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8시, 눈을 뜨고 짐을 챙기려는데 몸이 무거웠다. 전날 밤 5일간의 장거리 이동 강행에 지쳐버린 심신을 풀어준다고 과음한 탓이었다. 사실은 과음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500ml 맥주를 10캔도 넘게 마셨지만, 여행하며 술을 거의 하지 못했더니 375ml 맥주 고작 6병 마시고 나서 꽤나 취해 숙취까지 있었다. 그만큼 몸이 제 나이를 찾았다는 것이겠지, 하고 생각했다. 짐을 다 챙기고 나서 숙소 1층에 있는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먹을만한 것이 별로 없어 토마토 스파게티를 주문했는데 다행히 인제라 빵이 같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역시나 매웠다. 매운 토마토 스파게티는 질색이다. 그리고 곧 미사키(Misaki)가 나왔다. 미사키는, 아디스아바바에 있을 때부터 같은 숙소에 머물던 일본 친구로, 나는 미사키와 일정이 맞아 메켈레(Mekele)까지 함께 오게 되었다. 그리하여 우리는 다나킬 투어까지 3일간 함께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픽업차량을 기다리는 동안 미사키에게 ‘분나’를 한 잔 대접했다. ‘분나’는 에티오피아의 커피로, 우리가 주로 마시는 커피와는 조금 달랐다. 에스프레소만큼은 아니지만 굉장히 진하고 맛은 쓴 편이며, 사케잔 같이 입구가 넓고 작은 컵에 설탕을 타서 먹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단 한 잔 마시고 나면 속이 뜨거워지면서 묘하게 활력이 생겨, 나는 가능하면 하루에 한 잔씩 ‘분나’를 마셨다. 미사키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픽업차량이 도착하여 우리에게 손짓하는 것이 보였다.
투어 회사에는 다나킬 투어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적잖이 모여있었으며, 거친 아프리카 사막을 달리는데 사용될 랜드크루저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잠시 후, 한 남자가 나와 사람들을 네 명씩 차에 배정하기 시작했다. 배정이 거의 끝날 무렵에는 나와 미사키만 남게 되었는데, 운이 좋게도 우리는 둘만 한 차에 배정됐다. 그리하여 뒷좌석에는 나와 미사키, 그리고 운전석에는 가이드 조수석에는 가이드 교육을 받는 친구가 타서, 넷이 함께 하게 되었다. 뜨거운 햇빛 아래에서 터프한 사막 길을 달려야 할 것이었는데 뒷자리를 넓게 쓸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다. 마침내 사람들을 그득그득 담은 차들이 순서대로 출발하여, 총 9대의 랜드크루저가 줄지어 달리기 시작했다. 3일간 필요한 음식과 물자를 담은 모래색 랜드크루저가 선두로 길을 이끌었으며 그 뒤로는 1번부터 8번까지 숫자가 새겨진 랜드크루저가 따라 달렸다. 나와 미사키는 7번에 타고 있었다. 굉장했다, 아프리카 사막을 수십 명의 여행자와 함께 9대의 랜드크루저로 누비다니! 마치 새로운 대지를 찾으러 떠나는 모험가라도 된 마냥 나는 들떠있었다.
멈추어 쉬어가는 곳에서 나와 미사키는 차 밖으로 나가지 않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때 근처 마을의 아이들이 차로 몰려들어 창문 가까이로 얼굴을 들이밀었다. 군데군데 찢어져 너덜너덜한 옷을 입고, 검은 얼굴에는 분필가루같이 허여멀건한 먼지가 뒤덮여있었다. 아이들은 다들 나뭇가지를 한 뭉치씩 들고 있었는데 이내 나는 그것이 칫솔임을 알았다. 케냐 마사이족 마을에 갔을 때도 본 것이었는데, 그들도 이 나뭇가지를 사용하여 양치를 했다. 나는 문득 이들을 따라 양치를 해보고 싶어 졌다. 나는 아이에게 그냥 달라고 할 수는 없었고, 가방에서 커피 과자 하나를 꺼내어, 기다란 나뭇가지 하나와 바꾸자고 했다. 잘라 쓰면 네다섯 번은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제안에 아이는 흔쾌히 승낙했으며, 우리의 거래는 성공적으로 이루어졌다. 나는 기다란 나뭇가지를 반으로 잘라 미사키에게 주었고, 우리는 칫솔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뭇가지 끝부분의 껍질을 벗겨내어 연한 녹색의 속 알맹이가 나오면 그것을 어금니에 넣어 잘근잘근 씹었다. 그러면 속 알맹이가 수십 조각으로 갈라져 훌륭한 칫솔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우리는 자연 칫솔을 가지고 이 구석구석과 잇몸을 긁어대었는데, 그제야 이들이 어째서 이토록 나뭇가지를 입에 하나씩 물고 다니는지 이해가 되었다. 무척이나 시원할뿐더러 긁고 있다 보면 재미있어서 습관적으로 물고 있게 됐다. 단순히 칫솔의 용도로 사용하는 것만은 아닌 것 같았다.
조금 더 가다가 우리는 한 식당에 멈추어 점심을 먹었다. 장대한 행렬의 9대의 차가 식당 앞에서 순서대로 주차를 하니, 축제라도 벌어진 마냥 마을 아이들이 전부 식당으로 몰려들었다. 차에서 내려 함께 투어 하는 사람들을 세어보니 약 30명 정도 되어 보였는데, 대부분이 서양인이었고 일본인이 세 명 그리고 중국인이 두 명 있었다. 그리고 나와 가장 멀리 떨어진 자리에 동양인이 한 명 보였는데, 햇빛에 그을려 새카만 얼굴에 빡빡 민 머리를 하고 있어 한국사람으로 보이지는 않아 관심을 두지 않고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는 미사키와 일본 친구 두 명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한 일본 친구가 내게 어디서 왔냐고 물었다.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대답하자 그는 “저 친구도 한국인이라고 하던데”라고 말했다. 그의 손이 가리키는 곳을 향해 바쁘게 눈길을 쫓아가자, 아까 관심을 두지 않던 남자가 보였다. 나는 그에게, “어! 한국인이세요!?”라고 놀라서 물었는데, 그가 “네, 안녕하세요!”라고 해맑게 대답했다. 너무도 반가웠다. 아프리카에서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한국사람이었다. 가까이서 자세히 본 그는, 아까 흘겨본 것보다 훨씬 더 그을려 있었다. 강렬한 태양에 죽어버린 다리의 살갗이 벗겨지고 있었는데, 벗겨지고 새로 돋아나온 피부 역시 다시 새카맣게 그을려 죽기 일보직전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대화를 이어갔다. 그는 아프리카에 와서 무려 38일간 *트럭킹(Trucking)을 했다고 했다. 이것은 정말 엄청난 것이었다. 나의 배낭여행 전체 예산과 맞먹을 만큼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을 한 번에 지불하고 한 달간 아프리카의 동부지역을 사정없이 누비고 다닌 것이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어 연신 경탄하며 박수를 쳤다. 그리고 그래서 그토록 피부가 전부 타버린 것이었구나 하고 생각했다.
나는 너무도 반가운 한국 친구가 어디에 사는지 문득 궁금해졌다. 그의 입으로 한국의 도시를 듣고 그와 한 번 더 공감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가 뱉은 대답은, 공감을 떠나서 그를 형제처럼 여겨지게 만들었다. 그의 대답은 이랬다. “저, 부천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놀라서 “어! 나도 부천 사는데”라고 대답하자, 그는 바보같이 해맑게 웃으며 “부천, 중동에 살아요”라고 대답했다. 나 역시도 중동에 살고 있어, 내가 한 번 더 크게 놀라자 그는 “중동역 근처요!”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나의 눈과 입의 크기가 거의 같아질 만큼 커지자 그는 결국 마지막으로 결정적인 한 방을 날렸다. “팰리스카운티 아파트요!” 나는 정말 믿을 수 없을 만큼 놀라고 말았다.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는 동네 주민을, 이토록 멀고도 외로운 아프리카 에티오피아의 사막 한복판에서 만나게 될 줄은 정말 감히 상상도 해보지 못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주민인 것을 알자마자, 무언가에 이끌리듯 동시에 소리 지르며 서로를 얼싸 끌어안았다. 이 얼마나 감탄할만한 일인가! 언어가 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가!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 모국어가, 내 언어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 일인가! 심지어 아프리카를 여행하며 처음 본 한국인이 같은 동네 주민이라니! 고독과 외로움, 그리고 그동안 느꼈던 모든 수치심과 분노가 그의 등장으로 순식간에 증발되어 버렸다. 순식간에 이곳이 우리 집인 마냥 편하게 느껴졌다.
*트럭킹(Trucking) – 일반적으로 투어 회사를 통해 모인 사람들이 트럭을 타고 일정기간 동안 아프리카 지역을 누비며 여행하는 것을 말한다.
아프리카를 여행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시간을 차에서 보내는 것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그러나 한시도 지루할 틈이 없는 것이 아프리카 여행이다. 아프리카의 대자연은, 그리고 그 속에서 여전히 원시적인 삶을 꾸려나가는 사람들은 우리에게 여러 편의 긴 영화를 선사했다. 나는 그렇게 에어컨이 나오는 차 안에서 문명을 누리며, 창 밖의 본능적인 세계를 감상했다. 5일간 쉴 틈 없이 달려온 에티오피아의 가혹한 대지는, 케냐 마사이마라의 생명 가득한 초원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치 이곳은, 화상을 입은 대지의 살결이 아물어 생긴 거대한 검은 피딱지 같았다. 검은 피딱지는 그렇게 바닥에 평평하고도 견고하게 바싹 달라붙어있었다. 나는 이곳이, 절대로 생명이 존재할 수 없는 죽어버린 땅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이 무색하게도, 이따금 차가 멈추면 어디선가 아이들이 튀어나와 차를 둘러싸고 우리에게 펜을 달라고 구걸했다. 겨울의 온도가 30도, 한 여름의 온도는 무려 60도까지 올라가버리는 가혹한 대지에, 아이들이 삶을 견뎌내고 있었다.
선두로 달리던 차가 갑자기 비상등을 켜며 멈추었고, 뒤따라오던 차들이 멈추어 이윽고 우리까지 서게 되었다. 나는 눕혀있던 몸을 일으켜 세워 무슨 일인가 하고 보았는데, 도로 한가운데에 하이에나 한 마리가 죽어있었다. 죽은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가이드는 아마도 차에 치어 죽은 것 같다고 했다. 하이에나가 길가에 죽어있다니, 역시 아프리카는 지루할 틈이 없다.
새카만 대지가 순식간에 황량한 사막으로 바뀌었다. 이윽고 창 밖은 노란 모래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방으로 휘몰아치는 바람과 바람이 만나 모래를 일으켜 수십 개의 소용돌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이따금 한 치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강한 모래바람이 차를 덮치기도 했으며 창문을 꼭 닫아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렌즈에 미세한 먼지가 수북이 쌓였다.
차는 바퀴가 푹푹 빠지는 사막 모래를 질주하며 뒤로 엄청난 모래바람을 일으켰다. 에어컨을 켰음에도 하늘에서 직각으로 내리쬐는 햇빛의 열기가 창문을 뚫고 들어와 내부를 덥혔다. 사막의 지독한 햇볕에 피부가 까맣게 그을려버린 돌이 사방에 놓여 있었다. 그렇게 사막에 길을 만들어가며 질주하던 차는 작은 마을 앞에서 멈추었다. 거뭇한 돌 몇 개가 박혀있는 황량한 모래밭 가운데에, 짚을 엮어 만든 서너 채의 집이 작은 마을을 이루고 있었다. 차가 멈추면 언제나 그렇듯 마을의 아이들이 차로 달려들어 우리에게 펜을 달라고 구걸했다. 잠시 후, 아이들이 마치 블랙홀에 빠져들 듯 어느 한 곳을 향해 미친 듯이 달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아이들을 따라가 보았다. 아이들이 멈춘 곳은 8번 차 트렁크였다. 8번 차에는 뉴질랜드에서 온 올리비아가 타고 있었다. 그녀는 아이들이 펜과 공책을 원한다는 것을 미리 알고, 마치 산타클로스처럼 한 보따리를 챙겨 온 것이었다. 그녀는 트렁크에서 공책과 펜, 그리고 작은 계산기 등을 꺼내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펜과 노트를 성공적으로 받은 아이들은 신나서 뛰어다녔으며, 경쟁에서 받지 못한 몇몇 아이들은 바닥에 주저앉아 재산을 탕진한 듯 오열했다. 그것을 보고 있자니 귀여워서 웃음이 났다. 그리고 옆에 있던 이스라엘 친구 이논도 피식- 웃으면서 한 마디를 남겼다. “그래, 그게 인생이지”
드넓은 사막을 질주하느라 흐트러진 대열을 다시금 맞추었다. 9대의 차가 1번부터 8번까지 순서대로 대열을 맞추었으며 식량을 실은 차가 선두로 섰다. 이곳에 멈추어 대열을 다시 맞춘 이유가 있었다. 잠시 후 굉장히 거친 산악길이 이어졌다. 차는 이곳저곳 튀어나온 돌을 밟아가며 올라갔고 나와 미사키는 이리저리 튕기며 몸을 가누지 못했다. 뜨거운 태양의 열기에 잠이 몰려와 잠시라도 졸라치면 그대로 머리를 유리창에 박아버리고 일어났다. 변덕이 심해도 너무 심한 에티오피아의 땅이었다. 그렇게 거친 오프로드를 꾸역꾸역 기어 올라가던 중 가이드가 우리에게 한 마디를 내던졌다. “이것이 아프리칸 마사지입니다”
이윽고 차는 다음 마을에서 멈추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저녁을 먹고 에트라 에일(ERTA ALE) 활화산의 용암을 보러 갈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이곳까지 온 단 하나의 이유였다. 펄펄 끓으며 새빨갛게 빛나는 지옥의 입구를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것! 정말 굉장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가이드들이 마을의 한 집으로 모여들어가 부지런히 음식을 만들더니 마침내 사막에서 훌륭한 만찬이 만들어졌다. 전채요리로 토마토스프와 식빵이 나왔으며, 메인디쉬로 토마토 스파게티와 야채볶음 그리고 디저트로 라임이 제공됐다. 나는 깊은 사막에서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스러운 식사를 했다고 생각했다. 식사를 마치니 태양이 빠르게 모습을 감추었고 하늘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 우리가 트레킹 준비를 마쳤을 때는 7시 30분을 지나고 있었다. 우리는 각자 휴대용 랜턴을 하나씩 들고, 타고 온 차 번호대로 대열을 맞추었다. 그리하여 30명 가까운 사람들이 일렬로 줄을 섰고, 짐을 실은 낙타 두 마리가 선두로 앞장섰으며 세 명의 가이드가 우리와 동행했고 세 명의 무장경찰이 우리를 엄호했다. 완벽하게 대열이 갖추어졌고 드디어 우리는 용암을 품으러 에트라 에일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는 오로지 한 발치 앞에 랜턴으로 만들어낸 원형 대지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달이 거의 완전한 모습을 갖추어 대지를 은빛으로 환하게 밝힐 수도 있었지만, 좀처럼 구름이 허락하지 않았다. 바닥에는 각기 다른 크기의 수많은 돌이 사방에 깔려있어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돌이 서로 갈리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미사키와 사소한 잡담을 하며 걸었다. 태양은 이미 건너편으로 사라져 버렸음에도 공기에 남아있는 태양의 잔향이 바람을 타고 불어와 몹시 뜨거우면서도 건조했다. 나는 금세 물을 한 통 다 비워버렸다. 꼭 물을 두 통 챙겨가라는 가이드의 말에 나는 괜찮다며 한 통만 챙겨 왔는데, 건조한 사막이라는 것을 무시한 나의 실수였다. 나는 참으려고 해보았지만 거친 숨을 쉴 때마다 목구멍에 뜨거운 모래바람이 들어와 침마저 나오지 않는 지경이 되고 말았다. 결국 나는, 가이드의 말을 따라 착실하게 물을 두 통 받아온 한국 친구에게 한 통의 절반을 옮겨 받았다. 그러고도 우리는 한 시간을 더 걸었다. 보이는 것이라고는 오직 검은 산의 형상과 검은 구름이 자욱하게 낀 하늘, 그리고 중천을 향해 하늘을 긋고 있는 달 뿐이었다. 경사가 급하다거나 어려운 트레킹은 아니었지만 무척이나 피곤했다. 이따금 다리에 힘이 빠지면서 작은 돌덩이를 밟고 발목이 꺾여 넘어질뻔하기도 했고 갑작스러운 모래의 등장에 발이 푹 빠져 휘청거리기도 했다. 그만큼 우리는 지쳐있었다. 우리는 30분 걷고 한 번 쉬고, 30분 걷고 한 번 쉬고를 반복하여, 밤 11시 즈음이 되고서야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오르자 역시 작은 마을이 있었다. 우리는 이곳에서 용암을 구경하고 난 후 하루 자고 다음 날이 밝으면 내려가는 것이었다. 용암을 보러 가기 전 우리는 다시금 대열을 정비했다. 출발할 때와 같은 대열을 맞추고 나서 가이드를 따라 마을의 뒤편으로 넘어갔다. 지푸라기로 허름하게 지어진 집을 지나 어둠 속으로 들어서자, 검은 대지 넘어 커다란 구덩이로부터 빨간빛을 머금은 연기가 무성하게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모든 것을 검게 물들여버릴 것만 같은 어둠 사이에서 선명한 붉은빛이 사납게 피어오르는 것을 보자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구덩이로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어느샌가 땅은 용암이 응고된 검은 암석 무덤으로 바뀌어있었다. 암석은 새까맣다 못해 반짝반짝 빛나기까지 했으며, 장미에 돋친 가시처럼 매우 날카롭게 날을 세우고 있었다. 조심스레 암석을 밟고 지나가면 사그락사그락 거리는 속이 텅 빈듯한 가벼운 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이윽고 연기가 마구 뿜어져 나오는 구덩이의 입구에 가까이 다다랐다. 나는 염탐하듯 매우 조심스레 구덩이 곁으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저만치 다리를 뒤로 빼어놓고 자라처럼 고개를 쭉- 내빼어 지옥의 구덩이 안에 무엇이 있나 하고 들여다보았다. 자신의 품에 들어오는 것은 모조리 녹여먹을 것처럼 사납게 출렁이는 용암의 모습을 보고 싶었다. 그리고 그때, 구덩이 안에 자욱하게 숨어있던 연기가 순간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에 의해 하늘로 높이 솟아오르더니 순식간에 나를, 우리 전체를 덮쳐버렸다. 폭삭 썩어버린 계란 냄새가 콧구멍을 파고들어와 숨을 쉴 수 없었고, 모래가 눈에 퍼부어진 듯하여 눈을 뜰 수가 없었다. 나는 폐에 숨을 모아놓은 채 참고 있었는데 이윽고 기침이 터져 나와, 공기를 모조리 바깥으로 빼내어버렸다. 순간 나는 극심한 공포에 휩싸였다. 어렸을 적 눈을 감고 머리를 감으면 마치 누군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에 샴푸가 눈에 들어와도 기어코 눈을 뜨려고 악을 쓰곤 했었다. 그런 비슷한 공포가 나를 휘감았다. 구덩이에서, 연기 사이에서 괴물이 튀어나와 나를 잡아갈 것만 같았다. 내가 중심을 잃고 넘어지면 괴물이 나를 끌고 구덩이 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떻게든 눈을 뜨려고 요란하게 깜빡이며 뒤로 돌아 기어 나왔다. 그리고는 연기가 다가올 수 없는 곳까지 기어 나와 맑은 공기를 한 번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뒤를 돌아 다시 구덩이 입구에서 출렁이는 붉은 연기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다시 한번 크게 한숨을 쉬었다.
가이드는 오늘은 용암을 볼 수 없을 것 같으니 자고 일어나서 내일 새벽에 다시 와보자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시간은 어느덧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으며 다들 피곤에, 모래바람에 절어있었다. 우리는 철수하고 잘 곳으로 돌아왔다. 말 그대로 잘 곳이었다. 울퉁불퉁하게 돌이 올라온 바닥에 얇은 매트리스를 네 개씩 나란히 깔아 놓은 것이 전부였다. 가이드는 사람들을 네 명씩 배정하여 매트리스로 보냈다. 나는, 미사키와 일본 친구 그리고 동네 주민인 한국 친구와 함께 넷이 자게 되었다. 그러나 사실 30여 명이 다 같이 자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히 이런 곳에 씻을 채비는 되어있지 않았다. 우리는 한국 친구에게 물티슈를 빌려 세수를 하고 발을 닦았다. 어두웠지만 물티슈가 황갈색으로 변해 십 년은 쓴 걸레처럼 너덜거리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자는 곳에서 스무 걸음쯤 떨어진 곳에서는 낙타 여섯 마리가 앉아있었다. 이따금 낙타가 위(Stomach)에 넣어둔 음식을 꺼내는 듯한 괴상한 소리를 내며 울어대곤 했는데, 우리는 전부 웃음을 참지 못하고 터트렸다. 낙타 옆에서 잘 줄이야, 도대체 이곳은 어디인가, 어느 행성이란 말인가, 하고 생각했다. 마침내 나는 침낭을 덮고 얇게 깔린 매트리스 위에 몸을 뉘었다. 공중에 남아있던 태양의 잔향은 어느덧 사라졌고, 시원하고 건조한 달의 향기가 기분 좋게 불어와 얼굴을 타고 흘러갔다. 눈을 뜨자 밤하늘이 보였다. 거뭇한 밤하늘엔 여전히 구름이 듬성듬성 떠다니고 있었으며 달은 이제야 제 은빛 모습을 밝게 드러내었다. 그렇게 우리는, 에티오피아 에트라 에일 활화산의 대지와 하늘을 느끼며, 달콤한 잠에 취했다.
새벽 4시 30분, 박수소리에 눈이 떠졌다. 주변을 흘겨보니 가이드들이 박수를 치며 모두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있었다. 침낭에 들어가 잤음에도 건조한 바람이 밤새 휘몰아쳐 일어났을 때는 체온이 꽤나 떨어져 있었다. 나는 오른손바닥으로 차가워진 왼 팔뚝을 감싸 비비며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밤새 비가 오지 않은 것은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했다. 잠시 동안 잠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앉아 멍- 하니 있었다. 어렸을 적 이럴 때면 엄마가 “앉아서 기도하니! 얼른 일어나서 준비해!”라고 소리치던 것이 문득 생각나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나는 엄마의 호통에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 펼쳐진 침낭을 개었다. 너무도 피곤했다. 따끔거려 눈 뜨기가 힘겨웠으며 밤새 스며든 서늘한 기운이 여전히 몸에 남아있어 마치 몸살 기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밤새 불어댄 모래바람이 얼굴 위로 한 겹 쌓여있었으며 머리카락에는 모래와 머릿기름이 한데 뒤섞여 뻑뻑했다. 우리는 차를 탔던 번호대로 다시 대열을 맞추고 구덩이 가까이로 들어갔다.
까맣고 날카로우며 반짝이는 검은 암석을 밟고 지나갔다. 달빛이 더욱 밝게 무르익어 길을 환히 비쳐주어 휴대용 랜턴은 들고 가지 않아도 됐다. 여전히 자욱하게 붉은빛을 머금은 연기가 바람에 몸을 맡겨 회오리를 만들기도 했다가 우리를 덮치기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마치 물속으로 잠수를 하듯, 숨을 깊게 들이쉬고 눈과 코를 꽉 틀어막았다. 조심스레 구덩이 가까이로 다가가 안을 들여다보았지만 여전히 안개만 자욱할 뿐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이 지나 은빛으로 찬란하게 빛나던 달이 힘을 잃어갈 즈음이었다. 누군가 “보인다!”라고 소리쳤고 사람들은 그곳으로 몰려갔다. 나도 사람들을 뒤따라 갔다. 사람들은 마치 개울가에 몰려든 자라 떼처럼 다리와 엉덩이는 뒤로 빼둔 채 고개를 쭉 빼내어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나도 곧 한 마리의 자라가 되어 구덩이 안을 들여다보았다. 태양의 무거운 기운에 어느덧 연기가 많이 가라앉아있었고, 흐릿하게 금빛의 바다가 일렁이는 것이 보였다. 어디선가 천둥소리, 아니면 맹수가 포효하는 우렁찬 소리가 세찬 바람을 통해 들려왔다. 마치 용암이 제 모습을 들켜버린 것이 참을 수 없이 비통하다는 듯했다. 곧이어 연기는 더욱 가라앉아 용암의 모습을 더욱 선명하게 볼 수 있었다. 구덩이 안 깊은 곳에서 금빛 용암이 파도를 일으키고 벽에 부딪쳐 마구 터지고 있었다. 한 번 철썩 터질 때마다 용암 잔해들이 사방으로 퍼져 별처럼 빛났다. 굉장했다. 두 눈으로 보면서도, 실제로 용암을 보고 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나, 미사키, 한국 친구, 일본 친구들 그리고 세계 각지에서 온 친구들과 호주에서 온 87살의 할아버지, 모두가 함께 같은 마음이 되어 철썩이는 금빛 용암을 바라보았다. 지옥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천국이 정말 존재한다면, 이런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두렵기도 했으며 황홀하기도 했다.
용암을 보고 우리는 다시 내려갈 채비를 했다. 지독한 스케줄이었다. 고작 네 시간 남짓 자고 일어나 다시 세 시간을 내려가야 했다. 천근만근 몸이 무거웠고 너무도 피곤해 눈이 제대로 뜨이지 않았다. 내려가는 길에는 크고 작은 돌덩이가 널려있어 이따금 정신을 놓으면 발이 걸려 휘청이며 체력이 순식간에 깎여나갔다. 나는 아무 생각 없이 걷고 싶었다. 시간을 빨리 보내고 싶었다. 나는 한국 주민 친구와 이런저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며 걸었다. 점차 달의 모습이 희미해져 하늘과 거의 구분할 수 없을 때가 되자 다시 바람이 뜨거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물을 벌컥벌컥 마셨고 몹시도 배가 고팠다. 씻지도 못해 바닥에 앉아 쉴라치면 거지가 따로 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내 모습이 좋았다. 세상 깊숙한 곳에서 동물과, 자연과, 세상과 비슷한 모습이 되어가는 것이 좋았다. 이것이 진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의 모습이리라, 내가 살고 있는 문명의 땅은 지구의 이방인일 것이라, 생각했다.
차 9대가 모여 다시 대열을 정비하고 출발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그토록 흔들리는 차 안에서 나는 이리저리 머리를 박아가며 깨지도 않고 잤다. 한 번은 오른쪽 머리를 너무도 세게 박아 일어나서 피가 나는지 확인해보고 다시 잠들었다. 그렇게 한참을 가다가 시끄러운 소리에 잠에서 깨었다. 옆에 앉아있던 미사키가 흥미롭다는 듯 몸을 앞으로 기울여 무언가를 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일어난 나를 보고 말했다. “우리 차가 꿈쩍도 안 해요, 그래서 다른 차들이 도와주고 있어요” 나는 문을 열고 나가보았다. 타 들어 갈듯이 뜨거웠다. 에어컨 환풍기에 얼굴을 대고 있는 느낌이랄까, 뜨겁다 못해 따가운 사막바람이 모래돌풍을 일으키며 온 몸을 덮쳤다. 황량한 사막 땅엔 휘몰아치는 모래바람 말고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이런 곳에 생명이 존재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무안하게, 어디선가 아이들이 몰려와 어김없이 펜을 달라며 우리를 감쌌다. 나는 바퀴를 보았다. 차바퀴가 모래에 깊숙이 박혀 아무리 가속기를 세게 밟아도 덜컹거릴 뿐 꿈쩍도 하지 않았다. 마치 늪지대처럼 차가 움직이려 발버둥 칠수록 바퀴는 더욱 모래 깊숙이 빠져들 뿐이었다. 이윽고 차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움직일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고, 계속해서 시동이 꺼져버렸다. 결국 다른 차에 끈을 연결하여 도움을 받고 나서야 모래늪을 벗어나 다시 출발할 수 있었다.
줄곧 달리던 차는 커다란 호수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우리는 모두 수영복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이곳은 소금호수로, 염도가 굉장히 높아 중동의 ‘사해’와 같은 곳이었다. 그동안 몸에 물 한번 묻히지 못한 우리는 신이 나서 호수로 뛰어들어갔다. 나는 호수에 들어가서 그대로 몸을 눕혀보았는데, 신기하게도 정말 몸이 둥실둥실 떴다. 몸에 힘이 들어가 어정쩡한 자세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라앉지 않았다.
소금호수에서 수영을 마치고, 소금호수와 연결되어 있는 온천에 들어갔다. 분명히 소금호수와 온천이 붙어있었는데 전혀 짜지 않았으며 마치 다른 공간 같았다. 물을 뜨거웠으며 맑았다. 우리는 몸에 묻은 염분을 온천으로 들어가 모조리 씻어내었다. 온천물은 정강이까지만 적실 정도로 얕았으나 나는 드러누워 머리까지 담갔다. 그리고 나왔을 때는 완전히 상쾌한 상태, 그야말로 기분 최고였다.
줄곧 태양에 익어버린 뜨거운 물만 마시다가 오랜만에 냉장고에서 갓 꺼낸 시원한 콜라를 마셨더니 오장육부가 환호를 지르는 듯했다. 냉장고 없는 세상은 분명 끔찍할 것이다. 나는 문명 없이는 도무지 살 수가 없는 나약하고 처절한 인간이다. 우리는 식사를 하고도 밤이 깊도록 이동하여 숙소에 이르렀다. 숙소라고는 방 몇 개에 매트리스가 대여섯 개씩 깔려있는 것이 전부였지만 나는 그래도 건물 안에서 잘 수 있는 것이 어디인가, 하고 생각했다. 게다가 오랜만에 시원한 맥주까지 먹을 수 있었으니 이곳은 내게 파라다이스나 다름없었다.
새벽 4시 30분, 가이드들이 방문을 열고 박수를 쳤다. “다들 일어나세요!” 우리는 일어나자마자 짐을 챙겨 바로 차에 올라탔다. 씻을 시간은 없었으나, 있었다고 해도 씻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나와 미사키는 차에 올라타자마자 바로 잠에 취해버렸다. 하루에 네다섯 시간씩 자며 이동하는 타이트한 스케줄에 뼛속까지 피곤했기 때문이다. 잠에 취해 얼마나 온지도 몰랐다. 우리는 어느 곳에 도착하여 비몽사몽 아침식사를 하고 몇 시간을 더 달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롤(Dallol) 화산이었다. 이곳은 마치, 하늘에 진하게 떠 있던 무지개가 녹아내려 대지를 물들인 것 같았다. 노랗고 빨간색이 한데 어우러져 대지를 눈부시게 칠했으며, 에메랄드 빛의 분화구에서는 압력밥솥에서 김이 빠지듯 물이 펄펄 끓으며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정녕 이곳이 지구가 맞는 것인가, 어제는 금빛 용암을, 오늘은 말도 안 되게 다채로운 대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그리고도 우리는 소금으로 이루어진 산, 유황온천, 소금호수를 보았다. 어느 순간 나는, 아프리카를 그저 하나의 대륙으로 일컫기에는 무언가 부족한 감이 있다고 느꼈다. 나는 고작 아프리카의 두 나라만을 보고 느꼈을 뿐이다. 그러나 지구라는 별이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땅이 이토록 신비롭고 두려운 곳인가, 하고 새삼 느꼈다. 아프리카는 하나의 행성 같은 대륙이다. 이 지독한 행성에서는 말도 안 되는 풍경이 눈 앞에 실제로 펼쳐지며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난다. 무슨 풍경이 펼쳐질지, 무슨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가 없다. 그날의 기분에 따라 아프리카라는 대륙은, 장엄한 대지는 우리에게 다른 모습으로 나타났다.
3일간의 빠듯한 투어를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몇 일간의 투어를 마치고 나면 항상 홀가분한 마음과 공허한 마음이 동시에 느껴진다. “드디어 투어가 끝났구나!”라고 생각이 들다가도 어딘가 허전하고 아쉬운 감정이 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나는 혼자 남겨지지 않았다. 혼자 남겨져 숙소에 멍-하니 있었다면 정말 외로웠을 테지, 하지만 나는 미사키와 함께 같은 숙소에서 머물기로 했다. 모두와 인사를 나누었다.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안전한 여행이 되기를 서로에게 빌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