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녕 사랑은 우정의 필연적인 진화인가

옆집친구(2018)/이한솔/네이버 웹툰

by 남정은

결과만 보면 어택과 강정이는 어릴 때부터 서로를 짝사랑하고 있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이해가 안 가는 상황이다. 두 사람이 서로를 좋아하는 건 짝사랑이 아니지 않은가? 미련한 건지 철저한 건지 그만큼 둘은 본심을 꽁꽁 감춰왔다. 둘 다 두려웠던 것이다. 혹시라도 이별을 맞이하게 되면 애인과 친구를 동시에 잃는 셈이었으니까.


짝사랑하는 상대와 쭉 같은 학교에 다니고 심지어 그 사람의 옆집에 산다는 조건은 얼핏 더없이 훌륭한 장점 같다. 하지만 둘의 관계가 친구, 그것도 단짝 친구라면 경우가 다르다. 장점은 장점인데, '짝사랑하기에' 더없이 훌륭한 장점이 된다. 결승점을 바로 앞에 두고 망부석이 되어야 하는 처지랄까. 결국 중요한 건 옆집 사느냐, 윗집 사느냐, 길 건너 사느냐가 아니다. 내 마음을 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이다.


아무래도 강정이와 어택을 보면 독자로서 답답할 수밖에 없다. 애틋한 것도 한두 번이지 자꾸 타이밍이 어긋나면 주인공이 더 적극적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다. 반면 어택과 강정이를 좋아하는 주변 인물들은 표현에 무척 솔직하다. 소유나와 고수혁는 밀당이라곤 전혀 모르는 사람처럼 호감을 표시한다. 하지만 그들은 어택과 강정이의 관심을 얻을 수 없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두 사람에게 물었다. "둘이 도대체 무슨 사이야?" 두 사람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우린 친구야."


어택과 강정이에게 접근하는 이성은 끊이지 않고 등장했다. 그들은 늘 강정이와 어택의 친밀함을 의식해야 했다. 몇몇 학생들은 험담을 했다. 둘이 눈 맞았으면서 다른 사람들 어장관리를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제삼자의 판단일 뿐이다. 당사자가 아닌 주변인들은 늘 정의로운 편에 서려하고 입에 올리는 사람을 가해자로 만들려는 성향이 있다.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데 누구나 같은 시간이 걸리진 않는다. 아니, 그 마음을 깨닫는 데에 걸리는 시간도 다르고, 그런 마음이 생기는 데 드는 시간 또한 다르다. 택이에게 늘 먼저 톡을 날린다고 해서 소유나가 쉬운 여자가 아닌 것처럼, 마음을 결정하고 행동하는 데까지 남들보다 더디다고 해서 강정이를 재는 사람이라고 비난할 순 없다.


어택의 부모님은 대학 친구에서 부부로 발전한 사이였다. 하지만 둘은 동거 끝에 이혼하게 되고 어택의 어머니는 이럴 줄 알았으면 친구로 남아 있었을 걸 후회한다. 그 모습을 본 어택은 고백을 포기하고 평생 강정이의 친구로 남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강정이가 술김에 한 고백조차 모른 척 넘어가버린다.


우정은 사랑의 부분집합일까? 오래된 친구에서 연인으로 발전하는 플롯을 이용한 작품이 계속 등장하는 이유가 뭘까? 그 사이의 본질은 결국 짝사랑이다. 가장 가까이에서 상대를 지켜보면서 마음을 감춰야 하는 인물에게 대부분의 독자는 안타까움을 느끼며 적극적인 응원을 보내게 된다. 택은 군대를 다녀온 후에야 강정이에게 고백하고 둘은 드디어 연인이 된다.


친구로서의 관계도 잃을까 봐 지레 사랑을 포기하는 건 실로 바보 같은 짓이다. 연인이 되었다가 이별의 순간이 오면 애인을 잃은 아픔에 괴로워하지 친구를 잃은 사실을 아쉬워할 여유가 있을까? 더구나 상대를 이성으로 바라본 순간 우정은 이미 끝난 것이다. 고백하느냐 마느냐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일단 사랑이라는 새로운 집합이 생긴 이상 우정이라는 이름 아래 정의된 시간들은 추억 속으로 밀려나는 게 이치가 아닐까.


고수혁과 만나게 된 후 강이정은 그에게 말한다. 다른 사람이 둘 사이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것이 싫다고. 하지만 고수혁은 선배들이 둘의 관계에 대해 추접스러운 말을 하는데도 말리지 못했다. 그 상황을 막아선 건 어택이었다. 어택은 어릴 때부터 통통한 그녀를 돼지라고 놀리는 친구들과 싸움박질을 했고, 어른이 된 후에는 그녀에 관한 헛소문이나 험담을 들으면 그 자리에서 변호했다.


연애는 더없이 은밀하고 사적인 일이지만 그렇기에 더욱 타인의 시선이 끈질기게 들러붙는다. 그리고 그 시선은 대부분 왜곡되어 있거나 불순한 의도가 끼어 있다. 그럴 때 적당히 맞장구치며 그들의 비위를 맞춰주는 사람이 있고 확실하게 선을 긋고 연인을 보호하는 사람이 있다.


연애가 시작되면 먼저 인간관계에서 사생활을 철저히 분리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에게 소중한 사람을 두고 다른 사람이 입방아를 찧고 있는데 묵인하는 건 자신의 사생활을 남에게 그대로 헌납하는 짓이다. 자신의 연인이 안줏거리로 전락하는 모습을 눈치만 보고 있는 사람이라면, 사회생활은 잘하는 것일지 몰라도, 사생활에 있어서는 최악이다.


강정이 먼저 디자인 회사에 취직하며 어택은 자연스레 초조함을 느낀다. 더구나 그 회사에는 강정이에게 딴 맘을 품은 학교 선배 또한 재직하고 있었다. 선배는 계속해서 어택의 학생 신분을 은근히 강조하며 자신의 능력을 과시했다. 어택은 위기의식에 빠져 서둘러 진로를 정하지만 원하는 만큼 결과를 내지 못한다. 그리고 강정이에게 거짓말을 해가며 소유나를 만나 일러스트로서의 도움을 받는다. 강정이가 그의 거짓말을 알아채고 따지자 둘은 말다툼을 벌인다. 그 과정에서 어택은 자신의 못난 열등감을 다 털어놓고 끝내 이별을 통보한다. 어택에게 가장 큰 연적은 제3의 인물이 아니라 그의 자존심이었다.


어택은 강정이가 자신을 초라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여자 친구는 직장인, 자신은 학생이었으니까. 하지만 이별 후 그는 깨닫는다. 오히려 자신이 강정이를 좁은 세계에 가두려 했음을. 그리고 자신의 자존심 때문에 이별을 택했음을. 아무리 사랑한다고 해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이다. 이걸 반대로 생각해보자. 모든 문제의 원인이 사랑이나 연인은 아니다. 현재 자신을 괴롭게 하는 원인이 연애에 있는지, 본인에게 있는지, 제대로 볼 줄 알기만 해도 소중한 사람을 잃는 실수는 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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