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서야 느껴보는
'오늘이 이곳에서 근무하는 마지막 날이에요.'
금요일 오후 또 한 통의 이메일이 날아들었다.
몇 달 전에 입사한 프로젝트 매니저가 전체 발신한 이메일에는 오늘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둔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여러분과 함께 이 중요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는 "퇴사 클리셰"와 함께. 항상 이런 식이다. 누군가가 퇴사한다는 소식은 부서 내부에서 미리 공유되지도 않은 채 마지막 근무날에 퇴사자 본인이 보내는 이메일에 의해 그제야 알려진다. 이런 점에서 이 부서는 그 때나 지금이나 변한 게 없다.
지금까지 몇 명이나 퇴사를 한 걸까. 프로젝트가 시작되고 얼마지 않아 주재원으로 현지에 파견된 나는, 파견 전에 현지에서 있었던 프로젝트 킥오프 미팅에도 출장으로 왔던 그야말로 원년 멤버이다. 개인 책상도 없이 회의실 두 개에 소담히 모여 앉아 일을 하느라 온라인 미팅이라도 할라치면 옆에 앉은 사람 말하는 소리가 다 섞여 들어가곤 했던 그 시절부터, 이제는 한 층 전체를 번듯한 부서 사무실로 사용하는 큰 팀이 될 때까지 많은 사람들이 들고 났다. 물론 부서가 커가는 동안 드는 자리는 당연히 많았지만 그에 못지않게 나는 자리도 빈번했던 것 같다. 나와 비슷한 시기에 입사를 한 정규직 실무 담당자들은 나를 포함해서 고작 세 명만이 남아 있고, 이제껏 프로젝트에서 고용했던 계약직 컨설턴트들을 포함하면 꽤나 많은 이별이 있었다. 정규직 직원들은 퇴사를 하며 떠나갔고 - 그중에서는 권고사직도 몇 있었지만 - 적지 않은 수의 컨설턴트들도 소속 컨설팅펌과 협의하여 프로젝트에서 제 발로 떨어져 나갔다.
시차와 격무, 그리고 니 업무 내 업무를 가리지 않는 원맨쇼까지.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다가도, 닥치니 뭐라도 해야 하고 눈 뜨니 또 아침이라 계속해나갔다. 대부분 그런 마음이지 않았을까 싶다. 현실 부정을 하다가도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고 다시 출근하고, 또 마음을 고쳐먹고 결국 일을 해내고. 그럼에도 몇 달에 한 번씩은 당장 내일이라도 때려치우고 싶다는 마음이 솟구쳤다. 나보다 몇 달 늦게 들어온 팀 동료가 육 개월도 채우지 못하고 떠나갈 때, 회사에 대한 불만을 실컷 털어놓을 수 있었던 부서 동료가 사직서를 냈을 때. 그리고 내가 가족 행사로 본국에 돌아가있는 틈에 나와 같은 시기에 주재원으로 온 중국인 동료가 퇴사했다는 소식을 그녀 자신도 아닌, 그녀의 상사가 보낸 전체 메일을 통해 알게 되었을 때도 기분이 텅 비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항상 먼저 떠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여태 한 직장에서 오래 있어본 적이 없다. 길어야 일 년 반이었다. 일이 조금만 익숙해진다 싶으면 얼른 지루해했고, 일이나 회사에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있으면 바로 다른 것을 찾아 헤매고 다녔다. 그래서 항상 먼저 떠났고 쉽게 자리를 떴다. 이번에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나에게는 주재원 계약이 있었으니까. 일반적으로 회사에서 주재원 패키지를 받게 되면 리로케이션에 수반되는 비용은 전부 회사에서 부담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 안에는 국제 이사에 필요한 비용, 임시 주거 비용, 식비, 항공권 비용, 국제 우편 비용 등등 다양한 비용들이 들어가게 되는데, 주재원이 일정 기간 이상 근무를 하지 않으면 전체 비용의 일정 비율을 회사에 반환하고 나와야 하는 식이다. 나의 경우에는 근무 기간 일 년을 못 채울 시 모든 비용의 백 퍼센트를, 근무 기간이 일 년 이상 일 년 반 미만일 경우에는 모든 비용의 오십 퍼센트를 반환해야 되는 계약이었다. 전체 비용은 적게 잡아도 삼천만 원에서 사천만 원 선이었다.
그렇게 계약에 발목 잡혀 버티다 보니 이 년 반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간 여러 사람들이 떠나갈 때마다 부럽기도 했지만 대부분 아쉽고 섭섭했다. 그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항상 뒤도 안 돌아보고 꽁무니를 빼던 내가 이제야 남은 사람들의 기분을 느껴본다. 그것도 꽤 자주. 주말이 지나고 출근한 월요일의 사무실, 그 공기 속에는 어김없이 딱 한 명이 난 자리만큼의 아쉬움이 녹아들겠지만 남은 사람들은 의연하게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다. 어쩔 수 없지 뭐. 회사라는 게 바닷물이 들고 나듯 새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으면 나가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그렇게 쿨해지려고 하지만 역시나 생각한다. 다국적과 다언어가 모인 이 부서에서 같이 일했었다는 것만으로도 참 큰 인연은 인연이라고. 그 모두에게 좋은 일이 있기를 그리고 최고의 행운이 따르기를 바라본다. 나 스스로에게는 구상 시인의 시 꽃자리를 다시 읽어주며.
"앉은 자리가 꽃자리니라
네가 시방 가시방석처럼 여기는
너의 앉은 그 자리가
바로 꽃자리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