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단어는 늘 우리 뒤에 서 있었다.
조용히 숨을 고르며,
오래된 나무의 나이테처럼 한 겹 한 겹 쌓인 시간을
어느 순간 ‘뚝’ 하고 떨어뜨린다.
우리는 그 소리를 듣는다.
아주 멀리서, 아주 작게.
그러나 한 번 들리기 시작하면
온몸의 세포가 그쪽으로 귀를 기울인다.
마침내 비가 그쳤다.
마침내 네가 돌아왔다.
마침내 잠이 들었다.
마침내 끝이 났다.
마침내 시작되었다.
각각의 ‘마침내’는 저마다 다른 무게를 진다.
어떤 것은 깃털처럼 가볍게 내려앉고,
어떤 것은 낡은 철문이 쾅 닫히듯 무겁다.
또 어떤 것은
오래 묵혀둔 눈물이 뺨을 타고 흐를 때처럼
따뜻하면서도 아프다.
왜 우리는 ‘마침내’라는 말을 할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저릿해지는 걸까.
그건 아마
‘마침내’를 말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미 긴 기다림의 증거이기 때문일 것이다.
누군가는 십 년을 기다려 한 마디를 내뱉고,
누군가는 삼십 초를 버티다 마침내 포기한다.
누군가는 죽음 직전까지 끌고 가서야
그 단어를 입에 올린다.
모두 다르지만,
그 말을 내뱉는 순간만큼은 비슷한 표정을 짓는다.
눈을 살짝 감거나,
입꼬리가 미세하게 떨리거나,
숨을 길게 내쉬거나,
고개를 아주 천천히 끄덕이거나.
‘마침내’는 혼자 말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누군가에게 전하고 싶어서 나온다.
“야, 나 마침내…”
“너… 마침내…”
“우리… 마침내…”
그 한 마디 뒤에
얼마나 많은 밤들이,
얼마나 많은 울음들이,
얼마나 많은 ‘조금만 더’들이
숨어 있는지.
때로는 축하로,
때로는 위로로,
때로는 작별로
그 단어는 변장한다.
하지만 본질은 같다.
우리가 ‘마침내’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건
우리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이고,
아직 느끼고 있다는 증거이고,
아직 누군가를 향해 말을 걸고 있다는 증거다.
마침내 나는 너를 용서했다.
마침내 나는 나를 용서했다.
마침내 나는 떠나기로 했다.
마침내 나는 남기로 했다.
마침내 사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
마침내 사랑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 모든 ‘마침내’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묻는다.
그러면 이제 뭐하지?
마침내 도착한 자리에서도
새로운 기다림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내’는 결코 끝이 아니다.
오히려 또 다른 문을 여는 소리다.
가장 조용하고,
가장 무겁고,
가장 떨리는
문고리 돌리는 소리.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말한다.
“마침내…”
그러면 상대는 안다.
그 한 마디 뒤에
얼마나 긴 이야기가 숨어 있는지.
얼마나 많은 계절이 스쳐갔는지.
얼마나 많은 버티기가 있었는지.
그래서 우리는
‘마침내’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조용히 손을 내민다.
아무 말 없이.
그저 그 사람이
여기까지 왔다는 걸
알려주기 위해.
마침내, 라는 두 글자가
우리 모두에게 하는 말은
아마 이런 것일 거다.
“너는 포기하지 않았다.”
“너는 견뎠다.”
“너는 여기까지 왔다.”
“그래서 이제,
괜찮아.”
그리고 우리는
그 말을 듣는 순간만큼은
정말로, 아주 잠깐이라도
모든 게 괜찮은 척
웃을 수 있다.
마침내.
그 단어는
우리가 서로에게 건네는
가장 서정적이고
가장 쓸쓸하고
가장 따뜻한
인사말이다
3. 손잡고 함께 걸어가는 실루엣, 길 끝에서 마주한 빛 (서로에게 건네는 ’마침내…’의 따뜻함과 연결감을 상징적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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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갑자기
“마침내” 라는
글자가 떠올라 쓰게 되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