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6일, 비와 무더위 사이에서

by 김기수

6월 16일, 비와 무더위 사이에서


오전엔 비가 왔다.

가늘고 조용한 비.

말없이 창틀을 타고 흐르며,

마음을 조금 눅눅하게 적시는 그런 비.


아침 공기는 차분했다.

그 비 때문인지,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 톤 낮았고,

거리의 소음도 비에 흡수된 듯 부드러웠다.


창밖을 가만히 바라보며

비에 스며드는 도시의 피부를 상상했다.

나도 저렇게 조용히 적셔지고 있었으면.

아무것도 증명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빗속 풍경이 되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


하지만,

오후가 되자 공기는 달라졌다.


갑작스레 그쳤던 빗방울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사라지고,

햇볕은 기다렸다는 듯

강하게 세상을 내리눌렀다.


그늘은 부족했고,

숨은 두 번 쉬어야 겨우 하나가 됐다.

무더위는 마치 질문 없이 대답을 요구하듯

무례하게 들이닥쳤고,

나는 그 앞에서

그저 서서히 지쳐갔다.


**


지친다,

정말 지친다.


몸이 지치고,

마음이 지친다.

무더위에 눌린 나날들이

고요한 비명처럼 내 속을 긁고 있었다.


무언가를 해야 할 것 같은 하루,

하지만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내 마음.

그 사이에서

나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누가 나를 토닥이지 않아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정작 손 하나 건네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길에 눈물 날 것만 같은 그런 날.


**


휴식이 필요했다.


무언가를 이루기 위한 노력도 아니고,

성장을 위한 도전도 아닌,

그냥 ‘지금의 나’를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진짜 쉼.


커다란 포옹도,

뜨거운 응원도 필요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는 침묵 속에서

“괜찮아, 그냥 있어도 돼”

라고 말해주는 공기 같은 시간이 그리웠다.


**


무더위 속에서도

에어컨 바람조차 피로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마음의 체온까지도 높아진 듯하다.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지만

도망칠 곳이 없었다.

일상은 손에 착 감긴 올가미처럼

내 하루를 꼭 붙잡고 있었고,

나는 그 안에서

조용히 고개를 숙인 채 숨을 참았다.


**


그래서 나는 오늘,

그저 ‘멈춰있음’을 선택했다.


창문을 조금 열고,

바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아무 음악도 틀지 않고,

폰도 내려두고,

그저 ‘존재하는 시간’에 나를 놓아주었다.


기억에 남을 만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이 하루가 지나면

내 마음 어딘가엔

“이 날은 조금 지쳤었다”라는 기록 하나가

묵직하게 남아 있을 것 같다.


**


6월 16일,

오늘 나는 비에 젖었고,

햇볕에 눌렸고,

침묵 속에서 지쳤다.


하지만 그 지침 속에서

나는 나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그래도, 수고했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지만

오늘을 살아낸 것만으로도

너는 충분히 잘한 거야.”


**


누군가는 오늘도 무언가를 이뤘을 테고,

누군가는 내일을 준비하고 있을 테지만,

나는 오늘,

그냥 숨만 쉬었다.


그게 오늘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 전부가,

오늘의 나에겐 가장 필요한 일이었다.



일기의 여운


6월의 절반이 지났다.

계절도, 나도

이제는 조금 숨을 고를 때다.


우리는 달리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숨을 쉴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이 시간을 살아간다.


오늘,

잠시 멈춘 당신에게도

고요한 위로가 닿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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