운 물 한 잔이 들려 있다.

창밖의 열기는 여전하지만,

내 마음은 조용히 가라앉는다.


오늘의 나는,

뜨거운 공기 속에서도

묵묵히 하루를 살아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잘한 하루였다고,

나는 조용히 적어두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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