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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를린 박하 May 22. 2024

베를린이 사랑한 남자 홍상수

2024 베를리날레 여행자의 필요


베를리날레 2024 뒤늦은 후기다.  나보다 더 홍상수 감독님을 좋아하는 독일 친구가 있다. 홍감독이 만든 영화를 단편 포함 모두 보았다. 배려 깊은 친구가 재빨리 예매에 성공해 작년에 이어 홍상수감독님의 신작 '여행자의 필요'를 보았다.

작년 작품 '물안에서' 같은 언포커싱된 화면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새로운 도전은 좋았으나 아무래도 눈이 안 좋은 데다 화면까지 그러니 쉽지 않았다.



관객들이 초반에 많이 웃었다.

코미디는 아닌데 짧은 영어대화와 상황들이 주는 부조화가 실소를 자아냈다. 카리스마 넘치는 대 프랑스배우 이자벨위페르(Isabelle Huppert)가 힘을 정말 빼고 헐렁한 꽃 원피스와 밀랍모자를 쓰고 돌아다니며 몇몇 한국사람들과 대화하고 막걸리를 마시며 소소한 일들이 벌어진다. 홍상수영화에서 영어가 가장 많이 사용된 영화다. 굳이 자막까지도 필요 없는 단편적인 대화들은 매우 한국적이다. 모국어든 외국어든 소통의 문제는 늘 있고 아름다운 시, 문학은 언어를 넘어 누구에게나 감동을 줄 수도 있다.





극 중에악기를 연주하는 몇 인물들에게 이리스가 느낌을 묻는 질문을 한다. 그들은 그냥 행복하다거나 팩트를 말하거나 모른다며 대답을 잘 못하는 씬이 반복된다. 나의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어 많은 이들이 서툴다.

영화 중 주인공 이리스(Iris)의 남자 친구 엄마가 기억에 남는다. 엄마보다도 나이가 많아 보이는 아들의 외국여자 친구에 대해 화를 냈지만 스스로 평가해 말리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과거와 행적을 모르니 알아보라고 한다. 누군가를 잘 안다는 것, 중요하지. 잘 안다고 누굴 좋아하는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것도 아니지만 적어도 보이는 단편적인 것으로 질타하고 정죄하는 우를 범하지는 않았다.




영화에 윤동주의 시가 등장한다.

일제강점기 참담한 시기에 주옥같은 문학이 나왔다. 요즘 들리는 뉴스마다 숨 막히고 답답하고 슬픈 소식들로 가득하다.

영화로 예술로 위로받는다.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꽉 채운 많은 관객들에게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내가 영화를 본 날이 2024년 2월 19일이었고 그 주 24일 홍감독은 '여행자의 필요’로 제74회 독일 베를린영화제에서 은곰상 심사위원대상을 받았다.

최우수작품상인 황금곰상에 이은 으로 2022년에도 ‘소설가의 영화’로 같은 상을 받았다. 그는 베를린영화제 경쟁 부문에 일곱 차례 진출했고, 작품상인 은곰상을 5번이나 수상해 베를린이 사랑한 남자라는 표현이 무색하다.



p.s. 홍상수감독을 소개했던 분 실수가 아쉽다. Soo를 독일식으로 읽어 '조'라고 했다. 올해는 김민희가 안 왔다. 다른 배우들이 많이 와서 보기 좋았다. 권해효배우가 베를린에 처음 왔다니 놀라웠다. 그렇게 홍감독영화에 많이 출연했는데 아무튼 반가웠다.


홍상수의 영화를 좋아한다. 그의 영화는 쿠르베의 붓으로 그린 마크 로스코의 그림 같다. 사실을 직시하면서도 서정적이고 단순해 보이나 다양한 변주를 통해 섬세한 심리와 이야기를 담는다.


작년 자주 가는 베를린의 카페에서 우연히 홍감독님을 만나 성덕했다. 담배 피우시다가 기꺼이 사인해 주셨다. 액자에 잘 모셔두었다. 몇 마디 안 하시고 나 혼자 떠들었다.  '물 위에서'영화 보고 옆에 언포커싱에 불편한 독일아줌마가 자기 눈이 이상한 거냐 물어봐서 감독님 콘셉트이라고 설명해 드렸다는 에피소드를 전했더니 그냥 허허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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