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히 유한한

by 임형규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너무 자주 잊고 살아.


아니, 어쩌면 필사적으로 잊고 싶은 걸지도 몰라.

영원할 것 같던 순간의 기억도 서서히 색이 바래지고는 결국 저편으로 가라앉아 버리니까.


살다보면 문득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이 있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의 얼굴, 우리가 나누었던 대화의 세세한 결, 그리고 그 순간 느꼈던 공기의 밀도까지도 언젠가는 내 머릿속에서 희미해질 거라는 예감 때문이야.


잊고 싶지 않아서, 이 순간들을 박제해두고 싶어서 사진을 찍고 일기도 써보지만 기록은 기록일 뿐이야.

그날의 떨림까지 보존해주지는 못하거든.


잊혀지지 않으려고 애쓰는 건 마치 손바닥에 고인 모래를 필사적으로 움켜쥐는 것과 닮았어.

손에 힘을 줄수록 모래알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발등 위로 흩어져 버려.


"내가 이렇게 노력한다고 해서 정말 남을 수 있을까?", "결국 지나면 잊혀질 텐데, 내 발버둥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은 그림자처럼 따라붙어 우리를 괴롭혀.


닿을 수 없는 곳을 향해 손을 뻗는 듯한 막막함, 그리고 언젠가 나조차도 이 모든 걸 기억하지 못하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은 우리를 무력하게 만들어.


슬프게도 많은 것들이 우리의 걱정과 의심대로 잊혀져 가.


정성을 다해 가꾼 기억도 풍파 앞에서는 모래성처럼 허물어지곤 해.


노력했지만 닿지 못했고, 걱정했지만 막지 못했어.


그렇게 하나둘씩 사라져가는 조각들을 바라보는 일은 깊은 상실감을 남겨.


역설적이게도, 진짜 의미는 '영원함'이 아니라 '유한함' 속에 있을지도 몰라.


언젠가 잊혀질 걸 알면서도 오늘 최선을 다해 기억하려 애쓰는 마음,

닿지 않을 것 같은 불안 속에서도 한 걸음을 더 내딛는 그 마음 자체가 이미 숭고한 것이라 생각해.


비록 끝나버리고 잊혀질 운명이었다고 해도, 우리가 그걸 붙잡으려 노력했던 그 간절했던 시간이 우리의 영혼 어딘가에 무늬처럼 남을 거야.


잊혀지는 건 슬픈 일이지만 잊혀질까 봐 사랑하지 않는 건 더 슬픈 일이잖아.


지금 이 순간에, 네가 잊고 싶지 않아 붙잡고 있는 게 있다면 결과에 상관없이 마음껏 애틋해 했으면 좋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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