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패가 슬프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는 게 더 슬프다

2019년 1월 12일. 나는 브런치를 시작했다.

1년 반이 지난 현재 구독자수는 160명.

브런치를 시작한 지 두 달이 지난 시점부터 나는 드라마틱한 여정을 꿈꾸기 시작했다.

왜냐면 브런치로 드라마틱한 여정을 펼치고 있는 분들이 적지 않았으니까.

그런 걸 보면서 나는 희망 같은 게 생겨버렸다. 성실히만 쓴다면 나도 그들처럼 되지 않을까? 그들과 시작점은 달랐다 해도 비슷한 위치로 올라갈 수 있지 않을까라는.



브런치를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지금 구독자 수를 헤아려 보면 나는 그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그리고 브런치에 글을 쓰면 쓸수록 그 반열에 오르지 못하리란 걸 깨닫는다.

나의 바람은 희망고문이 되었다.

나름대로 고민하고 신경 써서 발행 버튼을 누르면 조회수는 40을 넘기지 못할 때가 많다.

매번 실패감을 맛본다. 많은 이들에게 공감받지 못했고, 읽히지 못했으니까.



난 무엇하나 만족스럽지 않아 슬프다. 3년 동안 글을 쓰다 보니 글쓰기에 대한 감 같은 게 생겨났지만 묘한 시련은 매번 날 찾아온다.

글을 쓸수록 내 수준을 통감하고 있어 더욱 슬프다. 실패를 거듭 겪으니 더더 슬프다.

그러다 보니 여기저기 생겨난 샛길로 빠지고 또 빠진다.

인스타그램도 기웃거려 보고, 유튜브도 기웃거려 보고, 블로그도 기웃거려 본다.

거기서는 좀 더 나은 공감을 받고, 좀 더 많은 이들에게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실패를 맛보더라도 덜 상처 받지 않을까를 생각하며 나는 샛길로 빠진다.



샛길로 들어서면 들어설수록 큰 가치를 잃는 느낌이 드는 걸 왜였을까.

곰곰이 생각해봤다.

그 가치란 브런치에 글을 발행할 때의 성취감 같은 것들인데, 비어 있던 흰 종이가 가득 채워져 나갈 때의 뿌듯함. 내 글을 읽어 줄 누군가를 생각하며 진지하게 타자기를 두드릴 때의 몰입감. 지나쳐 버릴 수 있었던 상황과 감정을 글로 붙잡았다는 안도감. 그리고 그 감정의 이유를 알았을 때의 충만감. 같은 것들이랄까.



유튜브도 블로그도 인스타그램도 브런치에 글을 쓸 때만큼의 가치를 채워주지 못했다.

샛길 활동으로 글 쓰는 시간이 줄어들고, 사유하는 시간이 줄어드는 거 같아 내 안이 자꾸 비워지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련을 마주하기 싫고 실패를 맛보기가 두려워 시작한 샛길 활동은 오히려 내게 더 큰 가치를 알아차리게 했다. 큰 가치를 깨달았지만 뚜렷하게 보이는 성과 없이 브런치에서 무언갈 계속 시도만 한다는 게 지치기도 하다.

난 얼마나 시도했다고 이러는 걸까 싶기도 하지만.



다시 고민의 원점이다.

난 몇 번이고 나아가다 원점으로 돌아와 같은 고민을 할 것이다. 글쓰기를 시작한 지 불과 3년 사이 얼마나 휘청거리며 고민했던가.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제풀에 지쳐가는 걸지도 모르겠다.

희망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안다. 욕심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안다. 버린다고 버려보지만, 희망도 욕심도 투명해졌을 뿐 사라지진 않는다. 나아갔다고 느낄 때마다 투명도가 올라가며 실체를 보이고 있으니까.



도달하지 못할 꿈을 껴안은 채 평생 살아가게 될 거란 예감이 든다.

좋아하면서도 한없이 나를 추락시키는 양면성을 매번 마주하며 계속해서 써나가겠지.

몸서리치도록 괴롭고 배에서부터 심장까지 아리듯 아파하면서도 노트북 앞에 앉아 키보드를 치겠지.



실패가 무섭다. 실패가 슬프다. 실패가 나를 작아지게 한다. 그럼에도 멈출 수 없다는 게 더 슬프다.

내 여정은 실패일까. 아닐까. 그건 아마 훨씬 나이 먹고서야 알 수 있을까.

그때까지 나는 실패와 지지고 볶고 싸우며 울기도 참 많이 울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버텨내야 한다는 게 아득하기만 하다. 실패를 자주 맛보며 아파하는 내가 모든 것에 손을 놓는 일은 없길 바란다. 불행이 원하는 대로 무너지지 않길 바란다.

그건 불행이 원하는 모습이요. 나를 깨트릴 더 큰 실패일지도 모르니까.



불행이 바라는 건 내가 나를 홀대하는 거야.
내가 나를 하찮게 여기고 망가트리는 거지.
난 절대 이 재앙을 닮아가진 않을 거야.
재앙이 원하는 대로 살고 싶진 않을 거야.


최진영. 『해가 지는 곳으로』 민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