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땅에서 태어났지만 바다를 향해 걸었다.
4억 5천만 해가 넘는 세월 동안, 바다의 가장자리에서 모래에 등을 묻고 살아온 생명.
거대한 재난도, 심해의 침묵도, 시간의 검은 혀도 그를 삼키지 못했다.
투구게.
그 이름처럼, 단단한 등딱지를 두른 그의 몸은 마치 태초의 갑옷 같았다.
긴 꼬리는 단지 무기가 아니었다.
자신이 쓰러졌을 때, 다시 일어나기 위해 꼭 필요했던 균형의 지렛대.
모래 위에서 그는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움직인다.
허물을 벗고 또 벗어, 더 나은 자신으로 변해간다.
속을 들키지 않지만, 그 누구보다 깊은 기억을 품은 존재.
세상은 자주 변했지만, 그는 굳이 변하지 않았다.
파도가 무엇을 지우든, 그는 제 자리를 지켰다.
움직임은 느리지만 방향은 정확했고,
작지만 누구보다 오래 살아남았다.
그의 피는 푸르다.
바다의 색을 닮은 생명의 피.
그 속의 세포는 인간의 눈에 보이지 않는 적들—
세균과 내독소, 오염과 질병—을 막는다.
보이지 않는 위협 속에서도 사람을 살리는 건
그 보이지 않는, 조용한 생물의 피 한 방울이었다.
그는 모래 위의 무기이자, 생명.
침묵의 예언자이며, 가장 고요한 구원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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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는 묻는다.
우리는 왜 쓰러질 때마다 비명을 지르기보다,
그처럼 조용히 일어나지 못하는가.
우리도 한 번쯤은
자신만의 꼬리를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아도,
자신을 다시 일으키는 한 가지를 마음속에 품고.
우리도 허물을 벗는다.
관계의 껍질, 기대의 껍질, 두려움의 껍질.
그 속에서 조금씩 자란다.
허물은 낡았기에 벗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커졌기 때문에 작아진 것이다.
그러니 부끄럽지 않게 벗어도 된다.
우리도 언젠가,
단단한 투구가 필요하다.
누군가의 말이 창이 되고,
침묵이 칼이 되어 마음을 찌를 때.
그럴 때를 위해,
말 대신 견딘 시간들이 방패가 되어주는 날이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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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구게는 사랑도 깊게 한다.
산란기, 암컷의 등에 올라탄 수컷은
끝없이 따라다닌다.
바다를 건너, 모래를 지나,
어두운 밤 속에서조차 물러서지 않는다.
사랑을 고백하는 대신,
그는 등을 타고 걷는다.
말보다 오래 남는 방식으로.
우리는 때때로
말을 너무 많이 해서 사랑을 망치고,
침묵을 너무 오래해서 마음을 잃는다.
그러나 이 작고 오래된 생물은 말이 없다.
그저 곁에 있고, 따라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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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를 바라본다.
모래 위를 걷는 그의 발자국은 금세 지워지겠지만,
그가 남긴 존재의 무게는
시간을 뚫고 여기까지 닿았다.
우리는 무엇으로 살아남을 것인가.
외형으로? 말로? 숫자로?
아니, 결국 우리를 증명하는 건
얼마나 오래 사랑했고,
얼마나 깊게 견뎠으며,
얼마나 조용히 아름다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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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도 투구게처럼 살아야 한다.
천천히, 조용히,
허물을 벗고,
다시 일어나며,
필요한 사람 곁에서 등을 타고 걷는 마음으로.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그 자리를,
당신만은 오래 지켜주는 생명이길.
당신의 피는 붉을지라도,
그 속엔 누군가를 살릴 만한 파란 진심이 흐르기를.
그리고 언젠가,
누군가 당신을 향해
이렇게 말하길.
“이 사람은 오래전 바다에서 걸어온,
단단하고 조용한 생존자였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