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babysloth Nov 22. 2020

할머니와 핸드폰

기계와 친해질 수 있을까

나는 개발자로 일하고 있지만

핸드폰 사용법을 알려주는 건

참 쉬운 일이 아니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한 건데

상대방에게는 너무 낯선 이야기.

이전의 나는 그런 답답한 상황이 오면

상대를 판단하고 핀잔을 주고 짜증을 냈던 것 같다.

이제는 그냥 지켜보고 ‘그럴 수 있지’ 정도의

마음으로 거리를 두려고 한다.

(상대방이 잘 못 받아들이는데 애써 가르치려고 하는 건 나한테도 너무 에너지 소모가 크기 때문에 서로 좋을 게 없다)


할머니나 엄마가 기계에 서툰 모습을 보일때 그러하다.

이제는 나한테 직접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 이상

그냥 옆에서 지켜본다.

약간 연구대상을 바라보는 느낌이랄까.

나와 다르게 기계가 익숙치 않은 할머니는

핸드폰에 어떻게 반응할까-


올해 미국에 사는 사촌이 아기를 낳아서

매주 매달 아기 비디오를 엄마 카톡으로 보내온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 영상을

쇼파에 앉아서, 식탁에 앉아서

스무번 넘게 돌려본다.


이제는 재생 버튼을 클릭해야

영상이 나온다는 걸 습득한 것 같다.

까르르 웃다가도 영상이 멈추면

손가락에 힘을 바짝 주어 재생버튼을 꾹꾹 누른다.

우리가 가볍게 터치하듯 누르는 게 아니라

마치 리모콘을 누르는 듯 하다. 귀엽다 ㅋㅋ


티비나 핸드폰에서 영상이 나오면

‘저 사람 지금 저러고 있는 거야?’ 물어보곤 했다.

녹화와 라이브를 잘 이해하지 못하셨다.

그래도 이제는 아기 영상을 하도 많이 봐서 그런지

다른 시공간이라는 걸 좀 더 체득한 것 같다.


그래도 재미있는 것은

같은 영상을 수십번 보면서도,

웃긴 장면에 계속 웃고

같은 잔소리도 계속 육성으로 한다는 것.

당사자들은 이 집에 있지도 않은데 말이다 ㅋㅋ

전화도 아닌 그냥 녹화 영상을

인터렉티브하게 만들어내는 할머니의 손주 사랑인가


할머니는 아기를 보기 위해,

미국의 가족들과 통화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핸드폰을 체득하고 있다.

딱 할머니가 필요한 만큼 자연스럽게 말이다.


기계와 친해지는 건 할머니에게도

옵션이 아니라 필수가 되어버렸다.

다행인 것은 억지로 가르친 게 아니라

본인이 즐겁기 위해 알아간다는 것?

작가의 이전글 107살 할머니를 보는 94살 할머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