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서...
최대한 짧게 쓰려고 노력하겠지만, 어쩐지 길어질 것 같다.
허지웅 에세이,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오늘 아침 받았다. 받자마자 읽기 시작해서, 오늘 완독을 끝냈다. 단 하루 만에 모두 읽은 책은 너무나 오랜만이다. 실은 그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딱 한 꼭지를 읽자마자 눈물이 쉴 새 없이 밀려들었다. 그리고 읽는 내내 몇 번이고 눈물이 났다.
'허지웅'이라는 사람. 내게는 자신의 의견을 거침없이 피력하는 모습으로만 기억되었던 사람. 그러나 최근 ‘나혼자산다’ 같은 예능에서 보여준 모습은 존경스러웠다. 그는 전작의 제목과 같이 버티었고(항암), 우리들의 곁에 살아있다. 그것만으로도 나는 그가 자랑스럽고 존경스러웠다. 그가 얼마나 힘겹게 고통의 시간을 버텨왔고 이겨냈는지, 우리는 알 재간이 없다. 그러나 이 책 ‘살고 싶다는 농담’을 읽고 나니 아주 조금은 짐작된다.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깔끔한 문장과 담백한 문체 뒤편 어딘가에 그가 숨겨 놓은 고통의 밤과 이불속에 함께 기거했을 상처가 내 공간 곳곳을 뒤덮어버렸다. 슬펐다. 그것도 아주아주 슬펐다. 그래서 단숨에 다 읽게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마녀사냥’이라는 프로그램을 통해서 최초로 그를 인지하게 되었다. 사실 나는 그의 몇몇 발언에 불쾌했던 기억이 있다. 신동엽이라는 천재 개그맨이 애써 띄워놓은 분위기를 망치는 그의 발언은 말 그대로 ‘촌철살인’이라 더욱 피곤하게 다가오기도 했다. ‘뭐가 저렇게 건방진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왜 저리 거만한가.’ 나는 그를 보면서 종종 그런 생각을 했다. 그가 이 책을 통해서 변화한 시각을 고백하듯이 나 또한 고백한다. 그가 달라졌기에 나도 그를 다르게 보기 시작했다고. 아니, 이 책을 읽고 나서는 반성한다. 나의 편협한 시각과 상대를 함부로 평가했던, 도리어 그때의 ‘허지웅’보다 더 거만했던 나를.
그는 이 책에서 혼자 살아남아 버텼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꼈다고 한다. 나도 비슷했다. 엊그제 인생 첫 강의에서 수줍게 말했지만, 나는 ‘나’라는 인간에 대해 강한 연민을 가지면서도 내가 살아온 인생 전반에 대해 강한 자부심이 있는 사람이다. 엄마의 한마디 ‘사립대 등록금은 자신이 없다. 국립대 갔으면 좋겠다. 너는 작가가 될 것이니, 대학이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말에 복수라도 하듯이(복수는 아니었지만, 악착같이 열심히 살았다는 뜻) 대학 4년 등록금과 기숙사비 생활비를 모두 내 손으로 벌어 해결한 것이나... 우연히 입사하게 된 회사에서 그 흔한 자격증이나 토익 성적 하나 없이 오로지 ‘나로서 나를 증명해야 했던’ 시간. 허지웅이 강조하는 버텨내는 삶. 그 과정이 정말 힘들었다. 그래서 여태 버티어 온 것에 대해 자부심이 있었다. 가끔 일기 같은 메모로 타인에 대한 환멸감을 고해할 때가 있다. 부모님 잘 만나 모든 것을 쉽게 이룬 것 같은 사람들이 그 한 가지를 못 가졌다고, 그 하나를 놓쳐 ‘지금 나는 불행하다’고 이야기할 때 겉으론 그 사람을 위로하는 척 착한 가면을 썼지만 속으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 가면의 두께가 쌓일수록 나는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가면을 쓴 것에 대한, 그리고 상대를 속였다는 생각에 기인한 죄책감. 그런데 이 책을 보고나서 그런 죄책감은 던지기로 했다. 그는 이제 ‘날 것 그대로 자신을 드러내는 일(가면을 쓰지 않는 것)은 숭고하고 옳은 일’이라고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본연의 그대로를 강박적으로 드러내서 오해와 구설수를 살 필요’가 없다고. ‘밥벌이를 하며 살아남아 세상을 바꿀 주체가 되려면 끝까지 버텨야 한다. 그러니까 가면을 써라.’라고 말한다. 그가 그렇게 말해주길래 나는 이제 가면을 현명하게 쓰려고 한다.
책의 모든 부분이 좋았다. 그 예감은 초반부터 강하게 다가왔다. 나는 책에 밑줄을 치거나 형광펜을 두르는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책을 깨끗하게 보는 편이다. 책은 보통, 내 영혼을 정화시키는 존재이다. 그러니까 그 자체로 깨끗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그래서 더럽히지 않고자 줄 긋기를 삼간다. 그래도 더러 밑줄을 치거나 형광펜을 사용하는 책이 있다. 책을 십 퍼센트 정도 읽었을 때 ‘안 되겠다’ 싶으면 그 책은 밑줄을 친다. 나는 책의 모든 내용을 소유하고 싶을 때, 그리고 언제 꺼내도 내게 영향을 준 그 부분을 바로 보고 싶을 때, 그런 확신이 든 때에만 책에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까 머리와 가슴에 동시에 남는 문장이 많을 때에만 밑줄을 친다. 다 읽고 나니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장 걸러 한 부분씩 형광펜의 흔적이 보인다. 그렇게 형광물을 들이고도 뒷장으로 넘기기가 어려워(아쉬워서) 자꾸 돌아보게 만드는 문장들이 차곡차곡 또 빽빽하다. 그가 페이지 173에서 니체의 책을 ‘형광펜으로 칠해 놓았던 부분만 다시 읽는다’고 한 것처럼 언젠가 나도 “다시 한번!”을 외치며 이 책을 읽을 것이다.
자신 있게, 최근 3년간 읽은 책 중 단연 최고였다. 그리고 내 책 ‘가장 빛나는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중 ‘당신이 내게 살아서 뭐하냐고 묻거든’이라는 부분이 떠올라 마음이 아프기도 했다. 허지웅님에게 다시는 그 고통의 밤이 찾아오지 않기를 바라지만, 그에게 이따금씩 아픔이 찾아온다면 말해주고 싶다. 살아있어 주어 고맙다고, 오래도록 당신의 글을 보고 싶다고. 그러니 이 밤이 지나가기를 같이 기다리자고 말이다. 그를 사랑하는 사람이 많고도 많겠지만, 나도 또 말해주고 싶다.
*** 허지웅님!! 오래도록 건강하게, 잘 읽히는 좋은 책을 남기는 작가로 살아가시기를 기원합니다.
▼ 허지웅, '살고싶다는 농담' 중에서 '천장과 바닥'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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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지웅, '살고싶다는 농담' 중에서 '믿지 않고, 기대하지 않던 나의 셈은 틀렸다’ 낭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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