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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봄 Feb 03. 2024

하찮은 상담심리사의 사적인 일기 _ 여섯 번째 기록

이별의 두려움

난 틈틈이 연애를 했다.

틈틈이라는 표현을 쓴 것은 짧은 연애를 자주 했다는 뜻이다.


그렇다.

난 연애를 오래 하지 못했다.

모든 연애를 100일을 겨우 넘겼다.


내가 연애를 오래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친한 미술치료사

선생님께선 '뭐가 그렇게 두려워서'라고 하셨다.

나의 첫 직장에서 만난 그분은 나의 모든 만남과 헤어짐을 다 지켜본 분이셨고 그때마다 많은 대화를 나눴었다.

정곡을 찔린 느낌이었다.

난 연애를 할 때에 주변에 알리거나 티를 잘 내지 않는 성향이었다. 주변에서 알고 있는 몇 안 되는 연애는 그만큼 진지한 연애였다는 것. 하지만 그런 마음으로 시작해도 6개월이 되지 않아 끝나버렸다. 

모두 내가 끝내버린 인연이었고 이유는 가지가지였다. 이래서 안 돼 저래서 별로...


알고 있었다.

나는 헤어짐을, 이별을 이겨낼 힘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것을. 누군가 날 좋아해 주면 사귀었고 사귀다 정이 들어 마음이 커지면 이별을 통보했다.

나의 20대의 모든 연애는 그러했다.


상실감은 누구나 경험한다.

누군가에게는 그 경험이 가슴 한 편에 유리파편처럼 박힌 채

건드려질 때마다 가슴이 찌릿찌릿 저려오곤 한다.

나에겐 아빠와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이 그 유리파편이었다.

그래서 소중한 사람을 만들지 않았다.

소중한 인연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웠던 것이다.


그러다 보니 연애가 가벼워졌고 가벼운 연애의 반복은 더 이상 재미가 없었다. 난 일이 즐거웠고 일에, 공부에 몰두해 있는 시간이 더 좋았다.


하지만 어쨌거나 난 지금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제대로 된 연애를 하지 못했던 내가 결혼까지 하게 된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이야기를 해야 할 듯하다.


그렇다면 내가 그 문제를 극복했느냐고 묻는다면 역시 아니다.

의미 있는 관계를 맺고 가족을 이룬 지금...

나는 또 다시 가족을 잃는 고통을 겪을까 봐 두려워하고 있다.

남편과 아이가 아플 때마다 가슴에 박힌 유리파편은 나에게 위험신호를 보낸다.


죽음.

위험해.


남편이 코로나에 걸렸을 때도

단순 감기에 걸렸을 때도

심지어 '요즘 무릎이 왜 이렇게 아프지' 라며 지나가듯 말해도 무릎에 크게 문제가 생겨 죽으면 어떡하지?

아이가 열이 나서 죽으면 어떡하지?

와 연관 지어진다.


파국적 사고

부정적인 사고를 지나치게 과장하고 최악의 상황을 생각하는 것.

이를 파국적 사고라 한다.

나의 이런 생각이 비합리적인 사고방식이라는 것을 알지만  사고의 흐름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흐르게 된다.

그래서 어쩌다 가족 중에 누군가 아프기라도 하면

난 불안이 크게 증폭되는 편이다.


하지만 불안하다고 해서 특정 행동을 한다거나

일상의 지장이 있는 정도가 아니므로

내 불안을 스스로 다스려가고 있다.


일단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확률과 그렇지 않은 확률에 대해 계속 상기시키고, 최악의 상황이 일어났을 때 어떻게 대처할지를 생각한다.

실제 우울장애 내담자를 상담할 때에도 파이기법을 통해 최악의 상황이 일어날 확률과 그렇지 않은 확률에 대해

직접 그림을 그려보기도 한다.


그냥...


그저 난 나에게 박혀있는 유리파편을 이렇게 다루어 가는 중이다.

아무에게도 이야기하지 않은 나의 유리파편.

아마 크기는 줄어들지언정 평생 나와 함께 살아갈 듯하다.


당신에게는 어떤 유리파편이 박혀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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