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살 딸보다 못한 아빠의 운전 습관
살면서 뭐 그렇게 억울한 일이 많은지 운전하면서 자꾸 예민해 진다. 그리고 점점 양보보다는 순서 안지키는 차에 대해 예민해 진다.
가족들을 위해서는 양보가 최선인데 그렇지 못한 날들이 많이 진다.
그러던 어느날이 였다. 항창 위험한 운전을 한 상대편 차에 대해 화가 나있는데 다혜가 뒤에서 한말이 아빠가 미안해 지게 만들었다.
처음 본 차가 다혜 친구일리가 없지만 딸은 이런식으로 표현했다. 4살 아이가 할수 있는 표현이다. 조심해서 운전하라는 이야기 이기도 하고 양보하라는 다혜식 표현이다. 그순간 내가 아차 했다.
세상 살면서 뭐 그렇게 억울한 일이 많았다고 이렇게 까지 예민한걸까 특히 가족들 있을때는 무조건 양보가 우선인데 말이다.
4살 딸보다 못한 아빠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 뭐 그렇게 억울한게 많았을까? 그래봐야 한번 양보한거고 한번 돌아간건데 뭐가 그렇게 억울한걸까?
앞으로 가봐야 100미터도 아니고 다음 신호 가면 차 한대 차 인데 뭐 그렇게 예민한걸까?
그렇다 뭐 그렇게 억울한게 많았을까? 조금 손해 보고 조금 양보하고 살면되지 가족이상 중요한게 있다고 한대 한대 지나가는데 그것 차례 안지킨다고 뭐 그렇게 화가 난걸까 ?
차라는 놈은 내가 아니라도 그 대가는 자기가 치루게 되는게 운전 습관인데 그렇게 까지 예민했을 이유가 있는가?
조금의 실수도 용납하지 않는 자기 자신을 사랑할줄 모르는 사람 그래서 점점 난폭해 지는 자신을 잃어 버린것이다. 이제 4살인 딸에게는 모든 차가 타요, 뽀로로, 폴리 인데 다 친구였다. 아빠인 나는 다 적군으로 보게 된거다. 내 차례인데 양보하기 싫아 하는 꼴 불견들 이런 생각이 가득한 것이다.
딸에게는 아빠는 타요를 괴롭히는 악당, 폴리를 괴롭히는 악당으로 아빠가 변한거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양보 해봐야 1대 빨리 가봐야 차량 1대 차이정도인데 10분이 늦는것도 아니고 1분이 늦는것도 아니다. 다음 교차로 가면 앞서 간차는 내앞에 있다 .항상 그랬다. 멀리 가지도 못하고 내 앞차 또는 그 앞에 서 있다. 신혹를 기다리면서 늦게 따라오지만 신호대기에 가면 항상 2미터 거리 정도다 .
그렇게 빨리 양보하기 싫어가 간 차들은 그렇게 대기 하고 있다. 그기도 익숙한 도로는 천천히 내가 앞서 가는 경우도 있다. 차선 바꿔서 더 늦게 가는 차들도 있다. 항상 난 느끼면서도 웃긴다고 생각했는데 내가 지금은 예민해 있다는 점이다.
시급 6000원이 힘들다. 물론 난 그렇게도 받지 못할때 가 있다. 하지만 자신을 잃지는 말자 딸의 미래는 이런 아빠가 6000원 받은 시급중에 1200원은 따로 저금해서 매주 미아 방지 밴드를 보내 주고 있다. 그런데 내자신을 자꾸 잃어 가지고 있다. 뭐 그렇게 세상과 싸우려고 하는가 딸 말이 맞다. 다혜 친군데 아빠 왜 그래 그게 맞다. 다 친구다. 악당 친구도 있고 착한 친구도 있다. 그런데 내가 악당이 되어 가고 있었던것을 다혜가 본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
힘들어도 꿈을 잃지 말고 사랑을 잃지 말자 딸에게서 한방 먹고 지금 저녁에 다시 다혜 이야기를 한다. 다혜야 사랑해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