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앤 아버스론
다이앤 아버스(Diane Arbus, 1023-1971)는 1923년 3월 14일 뉴욕의 부유한 유대인 가문 네메로브 집안의 둘째이자 맏딸로 태어났다. 열여덟 살에 앨런 아버스와 결혼하고 남편에게 사진을 배웠다. 1947~1955년 까지 보그, 글래머, 에스콰이어 등 패션잡지사에서 앨런과 동업자로 일했으나 상업사진에 매력을 느끼지 못했다. 1957년 앨런과 별거에 들어가면서 자기만의 작품세계를 개척해 나갔다. 화가인 마빈 이스라엘의 도움을 받고, 사진작가 리젯 모델에게 사진을 배우면서 독자적인 시각을 구축했는데 뉴욕 거리를 누비며 기형인과 노숙자, 복장 도착자, 나체주의자 등 특별한 인물들을 사진에 담았다. 1963년, 1965년 두 차례 구겐하임 기금을 받았으며 1967년 3월 6일 뉴욕 현대미술관에 열린 ‘뉴 다큐먼트’ 사진전에 처음 다이앤 사진이 걸렸다. 일부 비평가들은 사진속의 역설과 모호성에 주목했으나 찬사보다 이상한 마법사, 불편하다. 왜곡되었다는 비판을 받았다. 타임의 로버트 휴즈는 ‘다이앤의 작품은 매우 만족스럽다.’ 평했고, 뉴욕 타임스는 ‘괴상하다. 어떤 경우에는 사진들이 천박하다는 말도 덧붙여겠다’고 혹평하는 등 논란의 중심으로 떠올랐다. 미국사회에 커다란 파장을 일으켰던 아버스는 우울증과 간염으로 고생하다 1971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사망한 지 1년 뒤인 1972년 미국 사진가로는 처음 베니스 비엔날레에 초청되었다. 그해 미국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에는 25만 명이라는 어마어마한 관객이 다녀갔다. 다이앤 아버스는 워커 에반스, 로버트 프랭크 등과 더불어 다큐멘터리 사진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일란성 쌍둥이(1967) 장난감 수류탄을 들고 있는 소년, 집에서 머리에 헤어롤을 말고 있는 젊은 남자(1966년), 부모와 대치하고 있는 유대 거인(1970년), 카니발에서 칼을 삼키고 있는 알비노(1970) 등 다수가 있다. 생전에 사진집은 한 권도 남기지 않았다. 1972년 아버스 회고전 사진이 작품집 『다이앤 아버스』로 편집되었다. 다이앤 아버스의 큰딸 둔 아버스와 마빈 이스라엘 등 다이앤의 친구들이 공동작업에 참여했다. 2004년 다이앤의 작품과 자료를 집대성한 작품전이 열렸고 미국 사회의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작가가 되었다.
수전 손택(Susan Sontag, 1933-2004)) 은 1972년 뉴욕 현대미술관에서 열린 다이안 아버스의 회고전을 보고 사진 에세이를 쓰게 되었다고 밝힌다. 손택은 아버스 사진의 무엇에 이끌렸을까. 먼저 아버스와 영향을 주고 받은 작가들을 살펴 볼 필요가 있다. 당시 미국 사진계의 거장으로 알려진 스티글리츠(Alfred Stieglitz, 1864-1946)는 ‘스트레이트 포토’를 주창하여 '예술 사진의 아버지'라는 별칭을 얻었다. 이를테면 기존 회화 주의를 비판하면서 카메라를 포함 암실 작업까지 사진 행위 전반을 작가 의식을 담아내는 요소로 상정하였다. 사진을 그림의 종속적인 매체, 모방의 부산물로 여겼던 사회적 인식에 제동을 걸고 예술로서 사진의 독자성을 추구하면서 사진계의 선구자로 남게 됐다. '예술적 사실주의자'로 분류되기도 하는데 ‘구름 시리즈’와 ‘삼등 선실’ 등이 대표작품으로 꼽힌다. 반면 워커 에반스(Walker Evans, 1903-1975)는 '사회적 사실주의자'로 분류된다. 그는 35밀리 카메라를 품에 숨기고 지하철에서 무작위로 승객들을 찍었다. 초상권 문제로 소송에 휘말리기도 했지만, 초상 재현을 가장 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로버트 프랭크(Robert Frank, 1924-2019)는 작품집 『미국인들(The Americans)』을 통해 당시 미국 사람들의 지극히 일상적인 삶의 권태와 우울을 카메라에 담아냈다. 평범하고 차갑고 감동이 없는 사진이라는 비판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였다. 당시만 해도 사진은 심미적인 인식의 그늘에 가려있었다. 비판적 시각은 기존에 시도되지 않았던 세계를 열었다는 의미와도 상통하므로 세 사람 사진은 모두 재현 영역에서 새로운 시점을 보여준 것이다. 특히 워커 에반스와 로버트 프랭크(현대 사진의 아버지)는 미국 사회의 자화상을 사진으로 재현했다는 측면에서 사적인 영역을 뛰어넘어 사진에 사회성을 구현한 사진가로 명성을 얻었다.
다이앤 아버스는 앞의 작가들과 공통된 시각을 가졌으면서도 독창적인 사진 세계를 구축했다. 사진 입문은 25밀리 카메라를 사용했다고 알려져 있다. 초기 사진들은 뜻밖의 프레임과 거친 입자가 특징이다. 이 사진들은 판타지적 특성이 강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상업사진을 촬영할 때 사용했던 카메라는 35밀리 소형 라이카였으나 남편 앨런과 결별하고 1960년경 본격적으로 작품 활동을 하면서 중형 카메라 롤라이플렉스를 바꿨다. 이 카메라를 이안 반사식이라고 하는데 두 개의 렌즈를 가지고 있고 정사각형 포맷이 특징이다. 촬영자 가슴 높이에서 촬영(웨이스트 라벨 파인더)한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카메라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작가의 의식을 표출하는 기제로 쓰였다는 것을 뜻한다. 가슴으로 느끼는 사진을 찍겠다는 의도가 이안 반사식 카메라에 함축된 언어다. 이는 스티글리츠가 주창한 '카메라 의식'과 상통한다. 1964년부터는 마미야 C33과 플래시를 롤라이와 번갈아 썼다. 6×6 센티미터 정사각형 필름 포맷은 '균형감'을 시사한다. 다이앤에게 카메라와 필름 포맷은 공평, 평등의 메타포로 사회 전반에 깔린 불평등적인 요소에 문제를 제기하겠다는 의도가 배어있다고 봐야한다. 이러한 지점이 스티글리츠와 차별된다. 반면 워커 에반스는 일상적인 도시민들의 모습을 담았다는 점에서 사회성이 엿보이지만 지하철 승객을 몰래 촬영하여 윤리적인 결함을 드러냈다. 아버스는 촬영 대상자에게 동의를 구했고 촬영을 거절하면 설득을 거듭했다. 그러나 아버스를 위대한 작가 반열에 올린 것은 표면적인 행위 보다 정상인이 아닌 장애인, 성도착자, 나체주의자 등 사회 비주류로 알려진 인물들을 찍었다는 것이다. 아버스 이전에도 이후에도 비정상으로 분류되는 인물을 집요하게 파고든 사진작가는 찾아보기 어렵다. 벤야민은 회고록에서 19세기 "사진 스튜디오를 방문해 인물 사진을 찍는 일이 부르주아 가정의 의례"였다고 소개한다. 사진은 테크놀로지와 인간의 공동 작업인 만큼 기계와 장비를 마련해야 부담으로 일반인이 쉽게 접하기 힘든 분야였다. 이러한 특수성 때문에 사진은 고급, 향락, 소비, 사치품으로 취급되며 특권층의 전유물로 인식되었다. 비정상인으로 분류되던 인물들을 프레임의 주인공으로 내세워 당시 사진인식에 만연했던 계급차별적 요소를 제거하고 인간 평등 의식을 구현한 작가가 바로 다이앤 아버스다.
A young man in curlers at home on West 20th Street , N.Y.C. 1966
사진 기법적 측면에서도 다이앤의 특징이 있다. 초상사진에 드러난 인물들은 대부분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관람자로 하며금 난해하고 불편한 감정을 자아내며 심지어 당혹스럽게 만들었다. ‘뉴 다큐먼트’ 전에 사진이 걸렸을 때 이미지가 왜곡되었다는 항의를 받은 것도 기형 인이나 정상인, 부자나 가난한 사람, 나체주의자, 성도착자까지 같은 프레임 안에 비슷한 표정으로 배치했다는 점이 문제가 되었다. 사진을 특권으로 향유했던 계층에게는 모욕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다이앤의 특권 제거 방식은 정사각형(사진 포맷)이 주는 균형감에 있다. 당당하게 정면을 응시하는 인물의 초상에서 공평, 평등을 실현하려는 다아앤 만의 사진 문법이라 하겠다.
초상사진에서는 독일의 사진작가 아우구스트 잔더(August Sander, 1876~1864)와 농업안정국 사진팀의 도로시아 랭(1895~1965)이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들 사진과 다이앤의 초상사진은 유사점이 있지만, 확실한 차이가 있다.
<젊은 농부들>, 1925-1927
잔더는 인간을 유형학적으로 분류했다는 평이 지배적이며, 도로시아 랭(Dorothea Lange, 1895-1965)은 미국인의 우울한 초상을 연민으로 바라봤다. 잔더와 랭의 초상에는 기형 인이나 이상한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필름 프레임도 정사각형이 아닌 직사각형을 사용했다. 잔더와 유사점은 인물들의 정면 응시다. 하지만 잔더의 초상사진에는 표정의 모호성이나 불편함은 없다. 지극히 정상적인 프레임으로 정상인을 담았다는 것이 특징이다. 아버스가 사회 비주류를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는 도로시아 랭과 유사하다. 하지만 도로시아 랭은 연민의 시선으로 대상자를 바라봤다. 다이앤은 육체적 결함과 정신질환자까지 촬영 대상자에 포함했다. 인물의 당돌하고 거침없어 보이기까지 한 정면 응시는 연민을 제거하는 요소로 작용한다. 이는 다이앤이 연민의 시선을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구분 점으로 보고 이를 의도적으로 차단하려는 시도라고 보여진다. 따라서 정사각 프레임에 모호한 시선 처리로 인간이라는 본질에 동일성을 부여한 것이 여타 초상사진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라 하겠다.
바라보는 것은 알아차림이다. 알아차림은 사진 언어이며 소통의 문법 체계다. 다이앤은 독창적인 사진 문법으로 미국 자본주의 모순을 직격했으며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경계를 허물었다는 점에서 휴머니즘을 실천한 작가다. “아버스의 사진은 만인이 정체성과 인간관계가 무표정하게 뒤틀려진 탓에 절망적인 소외감 속에서도 옴쭉달싹 못한 채 서로를 낯설어하는 세계를 보여주며 정치를 단호히 단죄했다.”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 시울, 2005, 61) 손택은 아버스의 사진 세계에서 사회에서 소외되어 그늘에 방치된 하위계층의 절망적인 현실을 짚어냈으며 그 이면에 정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개별 존재자라는 코드와 사회 공동체 일원이라는 코드를 함께 지니게 된다. 이는 벗어날 수없는 인간 삶의 양태다. 사회 공동체는 정치 권력과 분리될 수 없다. 권력자는 사회 불평등 요소를 완화하고 화합과 공존을 추구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책임을 방기했을 때 사회공동체는 불행의 늪으로 빠져들고 말것이다. 손택이 다이앤의 사진에 이끌린 지점이 여기가 아닐까 싶다. 어쨌든 아버스가 기형인, 괴상한 사람들을 통해 하고 싶은 말은 무엇이었을까. 이 세계는 강자들, 기득권층만의 것이 아니다. 장애인도 괴상한 사람들도 사회 구성원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존 어리(John urry, 1946-2016)는 이동수단의 발달로 누구나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들고 공간과 장소를 마음껏 향유하는 것 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임모빌리티 사회'로 전환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부동성' 뜻하는 임모빌리는 타자, 또는 약자를 향한 억압과 차별을 내포한 개념이다. '모빌리티 전환'으로 글로벌리즘이 확장되고 있으나 계층, 인종, 국가, 민족, 종교, 남성, 여성, 장애인 비장애인 등의 이분법적 차별요소는 오히려 강화되는 추세라는 것이 어리의 주장이다. 강대국 지배논리를 앞세운 살육 전쟁, 경제 전쟁은 국제사회를 불안과 공포로 몰아가고 있다. 글로벌리즘 여건하에서 전 지구인은 하나의 공동운명체다. 지구 공동체가 공존이냐, 공멸이냐의 분기점에 서 있는 건 아닐까. 아버스의 사진 세계를 20세기 미국사회의 우울한 자화상이라고 치부하고 도외시 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아버스가 사망한 지 55년이 넘었지만 차별없는 시선, 공존을 지향하는 사진 세계는 현재에도 미래에도 여전히 살아 움직여야 할 것이다. 따라서 사진은 고정된 채 살아 움직이는 생물이다.
참고문헌
다이앤 아버스, 둔 아버스, 마빈 이스라엘 편집, <다이앤 아버스>작품집, 뉴욕시티, 1972.
마크 더든, 김유룡 역, 『도로시아 랭』, 열화당, 2003.
발터 벤야민, 에스터 레슬리, 김정아 역, 『발터 벤야민, 사진에 대하여』, 위즈덤하우스, 2018.
수전 손택, 이재원 역, 『사진에 관하여(On Photography)』, 시울, 2005.
존 어리, 김태한 역, 『모빌리티』, 앨피, 2022.
줄리엇 해킹, 이상미 역, 『위대한 사진가들』, 시공사, 2016.
퍼트리샤 보스워스, 김현경 역, 『금지된 세계에 매혹된 사진가 다이앤 아버스』, 세미콜론,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