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들려온 한 마디

한 사람 마음이 열리던 날

by 장은경

찬양은 채 시작도 하지 못했다.

“세상에 …”

첫 소절을 떼는 순간, 감격의 눈물이 먼저 터졌다.
노래 대신 반주만 예배당을 채웠다.


영자와 내가 ‘세상에서 방황할 때’를 부르기로 했지만,
찬양은 결국 우리 가족의 특송이 되었다.


“우리 아버지가 예수님 믿고 함께 교회 나가는 것.”

나의 간절한 소망이었고 우리 가족 모두 큰 바람이었으니까…


중학교 3학년, 그해 겨울 새벽에 있었던 일이었다.

우리 섬에는 고등학교가 없어 중학교를 졸업하면

목포로 나가야 했다.


아버지와 엄마는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낙지를 잡으러 바다로 나가

겨울의 차가운 기운과 갯벌의 짠 내음을 잔뜩 안고

새벽 세 시가 되어 돌아오셨다.


그 시간이면 우리는 아버지가 오신 줄도 모른 채

꿈속을 헤매고 있을 시간이지만

아버지의 나직한 한 마디에

우리는 동시에 눈을 떴다.


“나, 이번 주부텀 교회 댕길란다.”


아버지는 우리가 교회 가는 것을 몹시 싫어하셨고,

그래서 엄마도 늘 눈치를 보며 교회를 다니셨다.


“아버지, 진짜요? 진짜로 교회 가신다고요?”


언니는 몇 번이나 묻고 또 물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으니까~.


그 말을 듣는 순간, 몇 주 전의 일이 떠올랐다.

그날도 주말이라 언니가 목포에서 들어오는데,

아버지는 낮잠을 주무시다 갑자기 일어나


"응, 왔냐?" 하시며 두 딸을 부르시더니

“우리 딸들 시집도 못 보내고 죽는 줄 알았다”

그렇게 안아주시며 한참을 우셨다.

그러다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누워 코를 골며 주무셨다.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어리둥절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 눈물의 이유를 알 수 없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 물으니 아버지는 기억하지 못하셨다.

나는 '아버지가 기억하시면서도 모른 척하시는 걸까

아니 꿈속에서 무언가 보신걸' 생각했다.


그날 새벽, 교회 나가신다는 말씀은

어쩌면 그날의 눈물에서 이미 시작되었는지도 모른다.



아침이 되자, 아버지는 혼자 가기 멋쩍으셨는지

이웃 오빠와 멀리 사는 친구까지 함께 나가자며 권유하시더니

여덟 명의 새 식구 교회에 나오게 되었다.

주일이 되자 우리 온 가족이 모였고,
친척들까지 찾아와 축하예배를 드렸다.
다른 집들도 친척들이 함께 오면서
교회는 그야말로 잔치 분위기가 되었다.


우리 아버지의 마음이 바뀐다는 게 쉽지 않다 생각했는데

우리에게는 무엇보다도 큰 기쁨이었다.

그 마음을 녹여준 건 그날 꿈속의 비밀이 있지 않았을까!


아버지는 새벽 바다의 차가운 바람을 가득 안고 돌아오셨지만

그날 우리 가족의 마음는

어느 날보다 벅차고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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