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가정보육
<2020년 3월 11일에 작성했던 글을 재퇴고했습니다>
오늘도 코로나 ‘안전 안내 문자’가 왔다. 벌써 4통째. ‘안전 안내 문자’는 2020년 1월 23일 한 개로 시작되더니, 2월 1일을 기점으로 2~3개로 늘어났다. 부천시, 부평구청, 경기도청, 인천광역시, 인천 서구청, 서울시청에서 보내오는 메시지는 그 메시지가 그 메시지 같다.
2020년 2월 1일. 부천에도 코로나 확진자가 발생했다. 어린이집에서는 2월 3일부터 2월 9일까지 휴원 한다는 메시지를 보내왔다. 얼마 후에도 삽시간에 퍼진 코로나로 2월 24일부터 재휴원 한다는 공지가 왔다. 급기야 2020년 신입 원아 오리엔테이션과 졸업식은 취소됐고, 입학식과 개학식은 3월 2일에서 3월 5일로, 다시 3월 9일로, 또다시 3월 23일로 연기됐다. 디데이만 기다리던 나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날짜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엄마들은 지쳐갔다. 워킹맘은 계속되는 개학 연기로 온 가족이 돌아가며 아이들을 돌보느라 비상이다. 그중엔 눈물을 머금고 아이들을 긴급 보육으로 등원시키는 엄마들도 있었고, 급기야 사직서를 낸 엄마들도 있었다. 나를 포함한 전업맘은 그 고충에서는 자유롭지만 갑갑하기만 하다. 아이들과 반나절이라도 붙어 있으면 피곤한데, 무려 한 달 동안 붙어 있어야 한다니. 그것도 집콕으로 말이다. 오 마이 갓!
오늘도 9시 반에 육아가 시작됐다. 둘째는 어제도 12시가 넘어 잠들었건만, 어째서 제시간에 일어나는 걸까.
둘째를 안고 거실로 나오면 아이는 부엌을 향해 손을 뻗는다. 19개월 아들의 물 달라는 소리다. 물을 주면 꿀떡꿀떡 마신 후 아기 식탁으로 후다닥 뛰어간다. 이건 밥 달라는 소리다. 오늘따라 아침을 준비하지 못한 나는 마음이 급하다. 식탁에 앉은 세윤이는 빨리 달라고 울고불고 난리다. 조급한 손은 달걀을 깨다 가스레인지에 흘리고, 프라이팬에 계란껍질을 떨어트린다. 천천히 숨을 고르며 조그만 껍질을 찾아 빼냈다. 밥을 뜬 후 숙주나물, 멸치볶음을 올리고 그 위에 계란 프라이를 올렸다. 마지막으로 참기름 한 방울! 둘째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박수친다.
10시. 첫째가 비틀거리며 나온다. 머리엔 허리케인이라도 지나갔나 보다.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싼 세연이는 비틀거리며 식탁으로 가서 엎드렸다. 가까스로 정신 차린 첫째는 평소대로 태블릿을 자기 앞에 세우곤 '돼지저금통' 유튜브 채널을 보며 웃는다. 그 사이 나는 첫째에게 토스트를 만들어 대령한다.
어느새 둘째는 밥 한 그릇을 비웠다. 식탁 아래로 내려주자마자 후다닥 달려가 장난감을 집어 든다. 첫째에게 먹으면서 보라고 수시로 독촉하면서, 둘째가 먹었던 걸 치운다. 그러고 나서 나도 밥 한 숟가락을 뜬다. 아이들과 하루 종일 전쟁을 치르려면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밥 한 숟가락 뜨면 둘째는 내 손을 잡아끈다. 먹다, 일어났다를 수차례 하다 보면 밥공기는 텅 비었는데 무얼 먹었는지 모르겠다. 아침을 치우고, 둘째와 놀다 보면 첫째의 태블릿 시청 시간 한 시간이 끝난다. 그럼 딸아이는 무서운 말을 한다.
“엄마 놀자!”
시계를 봤더니 11시밖에 안됐다. 벌써부터 하루가 길게 느껴진다. 첫째와 놀았다 둘째 챙겼다. 앉았다 섰다를 수십 번 하고, 숨바꼭질, 그림 그리기, 레고 놀이, 인형놀이를 줄줄이 한다. 둘째는 꼭 누나 놀이에 참견하려 하고, 나는 중재하느라 정신없다. 엄마의 중재에도 세연이는 소리친다.
“하지 마~하지 말라고! 엄마! 동생 좀 어떻게 해봐!”
결국 강제 연행되어 거실로 끌려 나온 둘째에게 뽀로로를 틀어준다. 세윤이는 뽀로로와 하나가 된다. 잠깐이나마 쉬고 싶어 소파에 털썩 앉았더니 첫째가 외친다.
"엄마~ 빨리 와!"
타이밍 한번 기막히네. 알겠다고 대답하면서도 몸이 말을 듣질 않는다. 결국 시원찮게 반응하는 엄마를 데리러 딸이 출동했다. 이번엔 내가 강제 연행되어, 첫째 옆에 앉는다. 세연이와 놀다 보니 어느새 점심시간이다.
오늘은 또 무얼 먹일까. 냉장실과 냉동실을 뒤지다 냉동만두가 보였다. 냄비에 물을 받아 가스레인지에 올리고 불을 켰다. 물이 끓자 아기 물만두 15개를 퐁당 넣었다. 밥을 뜨고 첫째가 먹을 김치를 잘랐다. 점심은 어찌 해결됐고 이젠 저녁만 해결하면 된다. 휴.
점심을 먹고 치우는 동안 애들에게 TV를 틀어줬다. 누나가 ‘레이디 버그’를 보면 동생은 ‘뽀로로’를 보겠다며 싸운다. 설거지하다 말고 애들에게 몇 번이나 가는지 모르겠다.
“세연아! 엄마 설거지할 동안만 동생 뽀로로 보여주면 안 될까? 엄마 설거지 끝나면 네가 보려던 거 틀어줄게.”
뿌루퉁하다 알겠다며 양보하는 7살 첫째. 이보다 고마울 수가 없다. 세연이의 양보로 설거지는 평화롭게 마무리된다. 첫째가 TV를 보는 동안 난 둘째와 논다. 공놀이도 했다가, 탑 쌓기도 거들었다가, 자석 놀이도 했다가, 비행기도 태웠다가, 어부바도 해주다 보면 1시 반이다. 이제 30분만 견디면 둘째의 낮잠 시간이다.
누나가 집에 있어서 그런지 둘째는 낮잠을 자려 하지 않는다. 누우면 거실로 나갔다가 돌아왔다를 반복한다. 내 목소리가 커질 수밖에. "최! 세! 윤!!!!" 세윤이는 끝내 울음을 터트린다. 달래며 재우다 보면 3시다. 한 시간을 실랑이했으니 나도 기진맥진이다. 이제 좀 쉴까 했더니 첫째가 TV를 끈다.
“세연아 좀 더 봐.”
“아니. 난 엄마랑 노는 게 더 좋아. 동생 자는 거 기다렸다고.”
“엄마 좀 쉬면 안 될까?”
애처롭게 간청했더니, 20분 쉬는 걸로 합의해 준다. 쉬는 중간중간에도 세연이는 “엄마 시간 다 됐어?” “언제 20분 지나?”
그렇게 쉰 거 같지도 않은 20분은 흘렀다. 시간이 되자 소파에서 일어났다. 떨어지지 않는 다리로 부엌으로 갔다. ‘디카페인 커피’ 스틱 하나를 꺼내서 진하게 탔다. 요새 몸이 피곤해서 그런지 카페인이 몸에 받질 않는다. 10년 동안 하루에 커피 세 잔을 마셔도 거뜬하던 난데, 언젠가부터 '커피 멀미'가 온다.
커피 멀미란. 말 그대로 커피를 마시면 멀미가 오는 것이다. 어지럽고, 토할 거 같고, 뒷목이 당기고, 숨 쉴 때 답답하다. 그리하여 ‘디카페인 커피’를 마시게 됐다. 이거라도 음미해야 하루를 버틸 힘이 생기니까. 지금은 더욱.
터벅터벅 걸어 첫째 옆에 앉았다. 첫째와 논지 한 시간 반 만에 둘째는 깨났다. 그럼 나는 오전에 했던 일을 '또' 반복한다. 그러다 보면 저녁이다. 다시 밥을 차리고, 먹이고, 치우고, 목욕 시킨다. 한 시간만 참으면 신랑이 온다. '좀만 버티자!' 그때부턴 수시로 시계를 보며 8시 20분을 확인한다. 아이들에게 TV를 보여주면서 신랑의 저녁을 준비한다. 삐삐삐빅! 드디어 신랑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10시가 되면 아이들에게 양치를 시키고 자리에 눕힌다. 어찌 된 일인지 아이들은 11시가 넘도록 뒹굴거린다. 그 사이 나는 몇 번이나 애들에게 소리친다. “말 그만!” “한 번 더 말하면 엄마 화낸다!” 우여곡절 끝에 첫째를 재웠더라도 둘째가 남았다. 휴. 안방 여기저기를 탐색하려는 둘째를 어르며 재우다 보면 12시다.
나의 하루는 이렇게 끝난다. 문제는 내일도 같은 하루가 이어진다는 것. 놀랄 것도, 새롭지도 않은 두 아이와의 똑같은 시간이.
매일처럼 쏟아지는 ‘안전 안내 문자’가 목을 조른다.
대체 언제면 이 시국은 끝날까. 대체 언제면 다시 일상을 보낼 수 있을까.
아이들이 등원하고 일상이 돌아와야 마음 놓고 웃을 수 있을 테다.
근데 난 알지 못했다. 이건 서막에 불과했다는걸.