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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구름 Apr 30. 2024

#5. 거짓말쟁이 손님

    점원으로 일하면서도 나는 소비자 편에 서서 생각하면서 일했다. 나도 퇴근하면 흔한 소비자 중 한 명에 지나지 않으니까 부당하거나 불쾌한 일을 겪지 않도록 최대한 손님의 편의를 봐드렸다. 이런 태도 때문에 다른 직원이 손님에게 더 단호하게 대해야한다는 주의를 준 적도 있다. 하지만 내 성향이 원체 갈등을 싫어하고 먼저 배려해서 분위기를 무마하려는 편이라 잘 고쳐지지 않았다.


    하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더 냉정해져야겠다 다짐하게 되었다. 손님의 거짓말에 속아서 실수를 했기 때문이다. 하루는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보조기를 끌며 계산대로 다가오셨다. 전에 여행용 샤워제품 세트를 사가셨는데 손녀가 맘에 안 든다고 했다며 환불해달라고 하셨다. 가져오신 물건을 보니 지퍼가 달린 투명 파우치 안에 상품이 들어 있었는데 보통 이런 상품은 지퍼를 열지 못하게 처리를 해놓기 때문에 달려 있는 걸 뜯었는지 물었다. 그랬더니 어르신은 갸냘픈 손사래를 치며 손도 안 대고 그대로 가져왔다고 하셨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새 상품을 가져와서 대조하면 되지만 뒤에 기다리는 손님도 계시고 나이 지긋하신 분이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하는 것도 죄송해서 바로 환불처리를 하고 돈을 돌려드렸다.


    그런데 재진열하려고 보니, 아뿔싸, 새 상품엔 하나같이 지퍼에 플라스틱 고리가 달려서 열리지 않게 마감되어 있었다. 게다가 내용물을 하나씩 꺼내서 확인해 보니 치약 끝이 살짝 눌려있는 게 아닌가. 실수로 눌렀다기보다는 누가 봐도 한 번 쓴 것처럼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왜 아까는 이게 보이지 않았는지 오 분 전의 자신이 원망스러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니, 그것보다도 억울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거짓말을 하신 어르신에게 배신감을 느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손님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은 내 잘못이지.


    손님들의 거짓말은 그 이후로도 몇 번 더 겪었다. "여기서 산 거 맞아요.", "분명 ○원이라고 써 있었다고요!", "밖에 직원이 깎아준다고 하던데요?" 등 넋 놓고 있으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기세로 몰아붙이는 손님들을 만나면 온몸에 바짝 힘이 들어갔다. 물론 작정하고 속이기보다는 본인도 착각해서 주장하시는 분이 더 많을 것이다.(그러리라 믿는다) 다만 본인의 실수가 밝혀졌을 때 미안하다는 말 한 마디만 해주셨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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