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물의 즐거움

_아날로그

by 하이움

새해 기념이랄까

여행의 기념이랄까


생각나는 사람들의 선물을 고르며

종일 한가롭게 걸었다.


아무래도 평소보다는

색다른 곳으로 다니니까

불쑥불쑥 사고 싶은 것들이 눈에 띄고

선물하고 싶은 물건들도 자꾸 보인다.


어쩜 앙증맞고 놀라운 물건들이

이리도 넘치는지 여행할 때마다

감탄과 감동이 이어진다.


로우 앵글로 찍은 도시와 비행기 엽서

반짝이는 큐빅이 박힌 보석함

자석으로 되어 있는 안경케이스

진짜 생화 향기가 나는 핸드크림

봄날 들판 같은 색감의 그릇들


내가 좋아하는 것도 있고

사랑하는 가족이 혹은

반가운 지인이 좋아할 만한 것들이 가득해

시간 가는 줄 모른다.


문구류 좋아하는 아들이

또 다이어리를 보며 서성인다.

이미 샀으니 이건 안 되겠지 하는 마음으로

돌아서길래 한참 눈 독 들인 것을 얼른 몰래 계산한다.

하늘과 비행기 빌딩이 가득한 사진,

과연 아들이 좋아할 만한 것이다.


가슴이 콩닥거린다.

이걸 받고 얼마나 좋아할까..


곧 생일이 다가오는 지인이 좋아하는

핑크색의 귀여운 머그잔을 사고

찻집에서 두 다리를 쉬게 하는 동안

문득 얼마 전 들은 말이 생각났다.


지인 생일 겸 연말 겸 모임을 하기로 했는데

그중 한 명이 선물을 건네는 순서가 되자

"언니는 다 있으니까"

마치 빈손으로 온 이유가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이

태평하게 웃고 있었다.


평소에도 커피나 밥을 척척 사는 타입은 아니었고

오히려 인색한 쪽에 가까웠던 편이라

당사자인 지인뿐 아니라,

우리 모두 그냥 넘겨 버렸지만

한가롭게 차를 마시고 있으니 다른 생각이 든다.


부족한 거 없어 보이는 사람

다 있을 것 같은 사람은 선물을 안 해도 좋은가


-그래도 꽃은 좋아하니까

-핸드크림은 많을수록 좋으니까

-딸기가 벌써 나왔더라고


가 아니라

빈손으로 오는 건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지?


다 있지도 않겠지만

설사 있는 물건을 가져오더라도

선물이란 과하지만 않으면

언제나 사랑스러운 것이고

마음을 대신하는 것이니까 기쁜 거 아닐까?


-언니는 다 있으니까. 부족한 거 없으니까


이건 핑계고 질투다.

상대에 대한 배려나 조심스러운 마음이 느껴진다기보다는

다 있으니까,

다 있는 사람에게 굳이 내가

돈 쓰고 싶지 않아 라는 인상을 풍겼다.


꽃 한 송이가 됐든

작은 핸드크림이든

마음이 있으면 취향을 모르진 않을 것이고

그런 것들을 건넨다고 싫어할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그건 뭔가를 건넸을 때의 상대 표정을

한 번도 상상해 보지 않은

무심한 사람만이 가능한 행동이다.


그 지인은 늘 입버릇처럼

'안 주고 안 받기가 속 편하다'라고 말하지만

글쎄, 맞는 말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누군가를 떠올리며

상대가 좋아할 뭔가를 찾아다니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다.

아니 솔직히 즐긴다.


그 핑곗김에 쇼핑하면서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고

상대의 취향을 공유하면서

새로운 감각의 키울 수도 있으며

끝내는 '주는 기쁨'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이 좋다.


몰래 사서 타이밍을 엿보는 내내

그 마음이 얼마나 즐거운지

물론 사랑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아닌 경우는

쉽지 않다고 생각하지만

어중간한 지인이더라도 필요한 날은 챙긴다.


제철과일이라든가

하다못해 커피쿠폰 등,

선물하기가 너무 편한 요즘 시대에

할 게 없다는 것은 진짜 분위기를 깨는 말이 아닌가.


감동을 주려는 것이 아니다.

예의를 갖추려는 것인데..


다시 떠올려 봐도 오싹할 지경이다.

그녀는 세상 모르는 것 같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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