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똑 닮은 둘째 딸
흔들림 없이 걸어가신 아버지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둘째 언니
밤이 깊어져도 쉽게 책을 덮지 못하는 사람.
언니는 아버지의 단단함을 닮았고,
엄마의 끈기를 닮은 것 같다.
둘째 언니의 성격은 꼼꼼했다
아니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답답함인지도 모른다.
호미를 들고 콩밭을 메러 나가간 적이 있었다.
엄마와 큰언니가 빠르게 한 줄을 매고 다음 줄로 넘어갈 때,
언니는 잡초 하나 남기지 않으려고 아주 작은 것까지도 줍고 또 주웠다.
다른 사람들은 이미 한 줄을 끝내고 다음 줄이지만
둘째 언니는 반 줄도 채 오지 못했다.
그 모습을 본 큰언니가 결국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그만하고 집에 가서 밥이나 해!
거기서 그렇게 뜸 들이면 언제 끝내냐!”
지금 생각하면 웃음이 나오지만
그만큼 언니는 ‘대충’이라는 단어를 모르는 사람이었다.
둘째 언니와 오빠는 연년생이다.
대학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들고서
기쁨, 부담, 걱정이 한꺼번에 뒤섞인 그런 분위기였다.
그 순간, 아버지는 아주 조심스럽게 말씀하셨다.
“화순아… 어렵겠다 내년에 둘을 대학 보내야 하는데…
우리 형편에 너까지는 힘들어.”
언니는 순간 눈을 감았다.
들숨과 날숨이 길어지는 순간이다.
언니는 천천히 눈을 떠 아버지를 바라봤다.
입술이 아주 작게 떨렸고,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언니가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봤다.
“아버지… 저, 꼭 갈 거예요
이번만 해 주시면… 그다음부터는 장학생으로 다닐게요.”
그 말은 아버지를 깊은 침묵 속으로 이끌고 갔다.
그래서 언니는 대학생이 되었고
다른 때보다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
우리 동네는 담배 농사를 짓는 집이 많았다.
담뱃잎을 말리는 게 한여름 풍경이었다.
대부분의 농사가 다 어렵지만 담배는 더운 여름에
나보다 큰 나무 사이에 서서 숨 막힌 일을 해야 한다.
밑에서부터 한 잎 한 잎 따서 차곡차곡 모아
비닐하우스에 새끼로 엮어 줄지어 걸어 말린다.
담배 잎을 말린 후 부스러기로 만들어 종이에 돌돌 말아 피우는 게
어쩜 너무 쉬운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누구라도 담배를 쉽게 피웠고 쉽게 끊지 못했다.
아버지 역시 평생 담배를 놓지 못한 분이었다.
힘든 하루를 마무리하는 데 담배는 친구 같은 존재였고,
습관이자 위로이기도 했다.
엄마도, 큰언니도, 심지어 의사 선생님까지 여러 번 말렸지만
아버지는 늘 “나 알아서 한다”며 흘려보냈다.
그런데 그 아버지를 움직인 사람이 바로 둘째 언니였다.
어느 겨울밤, 아버지가 유난히 기침을 많이 하시던 날이었다.
언니는 아버지 앞에 담배 갑을 탁 내려놓으며 말했다.
“아버지, 이제 그만 피워요.”
아버지는 처음엔 웃으며 넘어갔다.
하지만 언니는 단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았다.
“저, 그 냄새 맡기 싫어요
요즘 기침도 심하시면서 아버지가 아프면… 누가 책임져요?”
언니의 말은 무단히도 결단한 사람의 말이었다
"제가 대학 가기 전 아버지께 약속한 장학생 생각나시죠
저는 약속 지켰잖아요 아버지도 저한테 뭔가 보여주세요"
그날 이후,
아버지는 무슨 생각이신지 "알았다"하시며
담배에 손도 데지 않으셨고
담배 농사 대신 수박 농사를 시작하셨다.
어떻게 그런 결단을 할 수 있는 걸까?
아니 어떤 마음이면 할 수 있는 걸까?
묵묵하지만 흔들림 없는 삶
세월이 흘러도 아버지의 단단한 눈빛과
언니의 흔들리지 않는 책임감은 변함이 없다
그저 행동과 결심 하나로 사람에게 힘을 주고
누군가를 지켜주고 일으켜주는 사람이
어쩜 아버지를 똑 닮은 둘째 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