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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닙 Feb 25. 2022

육아 스트레스 우먼 파이터

본인 32살에 뭐하셨어요? 전 애 봐요..


육아하는 와중에 잠을 줄여서라도 꼭 챙겨보는 TV 프로그램이 몇 있다. 그중 하나는 <스트리트 우먼 파이터>. 춤으로 배틀하고, 직접 짠 안무로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그들을 보며 생각한다. 강하다. 멋있다. 부럽다. 화려한 의상과 파워풀한 댄스는 얼룩진 티셔츠 입고 율동을 추는 내 모습과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하긴 나도 파이터다. 육아링 위에서 스트레스와 배틀하는 맘 파이터. 상대는 매일 모습을 달리한다. 어느 날은 잠 안 자고 두 시간 넘게 버티는 아기의 모습, 어느 날은 갑자기 밥을 먹지 않겠다고 고개를 세차게 젓는 아기의 모습을 하고 나타난다. 


육아 스트레스는 하루에도 여러 차례 날 약자로 지목해 링 위로 불러냈다. 너, 젖병 제대로 물릴 수 있어? 너, 잠투정도 이겨낼 수 있어? 고난도 실전 육아에 넋이 나가 있던 출산 직후에는 거의 항상 패배했다. 댄스 배틀에선 상대에게 기죽지 않는 자신감이 중요하던데, 나는 이길 자신도 체력도 없었다. 그저 도망치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육아의 세계에 발을 들인 이상 배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떤 노력을 해도 아기는 예상치 못한 순간에 새로운 방식으로 양육자를 시험에 들게 한다. 한동안 잘 자다가 갑자기 새벽에 수십번 깨서 엉엉 울기도 하고, 욕조에서 한번 미끄러진 뒤로 목욕을 죽기 살기로 거부하기도 한다. 아무리 이해하고 인내하려 해도 몸과 마음이 지치면 스트레스가 스멀스멀 쌓인다. 


피할 수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이겨보기로 했다. 내 안의 평화를 찾기 위해, 스트레스를 부드럽게 해소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했다. 마치 육아 스트레스가 힙합 춤을 추며 도발했다면 나는 한국무용으로 맞선 그림이랄까. 


우선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잔뜩 사다 놓고 매일 밤 하나씩 꺼내먹으며 소소한 행복을 즐겼다. 좋아하는 유튜브 ASMR 채널들도 다시 챙겨보기 시작했다.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롤플레이 ASMR을 킥킥대며 들으면 어느새 나는 스트레스와의 배틀에서 승자가 되어 있다. 너무나 소소하지만, 의외로 쉽게 이길 수 있었다. 


육아 스트레스가 싸움을 정말 세게 걸어올 때도 있다. 그럴 땐 또 의외로 내 아이 그 자체가 스트레스 탈출구가 되어준다. 어젯밤은 유독 아이를 재우기 어려운 날이었다. 침대에 올라간 지 10분 만에 갑자기 스스로 침대를 내려오더니, 어두컴컴한 거실로 기어나가 신나게 노는 것이었다. 혼자 침대를 내려온 것도, 자려다 말고 거실의 모든 사물에 참견하며 한바탕 논 것도 처음 있는 일이라 어찌나 당황스럽던지. 


자기 싫어서 괜히 거실에서 뭉그적대는 아이를 바라보는데, 문득 너무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재워야 하는데 재우고 싶지 않은 모순된 마음이 들었다. 행복은 이렇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와르르 솟아오르기도 한다. 요 며칠 쌓인 피로가 스르르 풀리는 기분이었다. 이렇게 스트레스를 내부에서 극복하는 요령도 하나씩 배워간다. 나 자신, 육아 스트레스를 육아로 푸는 프로 배틀러가 되었군!



2021년 10월 씀.

새닙의 육아에세이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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