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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여자는 돈 잘 버는 남자를 원하는가에 대한 고찰

Entj 사회생활

by 연우

난 어릴 때부터 유별나게 남녀차별을 싫어했다. 초등학교 땐가 한 선생님이 남자들은 보통 수학을 잘하고 여자들은 국어를 잘한다고 지나가듯이 한 말에 그때부터 국어를 등한시하고 수학문제집만 주야장천 풀었을 정도로.


그래도 다행인 건 남녀차별 없는 시대에 태어났고, 실제로 아무리 곱씹고 생각해 봐도 딱히 차별받았다고 여겨지는 일이 없다는 점이다. 엄마는 딸인데도 대학을 보내줬다는 것에 평생 감사하며 남동생들 뒷바라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내게는 오빠와 똑같은 권리를 누리게 해 주었으나 당연한 권리라는 생각이 드는 걸 보면 엄마 시대와는 확연히 다른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그런지 결혼 조건으로도 남자가 여자보다 돈을 많이 벌어야 된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막연히 배려심 있고 대화가 잘 통하고 나와 가치관(보수적인 성향, 종교, 삶에서 중요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어느 정도 일치하고, 매너와 예의가 있고, 유머러스했으면 좋겠다 정도 만을 생각했고, 남편은 실제로 결혼 전 집안이 파산하고 연봉도 나보다 적었지만 결혼에 큰 걸림돌이 되지도 않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대학교 학사/석사 후 취업함과 동시에 결혼을 해서 사회생활을 본격적으로 할 틈이 없었기에 가능했던 생각이었다.


회사에 들어가니 우선, 모든 팀장님과 임원진, 대표님은 남자였고, 어쩌다가 있는 여자 팀장님은 전부 미혼에 한눈에 보아도 기가 엄청 세고 술을 잘하는 그런 분들이었다.


난 전략기획팀에 입사했었는데,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잘 나가는 상품에 뚜렷한 차이가 있는 것을 발견하여 전략적으로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서를 제출했으나 서울대 나온 팀장님이 바로 스틸하고, 군대를 다녀온 남성들에 비해 사회성이 약간 떨어지는 나를 제외하고 남자들만 그 프로젝트에 참여시키는 것을 보면서, '사회는 정글이구나'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팀 내에서 나 홀로 여자이기도 했고, 여자라서 그런 건지 내가 사회성이 떨어져서 그런 건지 이유는 모르겠다. 다만, 내가 아무리 발버둥 쳐도 나를 이끌어줄 수 있는 동지(멘토)가 없는 느낌,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는 느낌이 나를 처음으로 작아지게 만들었다.


그리고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회사 내에 만연한 여성을 동료가 아닌 성적대상으로 보는 시각이었다. 첫 회식 자리에서 갑자기 대표가 옆자리에 앉더니 왜 이렇게 손이 차갑냐고 손을 잡았던 적도 있다. 나도 모르게 대표 손을 탁 쳤는데, 다른 여직원들이 달려와서 왜 내 손만 잡냐며 자기 손도 잡아달라고 하는 통에 그 사건은 무사히 넘어갔다. 원래는 회사에 들어가자마자 결혼한다는 것을 밝힐 생각이 없었지만, 대표가 첫 회식에 손을 잡아서 어쩔 수 없이 공개하게 되었는데(계속 추근댈까 봐) 다른 직원들로부터는 일할 생각이 없다는 둥, 취집 하는 주제에 잘난척한다는 소리나 들으며 일을 시작했다.

회식하다 어쩌다 노래방을 가면 여직원들에게 노래하나 해보라고 지시하는 남자들 하며... 기가 막힌 것은 여직원들 대부분은 또 섹시한 춤까지 추며 노래를 해낸다는 사실이다(7~8년 전, 내가 다녔던 중소기업 기준으로 일반화오류 금지! 오해 금지!). 난 이런 모든 것을 일종의 사회성으로 치부하면서 술 잘 따르고 말 고분고분하게 잘 듣고 춤, 노래까지 잘하면 사회성이 있는 여자로 치부된다는 것이 어이가 없었다. 사회성 없는 난, 회식에 참석하지 않거나 참석해도 팔짱을 낀 채 나를 털끝하나라도 건드리는 놈은 가만두지 않겠다는 도끼눈을 뜨고 술 한 잔도 신경을 곤두세우고 먹었다.


그렇게 3년을 보내고, 회사에서 베스트 상품을 내놓았을 때조차 팀 내에서 가장 작은 보너스를 받았는데, 다른 팀원들은 외벌이 가장이고 돈이 많이 필요하다는 게 이유였다. 나 역시 남편이 쉬고 있었고, 가장이었지만 사회는 여자를 가장으로 여기지 않았다. 그때 첨으로 울었던 거 같다.


"난 열심히 해서 오빠를 먹여 살리고 싶은데 사회가 허락하질 않아ㅜㅜ"


그때 깨달았다. 아, 회사를 3년만 다니면, 남녀차별이 성벽처럼 단단하게 굳어져있는 사회에서 수없이 좌절을 맛보다 보면, 내가 돈을 버는 것보다 남자가 돈을 버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하게 될 수 있겠다고.


하지만 그게 옳다는 것은 아니다.


남편이 다니는 회사 역시 남녀차별이 심한 곳인데(대표가 여자들을 뽑아놓으면 결혼이나 임신으로 그만두고 남자에 비해 헝그리 정신이 없다고 생각;;), 남편이 남자이기에 얻는 혜택들을 보면 내 남편으로서는 기쁘다가도 여자의 입장에서 보면 회사를 욕하고 싶은 양가적인 감정에 늘 사로잡힌다.


그래도 결론적으론, 아무리 남편이 득을 봐도 이런 회사는 점차 없어져야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모든 여성분들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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