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제가 풀려버린
오랜만에 간 미용실 그리고 푹신한 의자의 감촉이 참 좋다.
긴 연휴에 연차 며칠을 더해 더 긴 연휴를 만들어서 잘 쉬고 있던 중에 이참에 미용실이나 다녀올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모아나에 한창 빠져 있었던 시절 허리에 닿을 만큼 긴 머리에 비치웨이브 파마를 한 이후로, 어깨선보다 조금 더 내려오는 중단발에 레이어드를 넣은 스타일을 거의 6년째 고수하고 있던 참이었다. 머리스타일에 변화를 주고 싶다는 충동이 들 때마다 미용실 예약을 했다 취소했다 하면서 고민을 하다가, 결국은 이번 연휴를 참아 넘기지 못하고 히피펌에 다시 도전하기로 했다. 미용실 예약을 일주일 전에 해놓고, 바로 전날까지도 가? 말아? 하는 고민을 하다가 어찌어찌 미용실에 발걸음을 했다. 날씨도 점점 더워지겠다 머리를 묶었을 때도 예쁘게 꼬불꼬불했으면 좋겠다 싶었다.
누가 내 머리를 만져주고 씻겨주고 하는 건 언제나 나를 기분 좋게 한다. 순식간에 세 시간이 흐르고 - 웹사이트에 적힌 예상 시간보다는 한 시간이 더 걸렸지만 - 드디어 파마가 끝났다. 드라이를 해주실 때 나는 생각했다.
아 회사 어떻게 가지.
사실 3년 전쯤에 엄마가 다니는 미용실에서 파마를 시도한 적이 있는데 아프로 스타일 급으로 꼬불꼬불하게 나온 데다 부피도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커져 버려 이튿날 파마를 바로 풀러 간 적이 있었다. 엄마가 다니는, 그리고 계속 다닐 미용실인데도 바로 머리를 풀러 간다는 건 그만큼 급했다는 것이리라. 내가 꿈꾼 비치웨이브는 정말 아니었다. 이번에도 비치웨이브는 아니었다.
일단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우선 이튿날 머리를 감고 직접 손질해 보기로 했다. 머리를 감고 말리자 이건 모아나가 아니라 모아나 친구 마우이! 급하게 검색도 해보고 유튜브도 보니 컬크림이라는 걸 꼭 발라야 되는 것 같았다. 그래 아직 판단은 이르다. 아마 집에 있는 보디 오일을 대충 발라서 그런 걸 거다. 바로 아마존에 들어가서 컬크림을 찾아봤더니 꽤 값이 나가는 한국 제품이 몇 가지 나왔고 그중에서 리뷰가 좋은 헤어 오일과 컬크림을 주문했다. 이로써 파마 비용 외에도 몇 만 원이나 되는, 마음이 찌르르한 추가 지출이 발생했다. 이틀 뒤에 제품이 도착하고 머리에 발라보니 컬은 잘 잡아주는 것 같은데 머릿결이 아무래도 푸석해 보였다. 이번에는 바로 근처 가게로 뛰어가 유명하다는 트리트먼트 제품을 사 왔다. 부랴부랴 머리에 트리트먼트를 바르고 수건을 뒤집어쓰고 욕조에 들어가 있자니 실소가 터졌다. 편하게 출근하려고 머리를 했는데 오히려 손질하는 품이 더 드는 꼴이 됐다니.
직장인이 되고 이제껏 어떻게 하면 시간을 덜 들이면서도 멀쩡해 보일까를 생각하며 머리도 옷도 골라왔는데 아직도 수련이 부족해서 이런 사태가 되어 버렸나 하는 자괴감마저 들었다. 파마를 풀어 말아하는 또 답 없는 고민을 하다가 이왕 해버린 거 조금만 참아보기로 했다. 하지만 그러기엔 또 큰 난관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밤에 머리를 감고 자는 내 생활습관. 나는 거의 매일 저녁 반신욕을 하면서 머리를 감기 때문에 아침에 머리를 따로 감지 않고 출근한다. 그런데 밤에 머리를 감고 헤어 오일이며 컬크림 등을 치덕치덕 바르고 자려니 냄새 때문에 수면에 방해가 되고 헤어 제품이 자는 동안 얼굴에 닿아 베개며 얼굴 위생이 엉망이 되는 느낌이었다. 고민을 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유튜브에 올라온 곱슬머리 관리 영상들을 보니 머리를 감고 젖은 채로 헤어 제품을 바르던데, 이미 말라있는 머리의 겉 부분만 물을 다시 적시면 어떨까. 다음 날 아침 바로 해보았다. 전날 머리를 감고 아무것도 바르지 않은 채 헤어드라이어로 바싹 말린, 그래서 바야바 같은, 머리에 분무기로 물을 흠뻑 적셨다. 그리고 그 위에 헤어 제품을 발랐더니 부스스하고 답도 없는 흡사 바야바의 털이 꼬불꼬불 컬이 살아있는 머리카락이 되어 갔다.
그 후 며칠간 아침마다 마른 머리에 다시 물을 적시고 이렇게 저렇게 손질 방법을 바꿔가며 어떻게 해야 머리가 예쁘게 되는지 감을 익혔다. 조금 더 지나자 출근 전에 하는 머리 손질이 파마 전에 하던 그것보다 쉬워졌다는 생각도 들었다. 천만다행이다. 그때 파마 풀어버렸으면 어쩔 뻔했어. 돈도 돈이지만 평생 파마를 안 하리라는 각오를 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겨우 지켜낸 히피머리를 하고 생각한다. 항상 튀지 않는 색의 옷을 입고 단정한 머리로 직장생활에 최적화된 스타일 - 누구의 입에도 오르내리지 않을 눈에 띄지 않음과 최소한의 시간 투자를 필요로 하는 - 을 하던 나도 결국 어느 한구석에서는 자유로운 히피이고 싶었던 걸까. 고민 끝에 한 파마도 바로 풀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아침에 드는 몇 분이 아깝고 무서웠었던 걸까. 우리, 직장인이라고 다 포기하지 말자. 결국 우리는 새로운 머리 손질법에 익숙해질 것이고, 운이 좋다면 품도 안 들고 적당히 자연스러웠던 그 전설의 파마를 다시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