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열린, 그래서 여린

by 남정은

나는 글보다 말이 더 어렵다. 말은 시간제한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대화 상황에서는 숙고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상대의 말에 즉각 반응하여 적절한 말을 찾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의도와 어긋난 말이 튀어나오기도 하고 군말이 붙기도 한다. 그래서 매일 밤 오늘 내가 한 말을 되작되작 곱씹으며 한참 후회에 휩싸인다. 한국어를 쓴 지 서른 해가 넘었는데 왜 아직도 말에 서툰 걸까 억울해 하며.


말하기는 쉽다. 떠오르는 대로 다 쏟아내면 그만이다. 하지만 이런 방식은 듣는 사람을 전혀 배려하지 않는 방식이다. 나만 하더라도 말할 때보다 들을 때 신경이 더 곤두선다. 훈련된 사람이 아니고서야 일상 속 대화를 살펴보면 대부분은 두서없이 말하거나 자꾸 화제를 바꾼다. 그 속에서 이 사람이 진짜 의도하는 바가 뭔지 파악해야 하고 말의 내용은 물론 비언어적인 표현, 즉 표정, 손짓, 어조까지 종합적으로 분석해야 한다. 여기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하는지 내가 놓친 말은 없었는지 등 남의 말을 듣고 있으면 한시도 고민을 멈출 수 없다.


대화는 협력이 기본이다. 내가 한 말을 상대방이 경청할 거라는 화자의 믿음, 상대방이 내가 가장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말할 거라는 청자의 믿음을 서로 지켜주어야 대화가 부드러이 흘러간다. 참고로 대화에서는 말수가 많은 사람보다는 적은 사람이, 말이 빠른 사람보다는 느린 사람이, 목소리가 큰 사람보다는 작은 사람이 좋다. 무조건 많고 빠르고 큰 것을 최고로 치는 세상살이와 다르게 말의 세계에서는 남보다 한 발짝 물러서는 것이 더 큰 미덕이더라.


내가 보기에 대화의 중심은 화자보다 청자에게 있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많지만 잘 듣는 사람은 드물다. 나만 하더라도 평소 눌변이지만 잘 듣는 사람 앞에서 어쩐지 달변이 된다. 거꾸로 생각하면 내가 잘 들어주어야 상대가 말을 잘하게 되고 소통이 잘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요즘엔 '어떤 말을 할까?'보다 '내가 잘 듣고 있는 걸까?'를 고민하는 순간이 더 많다.


살다 보니 말 한 마디의 위력이 얼마나 큰지 여러 번 느꼈다. 무심코 들은 가시 돋친 말에 맑았던 마음이 그무러지기도 하고, 정겨운 말 한 마디에 오래된 응어리가 사르르 풀리기도 한다. 누가 어제 뭘 했는지 물어보면 옹송망송 고민하느라 바빴는데, 나에게 인상 깊은 말을 남긴 사람은 몇 해가 지나도 섬뻑 떠올랐다. 명대사로 한 영화를 기억하는 것처럼 말 한 마디가 누군가를 마음속에 참 오래 품게 했다. 그게 약이든 독이든.


말을 섞는다는 건 대담한 소통이다. 상대가 언제 나에게 상처가 되는 말을 내뱉을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갑자기 얼굴에 물을 뿌리면 저절로 눈꺼풀이 감기고, 모르고 뜨거운 것을 만지면 재빨리 손을 떼게 된다. 하지만 귀는 항상 열려 있다. 어떤 말이든 방어막 없이 그대로 여린 마음 한복판까지 내달린다. 말소리는 찰나에 사라질지라도 말 자체는 쉬이 사그라지지 않는다. 어떤 말은 평생을 따라다닌다. 가끔은 눈꺼풀처럼 귀를 닫을 수 있는 귀꺼풀이 없는 게 원망스럽다. 왜 귓바퀴는 대책 없이 모든 말을 주워 담는 걸까.


사람마다 성향도 다르고 사고방식도 다르기에 선의로 한 말일지라도 누군가에겐 상처가 될 수 있다. 차라리 악의에 북받친 사나운 말을 들으면 어떻게든 감당해 냈다. 하지만 나에게 한없이 호의적인 사람이 무심코 던진 말에는 손쓸 도리 없이 마음이 와르르 무너졌다.


세상에 예쁜 말만 듣고 사는 사람은 없다. 우리의 마음을 눈으로 볼 수 있다면 곪았다가 솔았다가 세났다가 아물었다가 하는 흔적이 온통 봉퉁이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못생긴 봉퉁이에도 저마다 값어치가 있다. 남보다 유약한 내가 수없이 은결들면서 배운 점을 생각하면 흉진 마음이 그렇게 부끄럽지 않다.


전에는 들은 말의 집합체가 곧 나라고 생각했다. 누가 어떤 일을 못한다고 하면 나는 그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었고, 누가 틀렸다고 하면 나는 틀린 사람이 되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내 정체성을 결정하는 건 들은 말이 아니라 뱉은 말이었다. 서슬 퍼런 말을 들었을 때 악에 받쳐 그것과 똑같은, 또는 그보다 악독한 말을 내뱉으면 오히려 내안에 상처가 더 깊어졌다. 지금은 속을 후비는 남의 말을 오래 담아두지 않는다. 그것은 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어떤 말을 들어도 그것을 내 정체성으로 두는 잘못을 저지르지 않는 미립이 트였다.


'말질'이라는 낱말이 있다. 비하의 뜻이 담긴 접미사 '-질'이 붙은 것만 봐도 그리 좋은 뜻이 아니란 것은 알 수 있지만 구체적인 뜻은 이렇다. '이러니저러니 하고 말로 다투거나 쓸데없이 말을 옮기는 일을 낮잡아 이르는 말.' 요즘은 말하는 사람이 드물고 말질로 각치는 사람들이 판친다. 그러지 말고 우리, 말을 하자. 남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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