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tj 일상생활
나는 매우 바쁘게 삶을 살아왔다.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것을 좋아했고, 새로운 경험을 즐겼던 거 같다.
재즈댄스 : 10개월
영어 마스터 : 캐나다 10개월
일어 마스터 : 일본 8개월
아나운서 스터디 : 3년
테니스 : 3개월
골프 : 6개월
여행 : 고2 때부터 약 20년
미국 (뉴욕/시카고/인디애나/LA/포틀랜드/라스베이거스) 멕시코(칸쿤) 네덜란드 영국 이탈리아(로마/베네치아) 스위스 독일(프랑크프루트/바이마르/뮌헨) 프랑스(파리/니스/아비뇽) 태국(푸껫/방콕/파타야) 홍콩 일본(후쿠오카/오사카/교토/나라/고베/도쿄/기타 등등) 러시아 스페인(마드리드/바르셀로나/세고비아) 체코 슬로베니아 오스트리아(빈/잘츠부르크) 헝가리 캄보디아 캐나다(토론토/런던/휘슬러/밴쿠버/빅토리아) 폴란드 벨기에 모나코 인도네시아(발리) 등등
라틴댄스 : 2개월
요가 : 1년
대학원 : 2년
연구원 : 2년
회사생활 : 10년
아르바이트 : 베니건스 / 통번역 / 영어강사 / 과외 / 일본레스토랑(캐나다에서) / 특 1급 호텔 프런트 등등 각각 1~3개월
미술관 전시회 / 발레 & 뮤지컬 & 오페라 / 클래식 연주회 등등 : 각각 연 2~3회
과거를 정리할 겸 그동안 해왔던 것을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았다. 생각보다 그렇게 많은 경험을 하진 않았구나.
그런데도 불구하고, 최근에 난 왜 하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을까.
처음엔 퇴사한 지 얼마 안돼서 그런가 보다 했고(사람이란 회사에 묶여서 자유가 속박되어야 하고 싶은 게 많아지는 법), 그다음엔 겨울이라서 아직은 하고 싶은 게 안 생기나 보다 했고(겨울엔 움츠려 들기 마련이지), 지금은 봄이 왔으나 딱히 하고 싶은 게 없어서 이유가 뭘지 곰곰이 생각해보고 있는 중이다.
우선, 예전하고 달라진 점은 뭘 먹어도 감흥이 없다. 내가 2,30대부터 뻔질나게 호텔 식당을 드나들고, 1인에 몇 십 만원 하는 오마카세를 자주 먹었던 사람이라면 이해라도 하겠는데, 평소 집밥을 선호하고 가끔 남편과 외식하는 정도로 매우 평범한 식생활을 하는 사람이다. 그래도 한 달에 1~2회 외식을 했다 쳐도 근 10년이 됐으니, 웬만큼 맛있다는 곳은 다 가보긴 했을 거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새롭게 먹고 싶은 게 없어서 외식 생각이 별로 나지 않는다. 남편은 내가 배가 불러서 그렇다고 '백투 더베이식'을 외치며, 과거 7,80년대 먹을 것이 없던 시대 주식이었던 보리밥, 나물들을 먹어보란다. 그러다 보면 요즘 음식들이 얼마나 맛있는지 깨닫게 될 거라며... 실제로 야채를 대량 주문해서 쌈밥을 주로 먹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먹고 싶은 음식이 딱히 생기진 않았다.
둘째로, 주변에서 퇴사했다고 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이 시간이 많으니 남편하고 여행이라도 다니라는 건데, 문제는 여행을 가고 싶은 곳이 없다는 거다. 여행이라 함은 자고로 여행 가기 전에도 설레고, 가서 하고 싶은 것들이 내가 굳이 애쓰지 않아도 줄줄이 생각나고, 먹고 싶은 것들도 많아서 리스트를 작성해야 제맛인데... 지금은 그나마 가고 싶은 곳이 딱 5군데 남은 상태다.
하와이 / 그리스&터키 / 이탈리아 남부 / 크로아티아&두바이 / 호주
위 여행지는 꼭 남편과 돈 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롭게 즐기려고 남겨둔 곳들인데, 남편이 회사에 메여있어 당분간은 갈 수 없는 곳들이다. 남편이 연차를 최대 2일 쓸 수 있기 때문에(회사에서 그러라고 한 것도 아닌데, 다른 동료 배려 때문에 연차를 쓰지를 못한다ㅠ), 갈 수 있는 곳은 일본/괌/동남아/중국 정도인데, 하나같이 당기질 않는다. 막상 가면 좋겠지만, 막 가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 그런 상태다. 배가 불렀을지도...
마지막으로, 이제는 새롭게 배우고 싶은 것도 보고 싶은 것도 없어졌다. 시간적 여유가 많으니 뭔가를 배워봐야겠다 생각은 드는데, 도대체가 배우고 싶은 게 없는 거다. 요리는 매일매일 하는 요리 또 가서 배우기까지 하고 싶진 않고, 꽃꽂이/다도/향수 등등은 예전에 클래스로 배워봤고, 외국어도 그동안 3 개국 어했으면 됐다 싶고, 경매학원도 기웃기웃, 제빵학원도 기웃기웃, 클라이밍도 기웃기웃.. 딱히 꽂히는 데가 나타나진 않았다.
요즘엔 시간이 많아져서 원래 유튜브며 OTT며 아
무것도 안 보는데, 디즈니에 남편이 가입해 줘서 보기 시작했다. 근데 과거부터 영화를 꾸준히 봐왔으니 안 본 영화가 거의 없고, 흥미를 끄는 영화도 거의 없어서 2주 만에 가입취소로 끝.
공연도 예전과 달리 보고 싶은 공연이 없다는 게 슬프다.
그렇다. 난 그 이름도 유명한 '마흔 살 병'에 걸렸다. 공자는 마흔을 세상에 미혹되지 않고 무엇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경지에 이르는 나이, 불혹이라고 했다. 실제 내가 마흔이 되어보니, 더 이상 새로울 것도 없지만, 새롭다고 해도 쉽게 마음이 동하지 않는 그런 나이란 걸 새삼 깨닫는다. 공자는 긍정적인 뉘앙스로 말한 것 같은데, 난 모든 것에 감흥이 없어진다는 것이 꼭 좋지만도 않다.
휴, 이 마흔 살 병을 빨리 고치긴 해야 하는데...
이제는 새로운 것보다는 내게 맞는 나만의 스타일을 찾아야 할 나이인 거 같다.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하기보다는 내게 맞는 운동, 내게 맞는 취미, 내게 맞는 여행. 그걸 발굴하고 거기서 약간의 감흥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할 것 같다.
그리고 아주아주 사소한 것에 감사하는 맘을 가져야지만 이 마흔 살 병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타도! 마흔 살 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