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는 실제로 2021 수능 일정에 맞춰 이 만화를 연재했다. 작품 속 시간과 실제 시간이 어느 정도 일치한 것에 대해 작가는 조금이나마 수험생들에게 도움이 되는 정보를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작품 내에서 9등급을 받은 주인공 이인범은 반장 임민아와, 만화가 지망생 신준우, 담임선생 서수지로부터 공부법에 대해 각종 조언을 받는데 이 부분의 설명이 거부감 없이 꽤 흥미진진하다.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시각 자료가 적절히 곁들여진 덕이다. 그 충실한 예시는 아직 학생 신분인 독자의 학습 의지의 심지를 당겨주거나, 수능을 이미 치른 독자들에게 수험생 시절 추억을 소환한다.
누가 뭐라 해도 이인범의 성적이 수직 상승한 데에는 과거 학원 강사였다가 지금은 만화가 지망생이 된, 신준우의 도움이 결정적이었다. 그는 인범이 아르바이트하는 만화카페에 붙어살다시피 하는데, 더부룩한 머리에 지저분한 수염, 추레한 차림까지 영락없는 백수의 차림새로 지낸다. 하지만 수능에 관해선 의심할 여지없는 실력 좋은 전문가라서 이인범에게 기초부터 하나하나 지식을 전수하여 그가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준다.
하지만 실제 우리 삶에서 이 정도로 강력한 조력자를 만나기란 쉽지 않다. 그것도 학교나 학원이 아닌 만화카페에서 '우연히' 말이다. 만화 속 개연성의 부재를 짚어내는 게 아니다. 그저 안타까운 것이다. 만약 현실에서도 조력자를 만날 수 있다면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새로운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인가.
흔히 모범생들은 말한다. 학교 수업에 충실하고 교과서 위주로 공부하면 누구나 높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고. 하지만 학교 수업은 맞춤형 수업이 아니다. 학생과 선생의 일 대 일 소통에는 한계가 있다. 사람마다 성향도, 관심도, 재능도 다르다. 똑같은 방법으로 똑같은 결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뜻이다. 그런데도 성적이 낮은 학생들이 감당해야 하는 사회적 시선은 냉혹하기 짝이 없다. 일단 성적이 낮으면 무식하고 한심한 학생이라는 인상을 피할 수 없다. 도대체 제대로 된 도움 한 번 준 적 없는 사람들이 무슨 자격으로 학생들을 재단한단 말인가?
학교가 인성과 도덕을 배우는 곳이라는 순진한 믿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현재 중고등학교는 대학 진학을 위한 수단일 뿐이며, 그 안에서 학생들은 서로의 등수를 공기처럼 의식하게 된다. 선생들은 아무렇지 않게 성적을 기준으로 차별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학생들은 오랜 학습으로 그 질서에 침묵한다. 이런 환경에 오래 노출되다 보면 상위권 학생들은 자연스레 오만한 우월감과 하위권 학생들을 무시하는 선입견을 갖게 되고, 하위권 학생들은 열등감과 좌절감을 체화하며 자기 파괴적인 사고에 사로잡히고 만다.
학교가 가르치는 건 결국 서열에 굴복하는 법이다. 이 얼마나 통탄할 노릇인가. 성적 나쁜 학생이 조금이라도 선생의 말에 반발하면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억울하면 일등 하던가. 진정 그게 바람직한 해결 방법인가? 일인자에게만 권리가 허용되는 것이? 인권이라는 것은 '모든 인간'을 상정하지 않던가? 일단 일등부터 하라는 그 기막히고 무책임한 논리는 결국, 권력 있는 자의 명령에 자신의 자유를 헌납하고 무조건적으로 굴복하라는 소리와 다르지 않다. 과정은 필요 없다. 원하는 걸 얻고 싶다면 최고의 결과를 가져와라. 교실이 이런데 어떻게 사회가 아름답고 인간답길 바라겠는가.
학생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빽빽한 입시 일정을 감당하는 동안 이 질문을 진지하게 고민해 본 학생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대학 가야 하니까. 이런 하나마나한 대답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고민해서 답을 내릴 수 있는 학생이 얼마나 될까. 자기 주도 학습이 교육계 화두로 떠오르자 자기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법을 가르치는 학원이 우후죽순 생기는 게 현실이다. 남에게 배우는 자기 주도 학습이라니 우습지도 않다.
수능으로 미래가 결정된다면 수능 문제는 누가 내는 것인가? 바로 한국교육평가원이라는 기관이다. 이 권위 있는 기관이 찍어낸 성적표를 기반으로 각 대학들은 어떤 학생을 받을지 선택한다. 수능 문제가 과연 한 학생이 잠재능력을 오롯이 측정할 수 있는가 없는가에 대한 논쟁은 아직도 존재한다. 하지만 문제의 타당성에 대해 백날 논해봤자 당장 수능을 치러야 하는 학생들에겐 아무런 설득력도 없다. 애초 학생들은 선택권이 없다. 그들은 수많은 문제들을 풀며 정답을 고르는 일을 수행하면서도 정작 본인들은 언제까지나 선택을 당하는 입장이다.
한국 교육 제도가 문제도 심각하고 부작용도 상당하다는 걸 모르는 어른들은 없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구조를 바꾸려는 사람 또한 없다. 왜냐. 현재를 바꿀 수 있는 권력을 쥐고 있는 자들이 모두 기득권자이기 때문이다. 현 제도가 유지되어야만 이익을 볼 수 있는 위치의 대학 관계자들, 사교육 종사자들, 출판업자들, 정치인들, 모두 한통속이다.
자, 다시 물어보자. 학생은 왜 공부를 해야 하는가. 어쩌면 이 힘없는 답이 정답일지 모르겠다. 그냥. 하라고 하니까. 대학 가야 하니까. 다만 어쩔 수 없이 현실에 순응하더라도 성적이 곧 삶의 전부라고 믿는 것만은 피하길 바랄 뿐이다.
9등급이 일 년 안에 서울대에 진학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작품의 핵심 줄거리는 바로 이것이다. 이러나저러나 시험이란 건 가능성을 떠나 인생을 역전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이 틀림없다. 많은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든 '약자의 반란'을 원한다. 노력 하나만 있으면 역경과 고난를 극복하고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다는 희망을 발견하고 싶어 한다. 밑바닥에 있는 사람일수록 그 소원은 간절해진다.
현실이 말도 못 하고 비참하고 잔혹한데 삶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살게끔 하는 건 현실이 아니라 희망이다. 가장 끔찍한 건 변하지 않는 것이다. 어제와 오늘과 미래에 아무런 차이도 없는 삶. 그러니 뭐가 되었든 작은 기회라도 발견한다면 온 힘을 다해 붙들어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무모한지는 상관없다. 9등급이 서울대에 가는 것만큼 비현실적이라도 일단은 해봐야 한다. 습관적인 체념은 삶을 절망 속에 가두는 짓이다. 뭐가 되었든 하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는 것 자체가 생명이 보내오는 강인한 신호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