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수업, 아이보다 먼저 시험대에 오른 어른들

by 박하


오늘은 평범한 하루가 아니었다.

처음으로 초등학교 공개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아이들과는 익숙한 수업이었지만,

교실 뒤편에 학부모들이 앉아 있다는 사실 하나가 공기를 다르게 만들었다.


아이들의 집중력은 길어야 40분.

그마저도 2시간 수업이 이어지면,

지루함과 피로가 동시에 밀려온다.

1부의 아이들은 비교적 차분했지만,

2부에 들어온 2학년 아이들은 교실을

장난감 가게처럼 만들었다.

그 모습을 본 한 어머니의 표정이 굳어갔다.

결국 수업 중간,

어머니가 내게 다가와 조용히 말을 건넸다.


“선생님, 평소에도 이렇게 시끄러운가요?”

“오늘은 조금 심하네요.”

“그럼 이런 아이들은 떨어뜨려 앉혀야 하는 거 아닌가요?”


나는 담임교사가 아니다.

일주일에 한 번, 아이들과 ‘즐겁게 배우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온다.

그렇기에 아이를 혼내며 보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머니의 시선은 ‘교육의 완성도’보다

‘통제의 완성도’에 더 가까웠다.


그분은 수업이 끝나고 담당자에게 글을 제출했다.


어머니는 제출전 나에게 “이 상황을 적어 낼려고 한다. 하지만 선생님께 불이익 가신다면

제가 제출하지 않겠다”는 말과 함께.

나는 괜찮다고, 어머니의 생각을 존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돌아서며 마음 한켠이 무겁게 가라앉았다.

그 어머니의 아들이 바로 내 앞에서

얼어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평소 밝던 아이는 엄마의 눈치를 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늘 잘 풀던 퍼즐도 풀어내지 못할 정도로

굳어있던 아이가 잊혀지지 않았다.


수업이 끝난 후 담당자가 내게 말했다.

“그 어머니, 오늘만이 아니라 3일째 다른 공개수업에도 오셔서 이런 의견서를 내고 계세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문득 생각했다.

그 어머니는 정말 ‘자신의 아이’를 위해 온 걸까?

아니면 ‘누군가를 평가하기 위해’ 온 걸까?


가르친다는 건 늘 변수가 많다.

아이들의 하루 컨디션도 다르고,

교사의 마음도 매일 같지 않다.

하지만 공개수업은 아이보다 어른이 더 평가받는 자리.

오늘 나는 교사로서뿐 아니라 한때 학부모였던 사람으로서 내 자신에게 물었다.


나는 과연 현명한 엄마였을까?

나는 내 아이를, 그리고 다른 아이를 어떤 시선으로 바라봤을까?

선생님이라는 이름을, 진심으로 존중해본 적이 있었을까?

부모님이 오지 않는 아이들을 배려했을까?


공개수업은 결국 아이들의 시간이 아니라

어른들이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인지도 모르겠다.

오늘의 혼란스러운 교실 속에서,

나는 다시 한 번 배운다 .

‘교육’은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문득 왜 아이들은 평소보다 더 많이 떠들었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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