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j 결혼생활
사람들마다 결혼하기로 마음먹은 각자의 사유가 다들 있을 것이다. 나도 그런 질문을 종종 받는데, 나의 경우 가장 결정적 사유는 남편의 '위기 대처 능력'이었다.
내가 남편의 위기 대처 능력을 높이산 이유는, 아주 단순하게도 내가 위기 대처 능력이 전혀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나 자신이 위기를 잘 불러일으키는 사람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를 만난 사람들에게 내 첫인상이 어떤지 물으면 대다수 '스마트한, 지적인, 똑 부러진'이라는 단어로 내 인상에 대해 말씀을 주신다. 참 감사한 일이지만, 실제의 나는 스마트함과 거리가 먼 '허당' 그 자체인데... 친한 친구들과 남편, 그리고 오래도록 같이 일한 사람 외에는 나의 허당끼를 잘 모른다.
난 경주마(앞만 보고 달리는) 스타일이기 때문에 하나에 집중하면 나머지는 신경을 못 쓰는 수준을 넘어 아무것도 안 보이는 수준이랄까?! 그래서 일을 제외한 일상에서는 '허당'인 것 같다.
관련해 여러 가지 일화가 있다.
남편과 사귀기 전에 포천 이동갈비를 먹으러 간 적이 있다. 이동 갈비를 먹고, 차가 엄청 막혀서 한 시간 반 정도 서울로 돌아오는데 서울에 거의 도달한 시점에 내 핸드폰을 이동갈비 집에 두고 왔다는 것을 알게 된 적이 있다. 내가 얼굴이 사색이 되어서 식은땀을 흘리는데, 남편이 걱정 말라며 다시 그 이동갈비 집에 가서 핸드폰을 찾아다 줬다. 그날 남편은 부산을 갔다 온 수준으로 운전을 했다... 띠로리. 모르긴 몰라도 이동갈비 먹는데 집중을 했든, 당시 남편과의 대화에 집중을 했든 그러다가 핸드폰은 까맣게 잃어버린 게 분명하다. 이후에도 뭐, 피자집에 핸드폰 두고 오기, 지갑 잃어버리기 등등 여러 사건들을 많이 일으켰다.
한 번은 이런 적도 있다. 신혼여행 떠나기 전 저녁에 비행기 예약내역을 확인하다가 여권번호 란에 123456789라고 써놓은 것을 발견한 거다. 당시 일이 바쁘다 보니까 여권번호는 추후 입력해야지 하고 아무 번호나 적어놨다가 신혼여행 전날까지 깜박하고 수정을 안 한 거였다ㅡㅜ 이때도 난 신혼여행 못 가는 줄 알고 자괴감에 빠져 우울해있는데, 남편이 주말임에도 불구하고 아는 여행사 직원에 전화를 걸어 여권번호는 당일 수정해도 된다는 걸 알아내 무사히 신혼여행을 갈 수 있었다.
스페인에 여행 갈 땐, 남편 이름 kyung -> kyeong으로 기재해서 또 사색이 되어 식은땀을 한 바가지 흘린 적도 있다. 국내 항공사 직원말로는 한국에서 나가는 것은 문제가 안되는데, 운이 나쁘면 스페인에서 다른 사람으로 오인해 못 돌아올 수 있다고 했다. 스페인은 또 하필 내가 경유 비행기로 끊어서 경유할 때마다, 비행기표 검사를 할 때마다 비행기를 못 타는 것은 아닌지 불안에 떨며 가야 했다. 그때마다 남편이 영어로 잘 설명해서 별다른 일 없이 여행하고 돌아오긴 했지만.. 하필이면 남편 이름 오기재라니.. 휴(남편, 미안!)
암튼, 남편은 나의 이런 허당에 놀라지 않고 늘 침착하게 그리고 완벽하게 케어를 잘한다.
생각해 보면, 핸드폰을 두고 온다든지, 비행기 티켓 잘못 발권하는 등의 일이, 어떤 이에겐 엄청나게 짜증 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도 내 죄를 아니까, 일을 저지르고는 얼음처럼 굳어서 식은땀이 나는지도...
다행히 남편은 나의 이런 허당끼를 즐긴다고 해야 할까.. 본인이 워낙 안정적이고 여유로운(?) 사람이라 나의 이런 실수가 하나의 이벤트처럼 재미를 주는 모양이다. 아직도 스페인 여행 갈 때 항공사 직원분들 눈만 마주쳐도 동공지진 났던 일화를 재밌는 에피소드로, 즐거운 추억으로 얘기하는 걸 보면^^ㅎ
모든 사람은 완벽할 수 없으니까.
내 단점을 알고, 상대가 그 점을 잘 보완해 준다면 최고의 파트너 아닐까!
내가 말하는 위기 대처 능력은 위기를 위기로 여기지 않는 여유로움, 그것이 지금의 남편을 선택한 가장 결정적 이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