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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Apr 18. 2023

베어 물다


 사과 향은 향긋하다. 달콤하면서 시큼하며 은은하면서 강하다. 냄새를 맡을수록 정겹다. 어쩜 이리도 좋을까. 그러다 문득 궁금해진다. 사과 자체의 향이 좋아서 기분이 좋은 걸까, 사과를 맛있게 먹은 기억이 있어 사과향이 좋은 걸까? 아니면, 두 가지 다인가?


 사과는 내 일상에서 자주 찾아볼 수 있는 것이다. 밥을 먹듯 일상적이다. 내가 가진 사과의 기억. 사과가 가진 내 추억. 나는 그동안 사과를 먹은 것이었을까 추억을 먹은 것이었을까? 사과 향이 좋아서 먹었지만 맛있었다는 기억이 더 커졌을 수도 있고, 맛있어서 자주 먹었지만 맛있는 향이 더 기억에 남을 수도 있을 것이다. 사실 무엇이 먼저인지, 어느 것이 맞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단지, 사과향이 가지고 있는 그 기억과 행복했던 추억만이 중요하다.


 우리는 살면서 추억 또는 기억을 일상의 물건이나 행동, 또는 사람 속에 녹여가며 살고 있다. 추억이 있는 일기, 어릴 적 학교 친구들, 지금의 가족까지. 나는 나의 일부가 되고 내 친구들의 일부가 되고, 가족의 일부가 되고, 또 내가 먹는 사과의 일부도 된다. 물건, 행동, 사람. 서로가 서로의 일부가 되어 따로 떨어져서는 기억도 추억도 없다.


사과가 내는 향은 사과자체의 향이기도 하겠지만 내 기억과 추억의 향이기도 하다. 사과향이 향기롭다는 것은 내가 가진 추억의 향이 향기롭다는 것이다. 사과 향에 쓰라린 기억을 담은 사람은 결코 사과 향이 좋지 못할 것이다.


 내 주변에는 사과 향처럼 향기로운 것들이 많다. 좋은 추억을 담고 좋은 향을 풍기며 나의 일상에 오래도록 자리 잡고 있다. 설사 그것이 지금은 필요 없다 하더러도 내 기억의 일부를 쉬이 버리기엔 마음이 안타깝다.


노력과 인내의 향은 작지만 더욱 진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 사과 하나가 먹기 좋은 열매로 좋은 향을 내기까지의 시간을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일 같다. 내 주변사람들과 물건들이 나의 향기로운 일부이듯 나도 진하고 향기로운 일부가 되려면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듯이.


사과를 크게 한 입 베어 물어본다. 달콤하고 향긋한 향에 혀까지 즐겁다. 그 맛에 흥분되어 나도 모르게 빨리 씹어 삼킨다.  그리고 또다시 베어 문다. 이번에는 천천히 음미하리라 다짐하면서. 맛과 향을 내는 데도 인내가 필요하겠지만 그것을 느끼는데도 인내가 필요하다. 그 인내의 향이 사과의 것인지 내 기분의 것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즐겁다. 입과 혀, 마음까지 즐거워지는 이런 인내라면 매일 기분 좋게 견딜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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