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의 시간
침실에 자려고 들어왔더니
엄마랑 할머니가 티비를 보고 있었다.
80살 딸과 고집불통 107살 엄마의
한 집 살이 다큐였다.
우리는 계속 107살 할머니의
정정함에 놀라고 감탄했다.
할머니는 저렇게 오래 사는 건 징그럽다며
인상을 찌푸리고 혀를 내둘렀다.
‘저 할머니 귀가 엄청 크다.
우리 할머니도 귀 크자나. 우짜냐’
‘아이구 안되는디. 내 귀가 그렇게 크냐?’
괜히 귀를 만지작거린다
‘할머니랑 12살 차이야. 할머니도 저렇게 - ‘
‘끔찍한 소리 허지 마러~!!’
저렇게 오래 살면 어떡하냐고
전전긍긍하는 할머니가 너무 귀엽고 웃겼다.
옆에서 엄마랑 나는 계속 킬킬거렸다.
침실로 오기 전에
내 페이스북에 남겨진 민망한
과거의 흔적들을 열심히 지웠다.
4년 전의 나는 친하지도 않은 사람들에게
생일축하 글을 참 열심히도 남겼다.
보면서 너무 오글거리고
저런 하이텐션으로 살았다는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일년 내내 연락 한 번 안하던 지인에게
갑자기 생일 축하 글을 남기는 데에까지
에너지를 쏟은 과거의 내가 안쓰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10년 전에 만든 페이스북에 담긴
내 모습과 인간관계의 흔적들.
불과 4-5년전 글들마저도 너무 어색했다.
이제는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마저도 많이 다르다.
겨우 이십n년 넘게 살은 나는 매년이 다르고 순식간이다.
할머니의 시간은 느리게 흐를까?
죽고 싶다면서도 죽기 싫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의 하루는 매일이 비슷해서 더 빠르게 느껴질까?
멀리 나가는 것도 아니고, 집에서 하는 일도 매일 비슷한
할머니가 하루 하루를 지겨워하는 게 가끔 보인다.
하지만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면서
내 하루의 흔적을 남기고 나중에 뒤돌아보면,
생각보다 나의 하루가 그렇게 지겹지만은 않았구나
싶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할머니에게 연필이나 색연필을
다시 좀 쥐어주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내가 할머니를 옆에 끼고 있는 시간도 많지 않고,
무엇보다도 할머니가 말을 드럽게도 안 듣는다. 쳇.
정말 할머니가 싫어하는 거면 권하지도 않겠다.
작년까지만 해도 좋다고 해놓고, 이제 자기는 실력이 없다면서 시작도 안하려고 해서 더 슬프다.
다른 할 일이 많다면서 집안일만 더 신경 쓴다.
그게 할머니에게는 지금 가장 보람찬 일이라면,
딸내미 수고를 조금이라도 덜어주는 게
할머니의 하루 일과라면,
지금은 그렇게 냅둬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