캡틴 판타스틱 (2016, 맷 로스)

삶에는 완벽한 정답이란 없다

by 베일

어떻게 살아야 하죠?

주변 친구들이 하나 둘 졸업하고 취업 준비를 하는 친구들이 늘어나자 미래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하지 않고 살던 나 도 요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사실 생각할수록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아무런 고민 없이 정해진 코스가 있는 것 마냥 학교를 가고, 정해진 시기에 취업을 한다. 그 뿐 만이 아니다. 30대 즈음부터 결혼은 안 하냐는 물음이 쏟아진다. 결혼을 해도 끝이 아니다. 결혼을 하면 그럼 아이 는 언제 가질거냐는 물음이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한국 인터넷 커뮤니티에 수도 없이 많이 올라오는 글은 지금 몇 살인데 뭐 하기엔 늦었겠죠? 지금 시작하면 한심해보이겠지? 같은 고민 글들이다. 그럴 수 밖에 없는 게 한국 사 회는 마치 그 나이라면 응당 해야 하는 일들이 있는 것 처럼 정해놓고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 같은 취급을 한다. 그래서 남들과 다른 길을 가는 사람들을 별종 취급 하기도 하고 별난 사람 취급을 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한국이 특히 삶에 대한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한다고 느꼈는데 그건 비교적 자유로워 보이는 미국도 마찬가지였나 보다.


산 속의 가족들 세상 밖으로 나오다


그렇지만 <캡틴 판타스틱>의 가족들은 뭔가 다르다. 이 가족은 언뜻 보면 문명과 단절된 채 살아가는 몇 남지 않 은 소수민족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 6명의 아이들을 이끄는 것은 아버지인 캡틴 벤이다. 이들은 산 속에서 거주하 고 있으며 공교육은 거부하고 아버지 벤이 선생님 역할을 한다. 이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비슷한 나이 또래의 학교 를 다니는 학생들이 배우는 것과 는 좀 다르다. 칼 하나로 숲 속에서 생존하는 방법, 불 피우는 방법, 별자리로 길 찾는 법, 암벽을 등반하는 법 등을 배운다. 아이들의 운동 신경은 거의 운동선수와 맞먹을 정도이다. 이들이 육체 적 훈련만을 받는 것 만은 아니다. 총균쇠를 읽고 양자 역학에 대해 토론한다. 다섯째 사자는 권리 조항을 줄줄 외 운다. 그러나 이렇게 자연 가까이에서 남다른 교육을 받고 지내는 아이들에게 갑작스레 슬픔이 닥친다. 치료를 이 유로 가족들과 함께 사는 숲을 벗어나 도시로 내려간 엄마가 투병을 하다 죽음을 택한 것이다. 슬픔에 빠진 아이들 에게는 그렇게 장례식을 가서 엄마을 배웅해주자! 하는 미션이 생긴다. 그리고 산 속을 벗어난 가족들의 모험이 시 작된다. 이들이 자신들만의 세계에서 내려와 세상과 맞딱드리자, 그들의 공교했던 세계에 균열이 생기고 그 과정 에서 이 가족의 캡틴인 벤의 가치관에 있는 모순점 또한 드러난다.


벤과 아이들이 왜 산 속으로 올라가 이러한 삶을 선택 했는지를 살펴본다면, 그것은 순전히 아버지인 벤의 가치관 이었을 것이다. 영화의 배경인 미국은 그야말로 현대 사회에서 자본주의를 대표하는 나라이다. 자유로운 나라인 듯 보여도 미국을 살펴보면 아직도 자본주의에서 파생된 여러 문제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빈부격차, 환경문제, 인종차별, 물질 만능주의 등 사실상 미국이라는 나라의 문제들은 자본주의라는 시스템과 밀접하게 관련이 되어있 다. 그래서 벤은 자본주의를 포함한 미국의 사상과 반대되어 보이는 책들을 아이들의 교과서로 쓰기도 한다. 미국 에서 아이들이 태어났지만 미국의 사상이 아닌,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가르치기로 한 것이다. 실제로 아 이들의 지적 수준이 상당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벤이 교육하고자 하는 능력들은 어느 정도 꽤 높은 수준의 성 과를 거둔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은 정말 자본주의와 현대 문명에 맞서는 완벽한 체계를 찾은 것일까?


아이들은 평범하게 공교육을 받으며 학교를 다니는 다른 학생들보다 훨씬 높은 교육 성취도를 보이며 운동선수와 버금가는 체력과 운동신경을 지니고 있다. 첫째 보데반은 8개 국어를 할 수 있는, 미국의 여러 명문대학교에 합격 할 정도로 뛰어난 수재 이지만, 마음에 드는 이성을 만났을 때, 제대로 된 대화조차 하지 못한다. 그녀가 하는 말은 사회와 단절되어 살아온 보데반에게 별나라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월등한 학업 성취도와 운동신경, 생존 능력을 갖추었다고 하여도, 사회와 단절된 생활을 하는 인간은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 일까?


또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반기를 드는 아이도 생긴다. 대표적으로 넷째 렐리안은 인권과 지성을 고양시킨 인도주 의자 노엄 촘스키의 날을 기념하기 보다 남들처럼 평범하게 크리스마스를 기념하고 싶어한다. 그런 렐리안에게 벤 은 그 사안에 대해 토론을 제안하며 렐리안의 의견이 타당하다면 의견을 바꿀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한다. 렐리안 은 결국 자신의 의견을 말하지 않은 채 돌아선다. 참고로 영화 초반, 온 가족이 연주를 할 때 연주 방향을 바꾼 것 도 렐리안이다. 영화 후반부에 아버지의 교육 방식에 대한 렐리안의 불만은 더욱 심화되어 할아버지, 할머니의 집 에 남아 살겠다는 선언을 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렐리안 외 다른 아이들이 아버지의 사상과 교육에 동의하 는 것이 정말 아이들 자신의 의지가 맞는 것일지 하는 의문이 생겼다. 아직 너무 어려보이는 막내들, 사자와 나이





는 자본주의에 반대하며 반감을 가지고 있다.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사회와 단절되고 아버지가 정해준 책들을 읽고 아버지 한 사람에게 교육을 받고 있다. 그런 아버지에게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한 사상만을 주입 받으며 자랐기 때문에 어쩌면 이러한 결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다른 사상이나 사회의 체제를 배우거나 체 험해 볼 선택권이 없는 상황에서, 벤에게 교육받은 아이들은 아버지의 편에 설 확률이 높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렐리안은 가족들과 토론하며 크리스마스를 기념하자는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것을 포기했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 꺾이지 않을 것 같았던 벤의 고집이 무너지는 사건이 발생한다. 그것은 사랑하는 아내의 죽음도 아니 며 장인어른이 경찰을 부르겠다고 협박할 때도 아니었다. 렐리안이 할아버지의 집에 남기로 결정하자 렐리안 구출 작전을 셋째 베스퍼가 주도하게 되면서 베스퍼가 지붕에서 떨어져 크게 다친다. 그리고 그토록 거부했던 현대 문 명, 의학의 도움으로 베스퍼가 치료되는 과정을 목격하며 베스퍼가 죽을 수도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 사건 이후 장인의 협박에도 아랑곳하지 않던 그가 처음으로 고집을 꺾고 장인어른의 집에 아이들을 맡긴다. 사랑하는 이 앞에서 그는 신념도, 자존심도 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 지점에서 관객들은 그의 꼿꼿한 신념이 무너지며 그의 체계가 흔들리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가 아이들을 포기한 것 처럼 보였을 때 이런 캡틴에게 다가온 것은 그 의 대원들이다. 엄마 구하기 미션을 포기한 것 처럼 보이는 그에게 아이들은 엄마의 소원대로 화장을 하고 변기물 에 재를 내려주자고 주장한다. 그리고 가장 유쾌한 이별이 시작된다. 이들의 이별은 뭔가 특별하다. 매장된 엄마를 무덤 관에서 꺼내 자연으로 가서, 엄마가 좋아했던 노래인 Sweet Child O’ Mine을 부르며 웃으면서 이별을 노 래한다. 그리고 쿨하게 변기안에 화장한 뼛가루를 넣고 작별을 고한다. 잘가, 엄마. 이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 면은 나에게 있어 아버지와 여섯 아이들이 변기를 내려다보는 로우앵글 씬일 것이다.


삶에는 정답이 없다


세상에 완벽한 사상은 없다. 완벽한 이론도, 완벽한 사람도, 완벽한 종교 또한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인생에 답이 정 해진듯 살면 안된다. 안 된다기 보다 너무 아쉽다. 그러나 나 또한 정해진 코스대로 쉽게 삶의 방향을 결정하곤 했 다. 물론 남들과 비슷하게 사는 삶이 나에게 가장 잘 맞는 삶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한번도 다른 방향으로의 삶을 고민해보지 않는다. 물론 그 과정에서 실수도 할 수 있고 처참하게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면 뭐 어떤가. 가던 길에서 몸을 틀어 샛길로 빠지거나, 혹은 내가 예전에 걸어가던 길로 몸을 돌려 되돌아 갈 수도 있다. 이 판타스틱 한 가족처럼 말이다. 초반 엄격하게 자신의 사상과 교육관을 강요했던 벤은 여러 우여곡절을 겪으며 타협점을 찾 게 된다. 나는 이 타협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거나 초라해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게 수정해나가는 과정이 더 나은 삶 의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여정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이 벤의 가족이 앞으로 어떠한 어려움이 닥쳐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벤은 이 사회에 대해 정해진 대로 살지 않고 자신의 방식을 능동적으로 찾아 나가는 인물이다. 이런 벤에게도 논리 가 부족한 부분이나 결점들이 있지만 그는 자신을 인정하고 그가 가진 가치관에 약간의 유연성을 추가 했다. 그런 벤의 모습이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태도를 돌아보게 한다. 우리는 정말 어떤 방식으로 살지 선택하고, 치열하게 고 민하고 부딪히며 살고 있는가? 그러므로 이 판타스틱한 가족들의 삶에서 배울 것이 있을 것이다. 남들이 가던 길 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든다면 잠깐 벗어나 역행도 해보고 딴 길로도 새보자. 그 과정에서 넘어지고 다칠지 몰 라도 남들과 비슷한 길을 갔을 때는 못 봤던 꽃을 발견 할 수도 있고 바다에 도착해 배로 갈아탈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이 영화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은 벤의 이러한 가치관도, 혹은 일반적인 미국의 가치관도 어느 한 쪽이 옳다고 강조하지 않는 지점에 있었다. 왜냐하면 우리 삶에는 정답이 없기 때문이다.


사투 끝에 어떻게 살 것인지를 찾은 벤의 가족이 마지막 장면에서 비로소 정돈된 아침을 맞은 것 처럼, 인생을 내 입맛대로 즐기자. 벤이 아들 보데반에게 작별인사로 했던 말이 떠오르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니 만끽하자, 인생은 짧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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