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으로 가는 길
가끔 삶을 살다 보면 문득 기존의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을 가고 싶을 때가 생깁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들어갈까, 말까 고민하게 되고 불안한 감정이 생깁니다.
이때 저는 새로운 길을 가보길 추천합니다. 지금이 너무 만족스러웠다면 새로운 길을 생각하지 않을 테니까요.
기존의 길은 나에게 정말 좋은 곳, 최선의 선택이 아닐 확률이 큽니다.
예시로 현재 직장을 다니면서 채용사이트를 수시로 들어가서 보게 되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면
같은 맥락일 확률이 큽니다.
저 또한 새로운 길을 가보고 싶은 생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유튜버가 되고 싶어서 무작정 영상을 찍고 편집을 해서 시작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어렵고 힘든 길이였습니다.
그리고 나의 영상을 찍고 올리는 것에 만족을 느껴야 되는데 어느새 조회수, 구독자 내가 아닌 타인의 시선에 대한 만족감을 찾는 나를 발견하였습니다. 내가 원하고 추구하는 길이 아니라 생각하게 되었고 결국 접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저 또한 새로운 길에 대해 도전하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실행에 옮겼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내가 해보고 후회하는 것과 하지 않고 후회하는 것은 천지차이입니다.
기존의 길과 새로운 길에서 고민이 된다면 가볍게 새로운 길을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새로운 길을 다시 도전합니다. 바로 글쓰기입니다.
처음 글을 쓰게 된 배경은 저는 일기를 쓰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루에 마침표를 찍는 기분이고 하루에 다양한 일들과 감정들이 생기는데 그 감정을 정리해 주는 느낌이라 마음이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이렇게 차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글을 쓰게 되었는데 글을 쓰면서 내 생각과 마음이 정리되는 마음이 평온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렇게 글쓰기가 좋아져서 새로운 길을 다시 가기 위해 실행에 옮깁니다. 가다가 어려운 부분도 있을 것이고 힘든 부분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다신 하기 싫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바로 실행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행복하게 살고 싶습니다."라는 제목처럼 저는 행복으로 가는 길을 가기 위해 오늘도 실행하겠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타인의 시선에 유독 예민한 편이었습니다. 예민하게 된 결정적인 포인트가 2개 있었습니다.
첫 번째는 7살 때 자전거를 타다가 사고를 당했고 이마가 찢어져 봉합하는 수술을 하였고 이마에 큰 흉터가 남았습니다. 성인이 돼서도 이마 흉터를 가릴 수 있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다녔으며 지금은 흉터가 신경 쓰이지 않지만 성장을 하면서 조금씩 외모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누가 나를 어떻게 바라볼까 라는 생각을 많이 갖게 되었습니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된 첫 시작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 성인이 되고 난 후 성인여드름을 심각하게 앓고 있었으며 아토피 피부라 건조하고 흉터가 많았습니다. 정말 심할 때에는 온 얼굴이 여드름으로 덮여있어 세수하게 되면 얼굴이 너무 따갑고 아프고 부었고 울퉁불퉁한 내 피부가 싫어 거울을 보는 것을 싫어하고 다른 사람과 대면하거나 대화를 나누게 되면 혹시 내 피부를 보고 있지는 않을까 의식해서 눈을 피하고 직장에서는 어쩔 수 없지만 의도적으로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자리는 피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외모에 신경을 쓰게 되었고 이게 성인까지 이어지면서 타인에 대한 시선에 많이 신경을 쓰게 되었던 거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 사람이 내 흉터를 보고 있지 않을까 내 여드름 피부를 안 좋게 생각하지 않을까라는 수많은 나의 생각과 추측들을 하였지만 되돌아보면 상대방은 나에게 별로 관심 없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부정적인 생각을 갖는 것도 나에게 안 좋다고 생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최종적으로 나의 손해라는 점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 이후 행복의 관점은 타인이 아닌 바로 나 자신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물론 타인의 인정, 칭찬 등 상대방이 나를 위한 말을 해줬을 때 행복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타인의 인정과 칭찬이 없으면 행복하지 않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른 누군가에게 내 행복을 찾지 마세요. 타인은 내 행복을 가져다주는 사람이 아닙니다. 행복은 바로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타인의 말이나 행동, 시선으로 오늘 하루가 힘들었다면 괴로웠다면 슬펐다면 너무 타인에게 내 감정과 생각을 쏟아내지 않고 나 자신을 칭찬해 주고 격려해 주는 따듯한 하루가 되었으면 합니다.
화라는 것은 무엇일까 사전적인 정의로는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이라는 뜻을 가진다.
화는 어디에서부터 올라오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누군가 화를 내게 되면 상대방은 기분이 안 좋아지고 그 주변사람들에게도 불편한 감정에 휩싸이게 만든다.
화는 이처럼 강하면서도 날카로운 감정을 지니고 있다.
일부 소수의 사람은 필요에 의해 화를 꼭 내야 된다고 이야기한다.
화를 내야지 본인이 화난 상태를 표현할 수 있고 상대방이 나의 상태를 알기 때문에 조심할 수 있다는 의견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어릴 적부터 화를 내면 안 돼 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다.
사회생활과 대인관계를 하면서 우리는 종종 화라는 감정이 올라오곤 한다.
화는 과한 욕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대인관계에서는 상대방이 내 뜻대로 해줬으면 하는 욕심, 화가 생성되기 전에 단계가 과한 욕심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화를 독이라고 표현을 한다. 한마디로 화는 치명적이며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불교에서는 절대 화를 내서는 안 된다고 이야기한다. 화는 어디서 만들어지는가 바로 나한테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럼 결국 독을 품은 것은 누구인가? 결국 화를 내는 사람은 본인이 자처하여 독을 마시는 거 와도 같다는 것이다. 화를 내서 해결될 일이었으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화를 낼 것이다. 화를 내서 해결될 일은 없다.
가끔 이런 날이 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화를 내고 시간이 지나 마음이 힘들었던 기억, 화나고 미워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결국 본인이 힘들고 손해다. 화는 수많은 리스크를 가지고 온다. 관계를 파탄으로 만들 수 있고 내 인생을 절망으로 빠트릴 수 도 있다. 화가 일어나면 그 감정을 지켜보고 화를 내지 않도록 해야 한다. 화가 나는데 화를 내지 않는 것과 화가 나는데 화를 내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럼 반대로 화를 내는 상대방을 대할 땐 어떻게 해야 되는가, 여기서 백설공주 이야기를 하고 싶다. 화가 잔뜩 난 마녀는 예쁜 백설공주가 질투 나고 미워서 화(독사과)를 주려고 한다. 백설공주는 이 독사과를 받아서 먹으면 치명적인 상태에 놓이게 되는 것이고 이 독사과를 받지 않으면 평소와 같은 상태가 된다. 이처럼 내가 받지 않으면 그 독사과는 백설공주의 것이 아니라 마녀의 것이 된다.
"화는 마녀의 독사과와도 같다."
내가 화를 내면 그 독사과를 먹는 것이고, 상대방이 내게 준 독사과를 받지 않으면 결국 그 독사과는 상대방 것이 된다.
며칠 전부터 편의점 앞 빼빼로들이 눈에 띄기 시작한다.
그럼 속으로 아 이제 벌써 빼빼로데이가 왔구나 다음 달이면 벌써 12월이구나라고 짐작을 하게 된다.
빼빼로데이는 화이트데이와 밸런타인데이 하고는 다르게 현재의 삶 속에서 소중한 사람에게 주고 싶어지는 느낌을 받는다. 그래서 간혹 학창 시절에 선생님이 나눠주시기도 했고 회사를 다니면서도 상사나 동료들이 나눠주고는 했다. 그래서 빼빼로데이는 소소한 정이라고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어느새 빼빼로데이는 빼빼로를 받은 사람에게는 자랑거리, 못 받은 사람에게는 서운한 감정을 들게 하는 골칫거리가 되어버렸다.
빼빼로데이가 생겨난 큰 뜻은 누구는 받아서 행복한 하루가 되고 누구는 못 받아서 불행한 하루가 되게끔 하는 날로 만들어진 것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그냥 단지 빼빼로를 많이 팔기 위한 목적일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게 다라는 것이다.
빼빼로 이 하나의 과자로 내 하루가 혹은 내 삶이 내 인생이 헛살았구나 불행한 삶이구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 먹고 싶으면 그냥 가서 내 돈 주고 사 먹자 그 맛이 그 맛일 것이다.
작은 빼빼로 하나 가지고도 하루가 기분이 좋고 안 좋고 가 나눠지는데 심지어 생일, 명절, 크리스마스, 화이트데이 등 여러 가지 날 일 때는 얼마나 더 꿀꿀한 기분을 느꼈을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온전히 이러한 날들을 즐기지 못해서 누구는 행복한 사람 누구는 불행한 사람이란 것은 없다. 우리는 모두 다 행복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다. "행복은 파랑새와 같다"라는 말이 있다. 살고 있던 집을 떠나 파랑새를 찾아 수 없이 떠돌다가 결국 집에 와서 파랑새를 발견했다는 말이다. 한마디로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에게도 있는 것이 아니고 바로 내 안에 있다는 것이다.
이 마음을 되뇌다 보면 자주 밖을 보는 내 시점이 어느새 자주 내 안을 들여다보게 된다. 상대방을 보는 내 시점이 어느새 나를 보고 있는다.
오늘은 빼빼로데이다. 빼빼로를 안 받은 사람이 있으면 너무 서운하거나 섭섭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고작 과자 하나로 하루가 망쳐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과자 하나로 하루가 좌지우지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기엔 당신은 너무 소중한 존재이기에...
우리는 항상 선택의 갈림길 속에 있다. 연인과 싸웠을 때 이 연인과 계속 함께할 것인지 이별할 것인지, 직장생활에 어려움이 있을 때 이 직장을 계속 다닐 것인지 이직할 것인지, 가족과 함께 산다면 앞으로도 살 것인지 독립할 것인지, 인생은 경험이며 항상 그 경험 중에는 선택이 존재한다. 우리는 이 선택 중에서 최선의 선택을 하고 싶어 한다. 연인과 헤어지는 것이 최선의 선택이면 그 선택을 하는 것이고 이 직장을 계속 다니는 게 좋다 생각하면 그 선택으로 계속 다니는 것이다. 그리고 이에 따른 결과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누군가 그 짐을 대신 짊어주지 않는다.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사전적 정의로는 "원인에 따라 결과가 있으니 응당 그 보답을 받는다"라는 뜻을 가진다. 한 마디로 내 선택에는 그에 따라는 결과가 올 것이고 그 결과는 온전히 나의 것이다라는 말이다.
지금 어떠한 일로 고민하고 있으면 본인이 선택을 하면 된다. 경제적인 문제, 건강적인 문제, 직장 문제, 대인관계 문제 등 그리고 그 선택에 후회를 하면 안 된다. 그 시기에 내가 한 선택은 분명 최선의 선택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은 제 각각 삶에서 자신에게 좋은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되어있다. 이 연인이 정말 너무 안 좋아서 사귀진 않았을 것이다. 분명 내가 좋아한 부분이 있었고 그 이유로 연인이 되어 만남을 이어온 것이다. 하지만 만나 오면서 맞지 않는 부분 때문에 싸움으로 이어져 결국 이 사람과 계속 행복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어 이별이라는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다.
직장, 동료, 대인관계 등도 비슷하다. 분명 일을 다니면서 혹은 같이하면서 좋았던 부분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을 했을 것이다. 이직 문제도 마찬가지다 이 회사는 뭔가 10% 부족해 그래서 정말 완벽하고 나를 100% 만족하는 직장으로 이직해서 일을 할 거야 정말 완벽하고 100% 만족하는 동료를 만나서 일을 꾸준히 할 거야
100% 완벽하고 만족하는 곳은 이 세상에 없다. 삶이 있으면 죽음이 있듯이 이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와도 같다. 이 세상에 나를 100% 만족시킬 수 있는 건 없다.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이 선택을 했을 때 100%는 아니지만 한 70~80% 만족해 그럼 최선의 선택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70~80% 나를 만족시키는 다양한 이유들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내가 만족하는 것이 20~30%라면 다른 선택지를 찾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내가 더 만족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을수록 나의 삶은 행복으로 채울 수 있기 때문이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나의 경험하고 선택만 있을 뿐이다. 내가 만족하고 좋아하면 그 경험과 선택을 하는 것이고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안 하면 되는 것이다. 인생에는 정답과 결과가 없다. 인생에 정답이 무엇이다.라는 것은 없고 인생은 꼭 이러한 결과를 만들어내야 한다 라는 진리도 없다. 오늘도 정답 없는 삶에서 나의 경험과 선택을 해오느라 고생 많았어요. 오늘도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그거면 됐어요.
너는 나에게 너무 따뜻해
나도 너에게 따뜻해지고 싶어
너는 나에게 너무 친절해
나도 너에게 친절해지고 싶어
너는 나를 많이 배려해
나도 너를 많이 배려하고 싶어
너는 나를 많이 이해해
나도 너를 많이 이해하고 싶어
너는 나를 많이 좋아해
나도 너를 많이 좋아하고 싶어
너는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줘
나도 너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싶어
너를 닮아가는 나를 보고 나를 닮아가는 너를 보면서
내 마음은 오늘도 따뜻한 마음으로 채워지고 있어
앞으로도 서로에게 좋은 선순환이 되어주자
만약 안 좋은 순간이 오게 되더라도
선순환이 되었던 순간을 잊지 않으면 우리는 변하지 않을 수 있으니까
비 오는 날이면 생각나는 음식
뜨끈하고 시원한 국물 한 입이면
가라앉았던 기분도 쓸쓸했던 마음도
따뜻하게 보살펴준다
쫄깃쫄깃한 수제비를 먹으면
여러 가지 고민과 복잡했던 생각도
지금 이 순간은 모두 잊게 해 준다
어머니가 정성스럽게 반죽하여
만들어준 음식이라 맛은 배가 되고
행복한 기분까지 맛볼 수 있게 된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에게 딱 맞는 사람은 없습니다.
성격이 잘 맞고 좋았다면 외모가 별로 내 스타일이 아닐 수 있고
외모가 내 스타일인데 성격이 잘 안 맞을 수도 있고
경제력이 좋은데 거리가 멀고 만남이 쉽지 않을 수 있고
거리는 가깝지만 경제력이 좋지 않아 평범한 데이트를 하지 못할 수 있고
나는 조용한 곳을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사람 많고 즐길 수 있는 곳을 좋아할 수 있고
나는 여행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상대방은 술 마시는 것을 좋아할 수 있고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는데 상대는 담배를 좋아할 수 있고
사람마다 본인이 가지는 장점이 있고 단점이 있을 수 있다.
나에게 백 퍼센트 맞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 여기서 소중한 인연을 만나는 건 내가 어느 정도 괜찮다 생각하면 선택하고 알아가 보는 것이다.
너무 빨리 가지 않아도 되고 너무 느리게 가지 않아도 된다.
내 마음을 들여다보면서 순간순간 마다 선택을 하고 정진하면 되는 것이다.
그 선택이 후회가 될 수도 있고 그 선택이 잘했다고도 생각할 수 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또 지금 마음이 나중에는 더 좋은 마음으로 바뀔 수 있다.
지금은 불편했지만 나중에 편해질 수 있고 좋아질 수 있다.
지금은 좋지만 나중에 불편하고 싫어질 수도 있다.
앞 날은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오늘 하루하루 최선을 다하고 최선의 선택을 하고
나를 들여다보고 노력하고 앞으로 나아가면 되는 것이다.
요즘 sns중독이 많다고 한다. sns를 하는 이유는 무엇이 있을까? 내 삶을 보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삶을 보기 위해서 sns를 하는 게 일반적인 이유이다.
그럼 sns중독 되면 왜 안 좋다고 이야기하는가? 그리고 왜 안 좋은 감정과 부정적인 생각이 많아지게 하는 것일까?
다른 사람의 삶을 보기 위해 sns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평소 자기의 일상은 잘 올리지 않는다.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고 있는다든지 아침에 일어나 먹은 맨밥에 고추장 비빔밥은 잘 올리지 않는다. 삶의 하이라이트 자신의 좋은 점과 자랑할 점을 올리는 게 대부분이다. 좋은 식당을 간 것, 여행을 간 것, 쇼핑을 한 것, 등 재미난 것과 즐거운 것을 올린다.
나도 어떻게 보면 하이라이트 즐거웠던 추억만 올린다. 그렇게 다른 사람의 즐거운 하이라이트만 보게 되면 나도 저렇게 살고 싶어 지거나 현재 아무것도 안 하고 있는 것에 무력감이 몰려온다.
인생을 살면서 다른 사람의 삶은 내 인생에 하나도 도움을 안 준다고 생각하는 게 좋다. 왜냐면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살아주는 것도 아니고 무언가 좋은 영향을 주는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의 하이라이트가 있으면 분명 하이라이트의 반대되는 부분도 있을 거라는 것이다. 카카오톡도 이러한 부분이 많이 나타난다. 프로필 사진 등에 더 많이 드러나게 된다.
sns의 빈도 수가 많아지게 되면서 타인의 평가에 중독되게 되면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평가 속에서 사는 삶으로 살아가야 되기 때문에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타인의 평가에서 벗어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타인의 삶을 보고 나의 삶이 변화되는 것은 없다고 생각해야 된다. 타인의 삶은 타인의 삶이고 내 삶은 내 삶일 뿐이다.
둘째, 인생에 정답은 없다. 타인이 살고 있는 삶이 정답 일 수는 없다는 생각을 가져야 한다. 그 삶 속에서도 분명 각자의 고민이 있고 고통스러운 점, 힘든 점은 존재하기 때문이다.
셋째,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나의 삶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무엇이고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에 대한 생각을 습관화해야 한다. 타인이 아닌 나의 삶을 들여다보자.
중도라는 용어의 개요는 두 극단을 떠나 한편에 치우치지 않는 공명한 길. 불교에서는 유(有)나 공(空)에 치우치지 않는 진실한 도리, 또는 고락의 양편을 떠난 올바른 행법을 중도라고 한다.
더욱 간단하게 얘기하자면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 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요즘 중도의 중요성을 많이 느끼고 있다. 너무 음식을 많이 먹게 되면 속이 안 좋고 소화가 잘 안 된다. 또 한 너무 적게 먹으면 영양 섭취가 잘 되지 않고 건강을 유지하기 어렵다. 여기서 알아야 될 건 적당히 먹어야 된다는 것이다. 또 너무 일을 무리해서 하면 몸이 상하고 스트레스받을 수 있다. 일을 적당히 하면 본인의 경험과 성장에도 도움을 주고 일의 능률도 올라가게 된다. 대인관계도 너무 집착하고 치우쳐져 있으면 관계가 원활하지 않고 트러블이 생길 수 있다. 운동도 마찬가지다 너무 무리하게 운동하면 몸에 무리가 나고 부상에 위험이 있다. 위에 이야기한 것처럼 무엇이든지 무리하지 않게 적당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바로 중도를 지키면서 삶을 살아가는 것과도 같다.
중도의 삶을 살게 되면 내 삶이 온전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어느 한쪽에도 치우치지 않다 보니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다. 평정심을 유지하게 되면 마음에 평온함이 찾아오고 평온함은 곧 행복을 가져다준다.
내가 하는 것에 꾸준히 노력하자. 하지만 너무 욕심부리고 무리하지 말자.라는 것을 생각하며 살아가자.
성공된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돈이 많은 부자가 된 삶?
명예를 얻고 인기인이 된 삶?
높은 권력과 직위를 얻은 삶?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삶이 존재할 수 있고
어떠한 삶이 성공된 삶인지 확실한 정의가 있지 않다.
성공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바로 실패이다.
반대로 실패가 없는 삶은 성공된 삶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럼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실패가 없으니 성공된 삶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
이것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는 삶이다. 실패는 무언가를 실행하고 도전하였을 때 실패를 경험한다.
그럼 실패가 없는 삶은 어떠한 삶인가?
바로 내가 목표로 한 삶에 도전하며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서서
꾸준히 나아갈 수 있는 삶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이게 바로 성공된 삶이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사람은 살면서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 살아간다. 유명한 발명가, 기업인, CEO들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 수많은 실패를 하면서도 본인이 목표로 한 삶에 재도전하며 마음을 잡고 살아간다.
하루 24시간은 똑같지만 하루를 그냥 의미 없이 보내는 것과 본인이 목표로 한 삶에 도전하는 것은
삶의 농도가 다르다. 우리는 하루하루 본인만의 행복한 목표를 찾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나의 삶의 농도를 본인의 색으로 더욱 뚜렷하게 칠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가 소중한 존재이고 그러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와 자격을 갖추었기 때문이다.
당신의 삶의 농도는 뚜렷하신가요?
내가 아무리 끌어당겨도 가까워질 수 없는 관계
나를 좋다고 해도 내 마음이 뜻대로 움직일 수 없는 관계
서로가 많이 좋아하더라도 한 순간에 금이 갈 수 있는 관계
서로가 무관심하고 싫어하더라도 한 순간 친해질 수 있는 관계
인연관계는 평생 그 사람을 좋아할 수도 없고 평생 그 사람을 싫어할 수도 없다.
정말 서로 좋아하는 연인이 그 사랑의 결실을 맺고자 결혼을 하였다.
하지만 이혼을 선택한다. 사람의 마음은 변화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한결같을 수는 없다.
정말 상대방에게 노력을 하여 정성스럽게 하더라도
그 마음이 부담이 될 수 있고 상대방에게 노력하지 않는 감정을 줘도 좋은 관계로 발전할 수 있다.
반대로 노력을 꾸준히 하여 상대방의 마음이 없었다가 커질 수도 있고
노력을 하지 않아 처음에는 좋다가도 나중에 마음이 식을 수 있다.
이처럼 인연관계는 변화한다.
변화하기 때문에 현재에 더 충실해야 한다. 봄이 왔을 땐 벚꽃을 보고 즐기며, 여름이 왔을 땐 시원한 수박, 계곡, 바다를 보고 즐기며, 가을이 왔을 땐 단풍, 선선한 드라이브를 즐기고, 겨울이 왔을 땐 새하얀 눈과 크리스마스 낭만을 즐기는 것이다. 그때마다 인연이 내게 찾아오면 즐기면 된다. 그리고 봄이 지나가고 여름이 왔을 때 봄을 찾지 말고 여름을 즐기면 된다.
지나가버린 봄처럼 인연은 내가 원한다고 다시 돌아오지 않기에 현재에 충실하라 그거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