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17일, 고도를 기다리며

by 김기수


6월 17일, 고도를 기다리며


하루 종일 후덥지근했다.

바람은 멈춘 듯했고,

햇볕은 마치 공기 전체를 눌러앉은 것처럼

몸과 마음을 무겁게 했다.


이럴 땐,

조금만 움직여도 숨이 차고,

생각마저 끈적하게 이어진다.

그럼에도 나는

“지루한 하루를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조금은 의식적으로 행동했다.


작은 물 한 잔을 정성스럽게 따르고,

창문을 열어 바람이 들어오기를 기다리고,

불필요한 잡념을 한 번쯤 걸러내 보기도 했다.

소리 없이 정리된 책상 위를 바라보며

“지금 여기”를 내 삶의 일부로 인정하려 애썼다.


**


하지만

하루를 열심히 살아도

결국 남는 건

**‘별로 한 것도 없이 지나간 하루’**라는

조금은 텅 빈 문장 하나였다.


창밖은 어느새 어둑해지고,

하늘은 오늘 하루를 조용히 덮고 있다.

무언가 대단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고,

심장이 두근거릴 일도 없었다.

그래도 나는 이 하루를 살아냈다.

더운 공기 속에서,

무기력함 속에서,

나 스스로를 향한 작은 다짐을 놓지 않기 위해

애썼다.


**


때로는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순간이 있다.

오늘이 바로 그랬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세상이 기대하지 않아도

나는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일상의 틈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틈에서

조금은 웃고,

조금은 체념하며,

조금은 ‘내일’을 상상했다.


**


기다림에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무의미한 기다림이고,

하나는 의미를 만들어내는 기다림이다.


오늘의 나는

지루함 속에서

후자의 기다림을 택하려 했다.

마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그 기다림은

확실한 대상이 없더라도,

기다린다는 행위 자체에 의미가 스며든다.

그것은

미래를 상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작은 의식이기도 하다.


**


하루의 끝자락,

나는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희미한 불빛을 바라보며

이 하루를 정리한다.


오늘 나는

의도적으로 움직였고,

의식적으로 호흡했으며,

무기력함을 껴안은 채

작은 활기를 심으려 노력했다.


이 모든 것이

겉보기엔 아무 일도 없어 보일지라도

내 안에서는

분명히 ‘살아내고 있는 중’이라는 신호였다.


**


밤은 그렇게

조용히 내려앉는다.


낮 동안의 후덥지근함도,

피곤하게 붙잡았던 활기도,

이제는 조금씩 바닥으로 가라앉고 있다.

마치 내일이

무언가를 다시 채워줄 것이라는 믿음처럼.


**


나는 아직

특별한 이유 없이 설레는 것을 믿는다.

계절이 변하는 소리,

새벽 공기의 투명함,

그리고 이유 없이 좋은 날이 있다는 가능성.


그 믿음 하나로

나는 오늘의 지루함을 견디고,

내일의 문 앞까지 걸어갈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건

조용히 기다리는 일뿐.


그 기다림이

무의미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는 오늘을 마친다.


**


내일,

조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기를.

조금은 좋은 일이 생기기를.

조금은 더 가벼운 마음으로 일어설 수 있기를.


그 바람 하나로

나는 다시

고도를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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