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엔 비가 왔다.
가늘고 조용한 비.
말없이 창틀을 타고 흐르며,
마음을 조금 눅눅하게 적시는 그런 비.
아침 공기는 차분했다.
그 비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 톤 낮았고,
거리의 소음도 비에 흡수된 듯 부드러웠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비에 스며드는 도시의 피부를 상상했다.
나도 저렇게 조용히 적셔지고 있었으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빗속 풍경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오후가 되자 공기는 달라졌다.
갑작스레 그쳤던 빗방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고,
햇볕은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세상을 내리눌렀다.
그늘은 부족했고,
숨은 두 번 쉬어야 겨우 하나가 됐다.
무더위는 마치 질문 없이 대답을 요구하듯
무례하게 들이닥쳤고,
나는 그 앞에서
그저 서서히 지쳐갔다.
**
지친다,
정말 지친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친다.
무더위에 눌린 나날들이
고요한 비명처럼 내 속을 긁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하루,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그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누가 나를 토닥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손 하나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길에 눈물 날 것만 같은 그런 날.
**
휴식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아니고,
성장을 위한 도전도 아닌,
그냥 ‘지금의 나’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진짜 쉼.
커다란 포옹도,
뜨거운 응원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는 침묵 속에서
“괜찮아, 그냥 있어도 돼”
라고 말해주는 공기 같은 시간이 그리웠다.
**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바람조차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의 체온까지도 높아진 듯하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일상은 손에 착 감긴 올가미처럼
내 하루를 꼭 붙잡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참았다.
**
그래서 나는 오늘,
그저 ‘멈춰있음’을 선택했다.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고,
폰도 내려두고,
그저 ‘존재하는 시간’에 나를 놓아주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하루가 지나면
내 마음 어딘가엔
“이 날은 조금 지쳤었다”라는 기록 하나가
묵직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다.
**
6월 16일,
오늘 나는 비에 젖었고,
햇볕에 눌렸고,
침묵 속에서 지쳤다.
하지만 그 지침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도, 수고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잘한 거야.”
**
누군가는 오늘도 무언가를 이뤘을 테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오늘,
그냥 숨만 쉬었다.
그게 오늘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전부가,
오늘의 나에겐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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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의 여운
6월의 절반이 지났다.
계절도, 나도
이제는 조금 숨을 고를 때다.
우리는 달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숨을 쉴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시간을 살아간다.
오늘,
잠시 멈춘 당신에게도
고요한 위로가 닿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