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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와 사회운동

예수의 길, 헤로데의 길

by 전지훈

종교와 대중 운동은 한 배에서 태어난 형제다. 이 문장을 보고 주말마다 서울 광화문과 여의도를 수놓는 정치 집회에 참여하는 종교인 무리를 떠올리는 사람도 있겠다. 제정분리 사회에서 종교가 정치의 최전선에 나서는 기현상을 ‘기독교의 극우화’라며 비판할 수도 있겠으나, 역사적으로 종교의 대중 운동은 언제나 진영논리를 따르기보다 사회 경향을 거스르는 역방향성을 띠었다. 일제 강점기에는 주기철 목사를 필두로 한 한국 기독교계가 신사 참배를 거부했고, 1980년대에는 정의구현사제단을 주축으로 한 한국 가톨릭계가 시국 선언을 발표한 사례만 봐도 그렇다. 때문에, 정치에 이념을 활용하는 시도가 본격화한 근대 이후 종교인은 ‘본 회퍼’ 목사처럼 언제나 권력자가 작성하는 살생부의 맨 윗줄에 이름을 올렸다.


이런 특성은 모든 기독교계 종교의 근원인 ‘예수’로부터 출발한다. 그는 시기는 로마의 지중해 패권이 확립된 시기에 태어났다. 로마 제정의 초대 황제로 등극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전 44년 카이사르의 암살 이후 20여 넌 간 계속되던 로마 내전을 끝냈다. 옥타비아누스의 뒤를 봐 주던 이집트를 속령으로 만든 로마 제국의 진군은 시리아와 팔레스타인으로 이어졌다. 예수 탄생 시기 팔레스타인을 통치했던 ‘헤로데 대왕’은 당시의 정치적 혼란을 기회로 이용해 군주가 됐다.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었던 그는 ‘외세’였던 로마의 권위를 발려 정치적 기반을 다졌다. 당시 진행된 예루살렘 성전 재건도 같은 맥락에서 추진했던 사업이었다. 예수가 ‘성전이 곧 무너질 것이다.’라고 예언한 이유는 그 사업 속에 ‘내집단’을 강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음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신으로 추앙받는 예수가 사회운동가적 기질을 드러냈다는 기록은 많다. 당시 유대인들은 사회적 빈부 격차와 대내외적 정치 불안정이 극심한 사회에서 살았다. 오늘날 비슷한 문제를 겪는 한국 사회가 ‘혐중 문제’로 몸살을 앓듯,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도 로마인은 물론, 그리스와 사마리아 같은 외지에서 온 이방인을 혐오하는 분위기가 강했다. 예수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포교 활동에 ‘가족’을 해체하는 다소 극단적이고도 혁신적인 방법을 활용했다. 이는 생업을 팽개치고 예수를 따라가는 베드로의 모습과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 달라는 제자의 부탁에 “나를 따르라.”라고 단호하게 대답하는 예수의 행보를 기록한 성경 구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기독교 목회자 대부분은 이런 예수의 행보를 ‘순종’으로 해석하지만, ‘모든 대중 운동은 가정의 해체로부터 시작한다.’라는 사회학자 에릭 호퍼의 주장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사회 운동의 성패는 저마다 다른 사회적 배경을 지닌 구성원들이 서로 얼마나 연대하느냐에 달렸다. 이 목표를 이루려면, 이들의 개인 경험의 뿌리를 이루는 전통적인 집단 경험을 해체하고 그 빈자리에 목표를 추구하는 집단 활동이라는 새로운 경험을 채워 넣어야만 한다. 예수가 제자에게 가족을 떠나 새로운 종교 공동체에 참가하라고 요구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지향점은 다르지만, 나치 독일의 ‘히틀러 유겐트’나, 소련의 ‘피오네르 소년단’ 같은 사례뿐 아니라, 우리에게 친숙한 미국의 ‘보이 스카우트 연맹’이나 기독교계의 ‘YMCA’, ‘YWCA’ 활동도 같은 맥락으로 분류할 수 있다. 이런 기독교의 파괴적인 행보는 선교 과정에서도 그대로 발휘돼 조선 후기 조정이 ‘미풍양속을 해친다.’라는 이유로 천주교를 탄압하는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사회 운동이 모두 같은 방식을 사용하는데도 저마다 다른 결과로 이어지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대중 운동의 방향성이 다르기 때문이다. 예수가 종교 공동체의 범주에 들어설 수 있는 사회 계층을 넓히기 위해 가족을 해체했던 것과는 다르게, 헤로데 대왕과 스탈린, 히틀러는 모두 사회 운동에 참여하는 집단을 특정하기 위해 전통 공동체를 파괴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사회 운동의 본질이 김영삼 전 대통령이 상도동 밥상머리에서 언급한 대로 ‘얼마나 더 많은 세(勢)를 끌어올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다시 눈을 거리로 옮겨 본다. 수많은 사람과 광기에 가까운 열기로 거리를 가득 메운 종교의 세는 과연 ‘예수’의 뒤를 따르는가. 아니면 헤로데와 같은 ‘세상’을 향해 흐르는가. 저마다 거리의 모습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이 맹신의 흐름이 도착할 지점도 다르게 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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