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이 아니라 세상과 맺는 첫 약속이다. 그러나 나의 이름은 늘 갈래를 달리하며 흩어져 있었다.
호적에 적힌 이름은 ‘박해경’. 집에서는 한 번도 불리지 않았다. 친척들은 ‘박혜영’이라 불렀고, 거기서 다시 줄여 ‘영아’라는 애칭이 생겼다. 학교와 공식적인 자리에서만 ‘박해경’이 존재했고, 일상 속 나는 늘 ‘혜영’이거나 ‘영아’였다. 이름마다 불리는 상황과 사람들이 달라, 어느 순간부터는 스스로조차 어떤 이름으로 소개해야 할지 막막해졌다.
본명은 또 다른 문제를 안겼다. “박해경입니다.”라고 말하면, 대부분은 ‘박혜경’이라 적는다. 그때마다 나는 정정해야 했다. “여 이가 아니라 아이예요. 바다 해 자예요.” 설명은 번거로웠고, 때로는 ‘왜 이런 이름을 지었을까’ 하는 원망 섞인 생각도 들었다. 여자 이름에는 흔치 않은 글자라 했고, ‘경’ 또한 천간을 뜻한다는 사실을 성인이 되어서야 알았다. 결국 내 이름은 바다와 우주, 두 개의 큰 세계를 품고 있었다. 과연 나는 그만한 사람이 될 수 있을까, 늘 조용한 질문이 따라왔다.
그러던 어느 시점에 또 다른 이름이 생겼다. 필명 ‘박하’. 겨울에 태어난 나에게 따뜻한 기운이 필요하다며 ‘여름 하’를 넣어 지어주신 이름이다. 차갑고 맑은 울림 덕분인지 오히려 많은 이들이 “참 잘 어울린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은 나를 ‘박하샘’이라 불렀고, 나는 그 이름으로 새로운 관계와 세계를 만나기 시작했다.
돌아보면 나는 평생 여러 이름으로 불리며 살아왔다. 해경, 혜영, 영아, 그리고 박하. 그러나 이제는 그 이름들이 더 이상 혼란스럽지 않다. 어떤 이름으로 불려도 결국 나는 나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내 본명이 품은 뜻을 정확히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바다와 우주라는 거대한 공간이 담겨 있다면, 그만큼 넓은 마음으로 살아가라는 뜻일 것이다. 이름의 무게를 온전히 감당할 수는 없더라도, 이제는 이름이 아니라 삶으로 나를 증명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