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지도 없는 오후

_아날로그

by 하이움

달랑 혼자 낯선 도시에 떨어져

벤치에 앉아 있었던 날.


그 나라의 여름 햇살은 끈적이지 않아

마냥 신기하게 바라봤었고

정신없는 간판들이 없는

단아한 건물과 골목들이

참 이국적이다 싶던 이른 오후


길은 잃었지만

여기저기 벤치가 많아서

그나마 위안이 되던 도시 한구석에서

여행 가방을 앞에 두고

이미 꾸깃해진 지도를 손에 쥔 채

무방비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그때.


은발의 할아버지가 이 작은 도시에

웬 동양 아이인가 신기한 눈빛으로,

그러나 별다른 경계 없이 다정하고

태평스러운 표정으로 말을 걸어왔던 일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도는 들었으나 어느 골목으로 가야 할지

감도 못 잡고 있던 내게 할아버지는

무슨 말인가 계속 했었는데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이상하게 위안이 되던 그 순간,

이 할아버지가 나의 숙소를 찾아 주겠구나

밑도 끝도 없는 믿음이 생기던 그 순간.


숙소는 어차피 찾을 것이니

그대로 할아버지랑 수다를 떠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이런 게 여행이구나

다른 나라에 와 있다는 것이 이런 기분이구나

모든 것이 새롭고 긴장되던 그때

그 긴장감이 싫지 않고 묘한 설렘이던 그 기분을

아마도 할아버지랑 나누고 싶었던 것 같다.


지도를 쓱 보시더니

아예 내 가방을 집어 드는 할아버지.

이 나라 사람들은 이토록 친절하단 말인가


당시 우리나라는 외국 여행객이 많지도 않았지만

여행객을 만났다고 해도 그 사람을 위해 같이 걷고

짐을 나누어질 수 있었을까


당시 나의 할아버지 할머니를 떠올리면

도저히 상상이 안되던 일이었지만

할아버지는 나는 어차피 시간이 많다라든 듯이

그 시간을 이런 식으로 쓰는 것이 기쁘다는 얼굴로

자연스럽게 나의 가방을 들고 앞장섰다.


다행히 그리 멀리 않은 곳에 숙소가 있었지만

우리네처럼 화려한 간판 대신 주소와 숙소 로고인 듯한

귀엽고 우아한 문양이 동판에 새겨져 있었다.


대부분 그런 식이어서 나는 종종 길을 잃었다.

하지만 그건 방황이 아니라

새로운 발견이기 되기도 했다.


갑자기 나타나는 빵집이라든가

오래된 물건들을 파는 잡화점들은

어린 나의 오감을 일깨워 주었으니까.


-세상엔 이런 것들이 넘쳐난단다.


아주 오랜만에

아주 오래된 기억들이 떠올랐다. 방울방울..


다시 가보진 못했지만

그래도 그곳은 그렇게 많이 변하진 않았을 거란

밑도 끝도 없는 생각이 든다.

할아버지도

나이가 드면 으례 그렇듯이

그다지 달라지지 않은 모습 그대로

그 벤치 어디엔가 태평스럽게 신문을 보며

앉아 계실 것만 같다.



맛집들을 검색하지 않는다.

어차피 모든 것이 이국적인 것을..

늘 그랬듯이 나의 감으로 그날의 기분으로

찾아 들어가고 신기하게도 대부분 실패가 없다.


아니 없었다.

요리에 진심인 이 나라는 기본값이

늘 기대 그 이상이었는데


최근에는 전 세계적인 물가상승과 인건비 부담으로

기본 식자재들에 소홀하게 되었는지

외국인 노동자들도 직원들이 채워지면서

전통의 맛이 뒤섞여 버렸는지

때때로 알 수 없는 맛들이 나기도 했다.


안타깝고 어느 정도는 슬픈 일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

우리도 이모집으로 대통합이 되는

오래되고 한 상 차려지는 뜨끈한 정식집이

그 이모님들이 사라지면 누가 이어갈지 알 수 없으니까.


요즘은 그렇게 힘든 일을 하려는 사람들이 없다니까..

아마도 사라지고 말겠지..


한편으로는

친절과 서비스도 실종되고 말 거라면

그래, 로봇의 친절한 도움을 받아가며

레시피 대로 칼 같이 만든

AI 음식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그때는 없고 지금은 있는

구글 지도는 아주 편리한 것이기도 하고

늘 많은 도움을 받고 있지만

오늘은 그만두자. 그때처럼 걷자.


숙소에서 여전히 존재하는 지도를 얻어와서 걷는다.


같은 곳 말고,

다른 곳을 보러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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