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받아주지 않는 세상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Here U Are(2018)/D JUN/네이버 웹툰

by 남정은


현우에겐 상처가 있다. 고등학교 시절 남자인 친구에게 고백을 받아 교제를 한 적이 두 번 있었지만 둘 다 끝이 좋지 않았다. 학교에서 현우는 게이라고 소문이 났고, 친구는 호기심에 그에게 고백을 한 것이라고, 사실은 여자와 사귀는 게 더 좋다고 이별을 고한다. 두 번의 비슷한 일을 겪은 현우는 쉽사리 누군가를 믿지 못하게 된다.


소수자를 가리키는 용어 자체가 소외를 강화시킨다는 말이 있다. 누군가를 게이라고 가리키는 순간 그 대상은 다수에서 멀어지고 만다. 그리고 다수에 속한 사람들은 계속 차이점을 부각하며 소수자들을 경계한다. 그 과정에서 날카로운 편견이 모두의 마음에 자리 잡는다. 왜 사람들은 화합이 아니라 분리를 추구하는 걸까?


고 변희수 전 하사는 강제 전역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하며 "'사람이 먼저인 세상'에 우리 같은 성 소수자들은 그 '사람'에 포함되는 것이 아닌지 여쭈어 보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 사람들이라는 말을 떠올리고 그에 해당하는 이미지를 상상해보자. 그 안에 장애인이 있는가? 다문화 가정이 있는가? 그리고 동성애자가 있는가? 우리는 흔히 사용되는 '사람들'이라는 보통명사는 '일반'을 함의하고 있다. 그런 사용은 결국 비일반적인 존재를 사람이 아닌 존재로 격하하는 은밀하고도 위험한 효과를 발생시킨다.


다수의 시각에서 성소수자는 호기심의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한 관점으로 인해 성소수자는 당연히 누려야 할 사람으로서의 권리를 박탈당하고 기본적인 존중을 상실한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동성애자는 사람들에게 외면받지 않기 위해 자신을 부정하고 숨기는 고통을 겪는다. 작품 속에서 현우가 재환에게 사랑을 느꼈을 때 보인 첫 반응은 감정을 억누르며 재환을 멀리하는 것이었다. 본인도 본인이지만 게이로서의 정체성을 자각하지 못한 재환이 앞으로 사회로부터 받게 될 상처를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수가 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기준에 따라 누구나 소수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 유독 고정되어 있는 소수자가 존재하는 이유는 뭘까? 바로 다수에 속한 기득권층이 그들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사람들이 집단을 이루기 위해서는 보편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그 지점이 모두를 포용해서는 안 된다. 소수의 사람들은 그 범주의 바깥에 서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집단에 결속력이 생긴다. 결국 소수자로 지칭된 자들은 현 사회의 질서를 위해 바쳐진 제물이나 마찬가지다.


대중이 표출하는 혐오의 대부분은 학습된 경우가 많다. 소수자를 음지로 몰아내면 몰아낼수록 다수에 집결된 힘은 강해진다. 그래서 학습은 더욱 체계적이고 정교하게 시행된다. 그 결과 다수의 사람들은 소외된 자들이 그러한 위치에 있는 것은 그들의 잘못이라는 인식을 갖게 된다. 사회는 그들을 포용하려 했으나 그들이 편입되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는 인상이 머릿속 깊숙이 자리 잡는다. 이러한 교육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우리 모두 사회 규율을 배워나가며 개성을 포기하거나 자신을 억압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러한 경험을 확대시켜 소수자들의 행동을 이기적으로 해석한다. 그리하여 배척은 타당해지고 비난은 용인된다.


이성애자들이 아무런 노력 없이 얻는 동질감을 느끼기 위해 동성애자는 자신의 정체성이 폭로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숱한 상처를 받아온 현우에게 재환이 특별한 존재로 다가온 건 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재환은 한 번도 본인을 게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고 차별 받은 적이 없었으므로 자신의 감정에 충실할 수 있었다. 재환이 지닌 또 하나의 매력은 세상을 바꾸려는 비장한 결의나 대단한 투쟁심, 무례한 사람들을 향한 적의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의 공격성은 오로지 현우가 다치거나 곤경에 처했을 때만 발휘된다. 덕분에 독자는 그를 통해 동성애의 지극한 평범성을 발견한다. 자기 자신으로 살 수 있게끔 지켜주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애틋하고 아름다운 일인가. 로맨스 분야에서 BL장르가 오랫동안 탄탄한 입지를 다질 수 있었던 건 세상 사람들과 다 등을 돌리더라도 자신의 감정에 솔직할 수 있는 용기를 보여주는 데에 이보다 더 독보적인 장르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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