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태만상

세태만상 - 1

by 독수리

우리 중대장님

벌써 40년이 지났나 보다. 강원도 전방에서 흙더미에 파묻혀 군대생활을 한 지도. 그 시절 군대생활을 겪었던 사람치고 술 안주거리가 될만한 얘기 보따리들을 간직하지 않은 경우를 찾아보기 힘들겠지만, 나도 누구 못지않게 짭짤한 것으로 가지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그중 가장 생각나는 스토리가 우리 중대장에 관한 것이다. 3년 가까운 군대생활 동안 나는 그 사람처럼 철저한 직업 군인을 보지 못했다. FM도 그야말로 Ultra Super FM이라고나 할까.

그는 아침이면 반드시 츄리닝 차림으로 구보를 해서 출근했다. 군복과 모자는 군용 배낭에 넣어 어깨에 둘러메고, 오른팔에 수건을 감은 채로 대략 4Km 정도 되는 숙소에서 구보로 부대에 출근하는 것이다. 비 오는 날에도 굵은 비가 쏟아지지 않는 한 예외는 없었다.

머리는 항상 3cm 이하로 사병들의 규격에 맞추었고, 군복 깃은 풀을 먹여 빳빳했다. 군화와 버클은 그야말로 얼굴에 대고 면도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언제나 반짝반짝 빛났다. 게다가 입만 열면 규정, 규정 찾는 통에 사병들에게 '박규정'(성이 박 씨였음)이라는 별칭으로 통했다.

문제는 이런 중대장에게 끌어다 맞춰야 하는 사병들의 고통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는 것이다.

나도 처음부터 호된 신고식을 치러야 했다. 무더운 여름날, 사단 보충대에서 명령을 받고 더블 백을 메고 땀을 뻘뻘 흘리며 중대본부를 찾아든 나는 행정반에서 2시간 이상이나 볼모로 잡혀 있어야 했다. 대위 계급장이 선명하게 빛나던 중대장은 내가 있는 힘을 다해 우렁차게 전입신고를 하자, 당장 내 복장부터 트집을 잡았다. 그리고는 군인복무신조를 외워보라는 것이었다. 이등병인 나는 처음 가는 부대의 중대장 앞에서 기억을 제대로 떠올릴 수 없었다. 더구나 당시 복무신조는 10개 항목(분명치 않음)이나 되어 분량도 만만치 않았다.

번번이 도중에서 막히자 중대장은 서랍에서 복무신조를 꺼내 주며 다 외우기 전에는 행정반을 못 나간다고 하는 것이었다. 결국 많은 시행착오 끝에야 다 외워댈 수 있었고, 그다음에도 군 생활을 시간 때우기로 생각지말고 국가를 위한, 그리고 자신을 위한 최고의 기회로 삼으라는 등의 일장 훈시를 들은 뒤에야 행정반을 나올 수 있었다.

당시 우리 부대는 수요일 오후마다 정기 구보가 있었는데, 업무 때문에 혹은 이런저런 사정으로 불참하는 사병들이 있었다. 그러나 중대장은 한번도 그저 넘어가는 적이 없었다. 다음 날, 새벽 5시경에 출근해서 단잠에 빠져 있는 구보 불참 사병들을 흔들어 깨웠다. 그리고는 기상시간 전까지 자신이 인솔하여 기어이 구보를 마치는 것이었다.

이런 성격 때문에 종종 보좌관이나 소대장들과 부딪치기도 했지만, 결코 자신의 고집을 꺾는 적이 없었다. 그래서 부대원들은 불평 반, 체념 반으로 중대장에게 적응되어 갔다.

이런 중대장도 함부로 못하는 인물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아내였다. 어찌된 일인지 그의 아내는 종종 부대에 찾아왔다. 그리고는 툭하면 중대장과 대판 싸움을 벌이는 것이었다. 사병들에게는 철옹성같은 중대장도 아내의 히스테리칼한 고음 앞에서는 맥을 쓰지 못해 번번이 시뻘건 얼굴로 씩씩거려대곤 했다. 그런 날이면 퇴근시간이 지난 후에도 뭉그적거리며 행정반에 앉아 있어 관련 사병들을 불편하게 했고, 어떤 날은 한쪽에 야전침대를 펴놓고 아예 귀가하지 않기도 했다.

또 하나의 애로사항은 번번이 진급 심사에서 탈락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당시 고참 대위였고, 군인으로서도 울트라 FM 격인 군인에게 우선순위가 주어지는 것이 당연한 일일텐데도, 번번이 후배들에게 밀려 탈락하는 것이었다. 그럴 때면 세상없는 우거지상에 욕설을 내뱉으며 PX에 있던 막걸리를 모두 꺼내 오게 해서, 사병들만 때아닌 잔칫날을 맞기도 했다.

후에 그는 어렵게 소령 진급이 되었는데, 이때서야 나는 그의 진급 누락의 원인들을 추측해 볼 수 있었다. 그의 철저한 성품이 도리어 진급에는 방해가 되었다는 것(근무는 대충 하고 잘 비벼야 진급이 빨랐다), 고향이 북쪽이었다는 것, 전방만 떠돌다 결혼이 힘들자 술집 여자와 살림을 차린 것도 장애 요인들이 되었던 것 같다.

아무튼 그는 당시 부대원들에게 고달픈 시간들을 때울 수 있는 여러 화젯거리들을 제공해 주고, 내게도 많은 것을 생각게 해주어 현재까지도 기억에 선명하게 남아있는 사람 중의 하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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