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에게 피해자의 고통을 최대한 직면할 수 있도록 안내해야
“피해자는 누구나 될 수 있다. 그 당연한 사실을 아무도 모르더라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소년심판에서 심은석 판사(김혜수 분)가 성폭행 피해 청소년 앞에서 읊조리며 한 말이다. 심 판사 자신도 소년범의 피해자다. 그녀는 소년범을 혐오하고 있다.
청소년 범죄를 줄이기 위해서 촉법소년을 없애고 처벌을 강화한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 하지만 내 가족 또는 내가 사랑하는 그 어떤 이가 피해를 봤을 때도 이렇게 이야기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온 마을이 무심하면 한 아이를 망칠 수 있다”
심 판사의 이야기에 공감이 크다. 피해자인 아이들에게 어쩌면 우리가 모두 가해자일 수 있다. 온 마을이 아이를 키운다는 이 말 함부로 쓸 일이 아니다.
촉법소년 없애고 법을 강화하거나 반대로 시스템을 보완하고 지원을 높여 범죄 청소년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어도 좋다. 나는 뭐든 좋다고 여긴다. 단, 전제가 있다. 그 결과로서 가해자가 만들어 낸 상처와 아픔을 가해 청소년 자신이 깨닫게 되어야 한다. 폭행 당사자와 성폭행을 당한 친구의 아픔, 왕따를 시켜 자살할 정도의 상처를 준 피해 아이의 아픔, 차 사고를 내서 사람이 죽고 그 가정이 파탄 난 아픔 등 피해자와 그의 가족에게 준 엄청난 고통을 가해자가 알고 깨닫게 해 준다면 뭐든지 좋다. 그 순간이 그들이 이야기하는 교화이고 갱생이며 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소년심판이 뜨자 아니나 다를까 촉법소년 폐지 관련 기사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언제나 그랬지만 그들은 사건에 따른 분노와 혐오감정을 두둔하고 클릭 수 높이는 데 혈안이 된다. 대중의 분노와 혐오에 충실할 때 돈이 되는 것을 아는 이들이 많다.
소년심판에 나오는 범죄는 대부분 실제를 모티브로 했다. 첫 회에 나온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은 2017년 3월, 인천 동춘동 초등학생 유괴 살인사건으로 당시 16세였던 김모 양이 초등학교 2학년 여자 어린이를 유괴해서 토막살인한 잔인한 사건이다. 18세였던 방조범 박 양이 수면 위로 나왔고 그녀의 집안 재력에 대단했다는 기사.
14세 이상 범죄소년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나이지만 19세 미만으로 소년법 특례를 받아서 최장 20년 이상을 구형할 수 없다. 박양이 최종 20년 구형을 받았었다.
범법소년은 크게 3가지로 구분된다. 만14세 이상~만19세 미만인 범죄소년, 만 10세~만 14세 미만인 촉법소년, 만10세 미만인 범법소년으로 구분한다. 10세 미만 어린이는 죄를 지어도 처벌을 할 수 없다. 촉법소년은 형사처벌은 못하고 소년원이나 보호관찰 등 보호처분을 받는다. 범죄소년은 보호처분과 형사처분을 모두 받지만, 특례를 받아 강력범죄를 지어도 최장 20년 이상 구형을 못 한다.
촉법소년을 폐지하자는 여론이 지배적인데 만14세 미만도 죄를 지으면 형사처벌을 하자는 의견이다. 매번 두 가지 의견이 팽팽하게 나뉜다. 정치인들도 대다수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거나 폐지하는 쪽으로 주장 하고 있다. 여론 추이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다. 반대로 관련 전문가들과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는 촉법소년을 폐지하거나 나이를 낮춘다고 해서 범죄율을 줄어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청소년 범죄의 해묵은 논쟁이다. 법이 바뀌거나 어떠한 정책적인 대안이 만들어졌다는 소식보다는 매번 청소년 범죄가 쟁점이 되면 논쟁만 하다가 끝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이 논쟁 가운데 무언가 변화할 때가 되어도 한 참 지났다. 이슈와 논쟁만 있을 뿐 그 이상의 진전이 없는 법안과 정책을 대할 때면 답답함을 넘어 화가 날 때가 많다.
우리나라 촉법소년 나이는 1953년 도입되었다. 거의 70년이 지난 법인데 지금까지 손을 대지 않고 있다. 이번 대선에서 정의당을 제외한 민주당, 국민의힘, 국민의당에서는 촉법소년 나이를 낮추겠다고 했다.
촉법소년을 폐지하거나 나이를 낮추면 범죄율이 줄어들까?
우리나라 소년법의 목적은 “반사회성(反社會性)이 있는 소년의 환경 조정과 품행 교정(矯正)을 위한 보호처분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형사처분에 관한 특별조치를 함으로써 소년이 건전하게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다.
교정과 건전한 성장에 맞추어져 있다. 전 세계가 비슷하다. 청소년기라고 일컫는 10대의 때에 성인범죄와 다르게 교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은 이미 검증된 내용이다. 범죄 저지른 후 죗값을 받도록 성인들과 똑같이 죄를 물었을 때 이후 범죄율이 줄어들기보다는 더욱 증가한다는 것. 선진국이라고 하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10대에게 죄를 물으면서도 교정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을 체계적으로 하는 이유다.
소년법은 교정과 성장에 방점이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청소년 범죄의 원인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일차적으로 가장 주요한 요인은 가정이다. 부모라는 말이다. 내가 만난 현장에서도 비슷했다. 소년심판에서 보이는 청소년 범죄를 일으키는 부모의 모습들 또한 한결같이 몸 쓸 놈들이었다. 대형로펌 변호사를 고용할 정도의 부와 권력이 있지만, 딸이 법정에 섰는데도 나와 보지 않고 자기 일에 바쁜 부모, 자신을 버린 엄마가 아픈 것 같아서 찾아갔지만 다른 남자와 살고 있으면서 자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이, 야구 방망이로 딸을 폭행하면서 돈을 갈취하는 아버지, 자녀를 입시 기계로 치부하면서 오로지 성적만 오르면 된다는 생각으로 키우는 부모들이다.
이들이 드라마에서만 나오는 부모일까? 청소년 현장에서 20년 넘게 살면서 여러 부모를 보아 왔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부모들 의외로 많다. 부모 자신만 깨닫지 못할 뿐이다.
사회적 문제는 무엇일까?
부처 가운데 가장 힘이 있다고 여기는 법무부, 이곳 산하의 청소년기관의 열악한 현실을 보면 기가 막혀 말이 안 나올 정도다. 드라마에서 나오는 회복센터에서 450만 원 병원비를 몰래 만들기 위해서 체험활동비 등을 유용해야 한다. 다른 기관들 수십억씩 쓰는 것도 자유로운데 유독 청소년기관의 지원은 열악하기 그지없다.
특히나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과 사각지대 청소년의 지원은 왜 이렇게 야박한지 알 수가 없다. 경제적인 논리로도 이들이 변화되어 성인으로 잘 자라서 사회에 이바지하는 것과 범죄자로 살아가는 것은 엄청난 이득 또는 손실로 이어질 텐데 그들에 대한 지원은 왜 이리 열악한지 오히려 나라에 반문하고 싶다. 보호관찰 담당자들도 너무 많은 이들을 관리하고 있다. 드라마에서도 ‘회복센터’에서 나타나듯이 열악한 상황에서 그 누군가의 헌신으로만 그들을 보호하며 개도하도록 만들어 놓은 법과 정책을 바꾸려는 노력은 게을리한다.
청소년 분야에 대한 전문성 지원과 공적 영역의 위치도 문제다. 판사들도 가장 일하기를 꺼리는 곳이 소년 분야라고 했다. 지자체에 청소년 관련 부서 또한 가장 한직이면서 가기를 꺼리는 곳이다. 청소년 정책의 담당 부처가 어디인지 아나? 여성가족부라는 것을 아는 이들조차 적을 정도다. 여가부의 청소년 정책은 청소년 관련 기관단체들이 모여 대선 후보에게 정책 제안을 하면서 여가부에서 나와서 청소년 정책은 독립적인 부처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다.
상처가 있는 청소년이나 소외되고 가난에 찌들어 있는 청소년의 사회적인 지원체계 또한 약하고 허술하기 짝이 없는 사회다. 청소년과 관련된 곳에서 일하는 전문직들의 처우를 찾아보기 바란다. 특히 가출청소년, 가출팸, 그룹홈, 학교폭력 등 사각지대 청소년을 지원하는 관계자들의 처우가 어떤지?
청소년을 대하는 사회의 이중적인 태도가 그들을 더욱 힘들게 한다.
청소년은 미성숙하고 보호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긴다. 입시생 이외는 그 어떤 위치도 용납하지 않고 존중하지 않는 비정상적인 사회적 관점이 지배하고 있다. 항상 청소년은 어리고 보호받아야 할 존재이니 선거권도 줄 수 없고 정치사회 참여는 어른들이나 하는 것이니 안된다고 주장하면서 언제나 미성숙 담론에 가두고 관리 통제하면서 권리는 모두 빼앗은 상태다.
그 안에서 송곳처럼 튀어나오는 극소수 악랄한 청소년 범죄만을 부각하며 가해자의 행동에만 집중하고 분노하면서 죄를 지었으면 똑같이 어른과 같이 죗값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의 본질에 벗어나도 한참 벗어났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처벌 강화인가?, 기회를 더 줄 것인가?” 이 해묵은 논쟁에서 처벌 강화를 위해 무조건 나이를 낮추면 된다는 의견을 보면 자괴감이 들 정도다.
죄지은 자 죗값을 받는 게 맞다. 학교 폭력은 학교 자를 빼면 폭력이다. 형사법으로 넘어가면 처벌받아야 맞다. 문제는 벌을 주는 근본적인 목적이다. 청소년이 범죄의 사각지대에서 나락으로 빠져 버리는 상황은 간과한 채 무조건 처벌에만 집중할 때 우리 사회는 더욱 힘겨운 상황이 되고 말 것이다.
10대 청소년이 범죄자 낙인찍힌 이후 더 큰 문제를 일으킨다. 특히 대부분의 청소년 강력범죄에서 촉법소년의 교정 없이 사회와 격리해 교도소에서 범죄를 학습하는 기회만 만들어 줄 수 있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을까?
청소년 범죄의 근본 원인은 그들 환경의 문제다. 가족 안에서의 폭력과 방임 등을 해결하려는 노력이 우선시되어야 한다. 그리고 청소년 관련 전문직종의 안정성에 기반을 두어 고도화된 전문가들이 더 많이 참여하여 현장의 최전선에서 청소년과 직접적인 관계 안에서 문제 해결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는 게 우선시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입시 문제로 인한 경쟁문제, 억압적 교육 환경을 타파할 수 있도록 최소한 청소년을 입시 기계가 아닌 사람으로 시민으로 존중해 줄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다. 교육정책은 입시정책이 아님을 알게 해 주어야 한다.
이러한 사회적 환경을 개선하려는 노력이 없을 때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욱더 큰 문제를 양산할 것이다.
몇 개국이 시행하는 것처럼 극소수가 벌이고 있는 살인이나 성범죄 등 중대범죄를 의도적으로 하는 극악한 범죄는 촉법소년 관계없이 처벌할 수 있어야 한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 외의 청소년들은 소년원이나 교도소보다는 또 다른 청소년 관련 기관단체의 전문성 있는 곳에서 교정할 수 있는 시스템을 먼저 형성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분풀이식 처벌은 오히려 더 큰 위험을 만들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청소년 범죄에 책임이 있다.
우리 삶에 어떤 일이든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고 일을 해야 한다. 사람을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고 그저 일의 수단으로 대할 때 청소년은 그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범죄를 저지른 청소년이 만나게 되는 교사, 경찰, 변호사와 판사, 보호관찰 등 우리 모두를 만나면서 청소년을 자신의 자녀까지는 아니어도 그저 일로서 지나가는 어떤 물건과 같은 대상이 아닌 사람으로 존중하는 이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학교 교육도, 청소년 활동 현장도, 상담도, 복지의 현장에 단순히 업무로서 단순히 월급 받는 일로서 치부해 버릴 때 드라마상에 아프고 상처 입은 아이들은 더욱더 증가할 것이다. 우리가 청소년을 위해 해야 할 일은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는 일이다.
죄를 지었을 때 그 죄로 인해서 얼마나 많은 이들이 극심한 고통을 느끼는지 가해자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는 것. 그 방법이 촉법소년을 폐지하는 수준이 아닌 그 이상의 논의가 시작되어 70여 년 가까운 소년법의 주요한 부분을 바꾸고 정책을 보강하고 예산을 전폭적으로 높여야 하며, 사회적 인식을 바꾸어 내려는 노력은 국가와 함께 우리 모두가 삶을 살아 내고 있는 가정과 지역 현장 그 바닥부터 있어야 한다.
소년범죄는 소년범 당사자들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는 것. 이것만큼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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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수정보완해서 오마이뉴스에 기고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