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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isha Mar 02. 2023

보따리 작대기

출발점


 칠흑같이 컴컴한 밤이지만 손전등의 빛들이 우르르 한쪽을 향한다. 무덤 입구를 발견했다는 목소리가 들리는 쪽으로 빛들이 앞뒤를 흔들며 너도 나도  다투어 움직인다. 여기저기   없는 언어의 탄성과 기도가 이어지며 얼마 남지 않았다는  최고로 격양된 목소리가 온전한 입구를 보기 위해 흙을 털어내고 틈새를 벌린다. 

쿠구궁 터덩! 봉해진 무덤 입구가 기함을 토하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눅은 곰팡이냄새와 오래된 흙냄새가 코를 찌른다.

 여기는 쿠푸와 투탕카멘을 이어 람세스 2세의 무덤. 이집트 누비아 원정대와 함께 고고학자인 나는 10 년간  무덤을 찾기 위해 이집트에 머물며 이곳을 찾아다녔다. 감격도 잠시. 벽을 따라 크고 작게 그려진 상형문자를 읽으며 람세스가 있는 관을 찾는다. 화려한 독수리  마리의 호위를 받고 있는 파라오의 그림. 여기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상형 그림을 살며시 만져본다. 갑자기 으스스한 기분이 들더니 곧이어 찢어지는 듯한 비명소리가 고개를 다급히 움직이게 한다. 그림자 같은 검은 어둠 덩어리가 날아오는 것이 보이더니 일순간 눈앞이 깜깜해지며 정신을 잃는다.


고고학자가 되고 싶었던 내가 고등학생이  때까지 상상해 왔던  람세스 2세의  무덤 발견 장면이다. 투탕카멘. 어리고 잘생긴 이집트의 왕에 한번 매료되고  미스터리에 다시 한번  매료되었었다. 이집트 관련 소설을 읽은 후였던  같다.   나의 이집트 사랑은 날이 갈수록 집착에 가까워졌다.


이집트 관련 소설과 기사 등을 읽고 또 읽으며 무덤을 찾아 여는 장면을 상상해 왔다. 파피루스와 비슷하다는 이유로 포장된 생선회 아래 깔아 놓은 얇은 나뭇결 종이를 얻기 위해 먹지도 못하는 회를 사달라고 부모님을 여러 번 조르기도 했다. 손으로 빨아서 깨끗하게 말린 횟집 파피루스들을 모아 상형문자를 옮겨 적으며 친구들에게 해독을 시켰고, 그 덕에 반에서 람세스 부인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고등학교 도서부 부장이 되던 해, 학교 학예전 때 급기야 검은 전지로 도서실벽을 모두 덮고 흰색 물감으로 이집트 상형문자 및 벽화들을 그렸다. 박카스 10개들이 상자에 금색 락카 칠을 해서 벽돌을 만든 후 쌓아 올려 피라미드를 만들었다. 빨갛게 그러진 불타오르는 해가 이집트의 금빛 피라미드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듯 보였다.


시간이 되면  친구들과 기차여행을 가자고 졸랐다.  지역의 흙을 연구하러 가고 싶었기 때문이다.  연구일지를 만들어 놓았던 것은 말할 것도 없다. 후에 이집트에 가려면 이집트어를 해야 하는데 글자를 알아보는 것조차 어려웠다. 그래서 머리를 굴렸다. 이집트에서도 영어를   같았기 때문이다.  빠르고  편해 보이는 영어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언제 어디서 이상현상으로 인해 과거의 이집트로 빠져 들어갈지 모른다고 생각했었다. 최소한 람세스와  마디 대화라도 하려면 영어가  필요했다. 주인공이 되기 위해 만반의 준비가 필요했다.


내 과거의 예비 신랑 람세스가 너무도 고맙고 감사하다. 영어를 공부하게 해서라기보다, 그가 나에게 준 열정과 꿈이 나를 가슴 뛰게 해서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그때만큼 열정적이지 못하다. 그래서 그때의 나에게 가끔 질투가 나기도 하고 부럽기도 하다.


초등학교 시절, 나를 미치도록 사로잡았던 노래가 있었다. “신이 난다~ 재미난다~ 어린이 명작동화~” 어린이 명작동화를 TV로 볼 때마다 곱게 무릎을 꿇고 앉아 두 손을 모으고 집중하던 나를 발견했다. 아직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짜릿하다. 그 동화 속 주인공들이 기다란 나무 작대기에 보따리를 묶어 어깨에 메고 세계를 여행하면서 신기하고 감동적인 일들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나도 언젠가 저렇게 작대기에 보따리를 묶어 짊어지고 온 세상을 여행하리라 마음먹었다.


 보따리 속에는 열정과 사랑과 상상력이 담겨있다. 지금도 나는 크고 작은 보따리들을 들고 여전히 여행을 하고 있다. 바로 내 삶의 여정이다. 보따리 속에서 나의 열정을 꺼내 쓰기도 하고 뜻밖의 행복이라는 선물을 받아 보따리 속에 넣어 간직하기도 한다. 열정과 사랑이 빠져나와 작고 홀쭉한 보따리가 되기도, 만족과 행복이 쌓여 크고 묵직한 보따리가 되기도 한다. 작든 크든 또 수많은 여정을 거치게 될 보따리 작대기는 오늘도 꾸러미를 잘 여미고 있다. 든든하게 어깨에 잘 기대어져 있다.


 모두들 보따리 작대기를 가지고 여행을 한다. 꿈 많던 어린 시절의 커다란 보따리들만 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크기도 모양도 내용도 다르지만 여전히 은하수와 같은 수많은 빛들이 보따리 속에서 넘실거린다.

 영화의 배경음악처럼 노랫소리가 귓가에서 맴돌듯 울려 퍼진다. “신이 난다~ 재미난다~ 모두의 명작동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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