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각자의 사정이 있다

아빠는 변태중(2013)/곽인근/다음 웹툰

by 남정은

세 자녀를 둔 아빠 변태중은 희망퇴직자로 몰려 실직자가 되지만 가족들에게 퇴직 사실을 숨기고 매일 출근길에 나선다. 그가 향한 곳은 미대 강의실. 그는 학생들 앞에서 나체로 서서 포즈를 취한다. 그리고 그 강의실엔 그의 집에 세 들어 사는 대학생 하예나가 앉아 있었다. 그렇게 그녀는 변태중의 비밀을 알게 된 첫 번째 사람이 된다.


아빠로서는 퇴직당한 것도 괴로운 일이었었지만, 그 사실을 가족에게 알리는 것이 더 큰 고통이었다. 그는 그 난관을 넘지 못하고 하루하루 가족들 눈치를 보며 퇴직의 부담감을 홀로 짊어졌다. 자신의 맨몸을 감추려는 듯 가장인 아버지로서의 모습으로 칭칭 자신을 휘감고 가두었다. 한편 하예나는 그의 비밀을 지켜주고 전처럼 그를 대한다. 만약 그녀가 멋대로 비밀을 폭로했다면 아빠는 혼자서 번데기를 찢고 나올 기회를 박탈당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가족 앞에 자신을 드러내야 했을 것이다.


그의 비밀을 알게 된 두 번째 사람은 치킨집을 운영하는 강정구였다. 변태중이 밖에서 아들을 피하는 모습을 보고 눈치챈 것이다. 변태중의 자진고백에 강정구는 본인 또한 퇴직당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변태중과 하예나, 강정구는 비밀결사단으로 대책회의를 열게 된다. 강정구는 본인의 경험을 십분 살려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나간다.


변태중이 강정구의 도움에 고마움을 표하자 강정구는 이웃사촌끼리 돕고 사는 게 당연하다며 사람 좋게 웃는다. 그리고 변태중은 길거리를 걷다가 이웃사촌이라는 말을 혼자 되뇌어본다. 그는 비밀을 알게 된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났지만 불안해하거나 걱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더 든든했다. 강정구가 취한 태도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그는 단지 변태중과 생활권을 맞대고 있던 이웃에서 그를 보호하는 경계가 되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


우리는 흔히 이웃을 경계 너머의 사람으로 인식하지만 사실 이웃은 나를 둘러싼 경계 그 자체에 가깝다. 전자와 같은 인식은 이웃이 나의 삶에 끼치는 영향을 침범이나 간섭으로 받아들이게 되지만, 후자와 같은 인식은 이웃을 내 삶의 일부로 받아들여 훨씬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해 준다.


사람은 다양한 형태의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간다. 가족, 친구, 직장 동료, 연인 등 각기 다른 형태의 관계가 존재한다. 그리고 각 관계는 고유의 역할이 있다. 이웃도 마찬가지다. 이웃 사이에서만 느낄 수 있는 행복의 형태가 있다. 생활이 풍족해져도 사람들이 이웃사촌의 정을 그리워하는 게 그런 이유 아닐까?


이 작품에서 이웃은 가족에게 차마 털어놓을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는 대상이 된다. 너무 가까운 사이라서 오히려 속내를 다 보일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걸 우리는 충분히 알고 있다. 일상이 밀접하지 않고서는 느낄 수 없는 동질감과, 그렇다고 중대한 일을 말하는 데 대단한 각오까지는 필요 없는 편안함을 겸비한 이웃 덕에 변태중은 가족에게 특히 아내에게 비밀을 밝히기까지 심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었다. 아무 도움도 없이 홀로 목표 지점까지 달리는 것과 가는 길마다 다정한 응원을 받으며 달리는 것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


작가는 가족 구성원이 지고 있는 혼자만의 짐을 하나하나 조명하며 가족의 의미를 고찰한다. 변태중의 식구들은 그 누구도 자신의 짐을 다른 이에게 떠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각자의 맘고생을 속으로 삭히며 당연한 듯 각자의 자리를 지켜나간다. 그렇다고 가족이란 존재가 무용하다고 판단해선 안 된다. 가족은 매일 가장 위대한 것을 알게 모르게 서로에게 선물한다. 그게 바로 일상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당연한 존재로 여느 날과 다름없는 하루의 배경이 되어주는 것, 그것만큼 누군가 기운을 차리는 데 좋은 조건은 없다.


변태중의 성장은 아내에게 퇴직을 고백하면서 완성된다. 비로소 그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아내는 여행지에서 발목을 삔 남편을 업고 숙소까지 돌아옴으로써 가장의 몫을 충분히 나눠질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빠는 자신이 혼자서 가정을 끌어나가고 있다고 생각했지 가족들 또한 제자리에서 묵묵히 힘을 보태고 있는 걸 보지 못했다. 그래서 더욱 실직의 공포에 휘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 괴로움 속에서 마음의 짐을 가족과 나누기로 결심했기에, 그의 용기는 더욱 빛났다.



작가의 이전글정녕 사랑은 우정의 필연적인 진화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