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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당 Sep 07. 2021

치료가 필요합니다

내 발뒤꿈치는 일 년의 절반 이상 허연 반창고로 덮여있다. 찬바람이라도 불면 영락없이 갈라지기 시작하여 꼭 가뭄으로 갈라진 논바닥 모양이 된다. 어느 때는 2센티 이상 갈라져서 이걸 꿰매야 하나 고민할 정도다. 무엇보다 생살이 찢어져 고랑 파이듯 갈라지니 통증이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내가 사용하는 비법이 있다. 헝겊으로 된 반창고를 되도록 길게 쭉 찢어서 갈라진 부위에 몇 겹 붙여 놓으면 된다. 이틀 정도 지나면서 더 이상 갈라지는 법이 없고 이미 갈라진 부위는 차츰 굳은살이 된다. 집안 내력인지 형제들 발뒤꿈치도 크게 다르지 않아 다들 발뒤꿈치에 허연 반창고를 붙이고 산다. 친정 엄마의 발에도 평생 반창고가 덮여 있었으니 이미 그 효험이 증명된 비법이다. 

 요즘은 발에 사용하는 로션이나 연고들이 종류도 다양하게 나와 있는 모양이다. 주변 사람들이 내 발 꼬라지를 보고 혀를 차면서 사 준 것들이 여러 개지만 나는 도통 바를 생각이 없다. 한두 번 발라보고는 이내 처박아 둔 것들이 벽장 속에서 유통기한을 넘기고 있다. 이런 걸 바르고 나서 두툼한 굳은살에 스며들도록 기다리고 앉아 있는 것이 마뜩잖고, 남의 발도 아닌 내 발에다 크림을 바르고 내가 내 살을 문지르고 있는 것이 민망한 것도 같다. 사실 한 겨울에나 얼굴에 로션을 바르고 사는 내가 발에 그런 정성을 들일 리 만무하다. 반창고 비법이야말로 그런 번잡함이 없어 좋다.   

 그런 내 발이 호사를 하는 날이 있었다. 올봄에 갈라진 발을 보다가 무슨 맘이 들었는지 약통에서 로션 한 개를 집어 들었다. 한두 해 전에 동료가 비싼 것이니 제발 좀 바르라고 당부하며 줬던 것이다. 

뜨신물에 진득이 발을 담그고 굳은살을 불렸다. 덕분에 발톱 밑의 때까지 허옇게 밀려 나와 물 위에 둥둥 떠오르는 게 기분까지 개운했다. 물기를 닦아낸 뒤 로션을 듬뿍 퍼서 발뒤꿈치에 바르고 한참을 문질렀다. 굳은살이 어찌나 두껍던지 아무래도 시간이 요할 것 같아서 머리를 쓴 게 랩으로 싸서 두는 거였다. 한 시간은 족히 지났다 싶어 풀어보니 맨질맨질, 보들보들한 것이 감격스럽기까지 했다. 그 느낌이 참 낯설기도 하고 오랫동안 그리워했던 무엇 같기도 한 게 참 좋았다. 

이삼 일을 연이어해 보니 발뒤꿈치가 손에 닿는 느낌이 여간 기분 좋은 게 아니었다. 물에 담가 문지르고, 로션을 발라 또 문지르면서 어느새 내 발을 내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게 되고, 구석구석 살펴보고, 언제 적 생긴 것인지도 모를 흉터도 문질러 보게 되었다. 여전히 치료를 하지 않는 오랜 무좀으로 고생하는 발가락들도 한 개씩 문질러 보게 되었다. 

 그러다가 삼일째 되는 날에는 발을 쓰다듬으며 울고 앉아 있는 이상한 형국이 연출되었다. 가슴이 울컥하면서 올라온 눈물이 어찌나 많던지 삼십 분은 족히 그러고 앉아 있었다. 

‘아이구. 오랜 세월 외면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내 발아! 미안하다. 미안해.  이삼일 살폈다고 이렇게 부드러워지는 걸 반창고로 하늘 가리듯이 덮어 왔으니...참 미안하다’

글쎄. 발도 화해를 했는가는 모르겠지만 평생에 한 번 쓰다듬은 것만으로 나는 발을 마음 가까이 두어 본 듯했다.      

그러고 보니 내 발이야말로 내가 살아온 것들의 리얼리티다. 심장에서 멀고, 머리에서는 제일 머니 당장 죽거나 굳이 신경 쓰이는 게 아닌 발이 아닌가. 30년도 넘은 발가락 무좀을 치료해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가려움증에 시달리지 않는 것은 아니나 가려워 죽는 일은 없다. 오른쪽 엄지발가락이 검지 발가락 쪽으로 쏠리더니 어느 날부턴가 확연히 발가락 관절이 툭 튀어나오는 게 아닌가. 인터넷에 보이는 모양대로 긴 문장을 쓰고 검색을 누르니 무지외반증이라고 아주 흔한 일인 모양이었다. 걷는데 걸리적거리지만 이만하면 됐다 하고 지나쳤다.

어려서는 굶지 않으면 모든 것이 괜찮았다. 그 후로는 죽고 사는 게 아니면 호들갑 떨지 말자 했다. 발쯤이야 아무 상관없는 것 아닌가. 병원 가서 입원할 정도 아니면 몸도 상관없었다. 눈에 보이고 통증으로 아우성을 하는 몸도 이렇게 외면하는데 보이지 않는 마음, 감정이야 어떻게 취급당했겠는가. 아무래도 괜찮다고, 나는 상관없다고 늘 손사래를 쳤다.      

그러다가 이삼 년 전부터 마음인지 기분인지 이상해졌다. 아무리 눌러도 괜찮지 않았다. 급기야 발뒤꿈치에서 어릴 적 운동화 대신 골라야 했던 고무신 뒤축을 기억해 내고 우는 일도 생겼다. 상담 선생이 진단했다. “트라우마 치료가 필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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