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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y 01. 2023

보물 찾기

Treasure Hunt

  역시나 잠이 오질 않는다. 껌껌한 허공을 쳐다보며 눈알을 굴리다 슬쩍 미소 짓는다. 그러다 벌떡 일어난다. 한쪽 벽에 세워둔 가방 쪽으로 슬금슬금 다가가 옅은 빛에서 묻어온 실루엣으로 가방 안의 물건을 조심스레 확인한다. 과자 두 봉지, 사이다 한 병, 물병, 초콜릿 하나, 손수건 하나, 그리고 돗자리. '음, 다 있네.' 그때, 어둠을 가르는 작은언니의 꾸중 소리. "까자 고만 세알리고 퍼뜩 자라, 고마! 그라다 내일 못 일나믄 소풍 못간디!"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깼나 보다. 후다닥. 바람처럼 내 자리로 돌아가서 자는 척을 한다. 꾸중에도 미소는 얼굴을 떠날 줄 모른다. '내일은 소풍 가서 과자 먹고 힘내서 꼭 보물도 찾아야지. 이번에는 꼭 찾아내야지!' 소풍 전야의 달콤함을 베개 삼아 보물 찾기의 의지를 다지며 꿈속으로 빠져든다.


 초등학교 때는 소풍을 하러 갈 때마다 소풍의 ‘꽃 중의 꽃’인 보물 찾기를 했었다. 나는 한 번도 보물을 찾아서 가져 본 적이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초등학교시절 내내 산으로만 소풍 갔기 때문에 산과 들에 선생님들께서 끼워놓은 상품이 적힌 그 하얀색의 보물 쪽지는 잘 보일 수밖에 없을 텐데도, 당최 내 눈에 왜 그리도 보이지 않았던 건지 모르겠다. 보물을 찾은 친구들을 부러워하며 마무리하기 일쑤였다. 어쩌다 힘겹게 보물 쪽지를 찾는 날이면 커다랗게 '꽝'이라는 글자가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반겨주었다. 그럴 때면 힘이 절로 쭉 빠졌다.


 그때의 안타까운 경험 덕분인지, 어릴 적 유난히 무언가를 찾아 떠나는 모험 영화와 보물찾기 영화를 섭렵했다.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는 물론이거니와, 지금도 잊을 수 없는 ‘구니스’, ‘신밧드의 모험’, ‘해치의 모험’, ‘이상한 나라의 폴’등은 단연코 어린 시절의 즐거움이었다. 나는 무엇을 찾고 싶었기에 이것들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었을까?


힘들고 지치고 함정에 빠져도 굴하지 않고 다시 일어서는 불굴의 의지를 가슴속 깊은 곳에 넣고, 보물에 가까워질수록 나타나는 힘겨운 문제들을 하나둘씩 해결해 나가는 그 과정 자체를 즐기는 주인공들의 여유에 매료되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마음에 손에 땀을 쥐었지만 주인공이 이 상황을 이겨낼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가졌다. 그 어려움을 이겨냈을 때의 순간은 통쾌함과 쾌감을 안겨주었고, 등장인물들이 너무도 자랑스러워 가끔은 눈물도 흘렸다. 자연스레 나도 무엇이든 도전할 수 있을 거라는 자신감과 용기를 가지게 해 주었다.


그 용기의 바통을 이어받아, 나에게도 내 모험 시리즈가 생겼다. 현재 진행 중인 이 모험의 분위기를 들여다보자면, 놀랍게도 아주 사소하고도 구질구질하다. 그렇다고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은 없다. 모두가 소중하고도 사랑스럽다. 누구의 것도 아닌 100% 실화인 내 모험이니까.


그중 하나는, 오랜 시간 동안 열망하던 글을 쓰고 있는 ‘글과 함께 춤을’ 꿈의 모험과 실현 편이다. 수많은 책을 통해 누군가의 글에서 인생을 배우고, 글을 읽으며 그 말이 주는 무게와 깨달음에 가슴 벅찬 순간이 너무나도 소중하다. 그 보물을 등불 삼아 투박하지만, 나의 내면의 글을 쓰고있다.


어린 시절, 보물 쪽지를 겨우 하나 찾아서 열었을 때 나를 반겨 주었던 ‘꽝’이라는 글자는 실망과 함께 새로운 모험의 기회를 안겨주었다. ‘꽝’은 다음 모험을 알리는 힌트이다. 아직도 수많은 보물 쪽지들이 남아있다. 당장은 눈에 잘 보이지 않더라도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행선지로 모험을 떠나보면 운 좋게도 보물섬을 찾게 될지 누가 알겠는가. 보물을 찾으러 떠나려는 그 보석 같은 마음이 이미 하나의 보물이라서 적어도 허탕은 아닐 것이다. 그것이 다음 보물을 찾는 지도가 되어줄 테니까. 오늘도 빛나는 보물 하나를 마음속에서 꺼내어 요리조리 비추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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